진짜 여유란 무엇일까
여유란 단어를 보면 직감적으로 '멋지다'란 형용사가 뒤따른다. 신사의 제 1 조건은 여유로움이다. 신사가 되고 싶은 신사지망생으로 여유는 평생에 걸쳐 추구할 가치이다. 여유의 원천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 태생적으로 갖게 된 대범함, 능숙한 시간 관리 능력이 그 것이다. 첫 번째 경험과 지식이 가장 큰 요소인데, 가까운 예로 군대를 든다. 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이등병 시절엔, 누구라도 어리버리하다. 선임들에게 혼나고, 실수를 거듭하며 조금씩 군대 내의 생태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말년이 되면, 매사에 침착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대범함. 대범함엔 두 가지 종류의 대범함이 있다. 될 때로 되라식의 무책임한 대범함과 만일의 사태를 파악한 분석적 대범함. 후자의 경우 경험과 지식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시간 관리 능력 역시 중요하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매사에 '바쁘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반대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바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누군가 묻는다면, 고민 없이 신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신사는 자기 일에 전문성과 충분한 경험이 있고, 항시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쉽게 언성을 높이지 않고, 이해를 통해 남을 포용하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신사를 댄디와 동의어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상향으로의 신사는 19세기 댄디와는 다르다. 그 당시 댄디의 여유로움은 부르주아라는 계급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을 전부 노동자 계급에게 미뤄두고, 알맹이만 빼먹는 자본가가 댄디의 모습 중 하나이다. 댄디는 그 부를 바탕으로 사치를 즐긴다. 당시의 댄디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과장된 치장과 의식적 느긋함, 방향성을 잃은 예술을 향한 흥미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 그 자체가 아닌, 예술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다. 쉽게 신사와 댄디의 차이는, 명품과 명품 스타일이라 볼 수 있다.
내 안에서 댄디는 자연스럽게 허세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허세가 실체 없는 기세를 뜻하기 때문이다. 허세를 악으로 구분하는 나에게 댄디는 비난의 대상이다. 이는 열등감의 표출일 수 있다. 어떤 것을 얻고 싶어하나 여력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분노한다. 분노는 자신을 향한다. 하지만 무의식의 방어 기제가 자신을 향한 비난을 막기 위해, 대신 자신은 아닌척 속한 집단을 비난하게 만든다. 자신을 객관화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없다. 글을 작가처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철학에 정통한 것도 아니고,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 결여된 것들을 찾아다닐 뿐이다.
나의 여유는 댄디의 여유 쪽에 가깝다. 신사가 푹 고은 사골 국물이라면, 댄디는 사리곰탕면 스프 국물이다. 일상에서 사람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호흡을 늦춘다. 부담스러운 자리에서도 불편함을 무릅쓰고 움직임을 천천히 한다. 만들어낸 여유라도 첫만남에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품이 훌륭한 제품이라 인식한다. 좋은 소재, 적절한 장비, 노련한 기술이 대중이 갖는 이미지를 존속시킨다. 쌓아온 역사와 기술, 서비스로 신뢰가 생긴다. 신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배우고, 생각하고, 배려하며 생긴 여유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는 자신을 신사로 인식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신사가 되는 필수 과정이다. 인격과 지식을 푹 고아, 앞으로 만날 이들에게 잘 만든 곰국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