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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7. 2018

살생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








 몇 해 전,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가 한국의 이슈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반 여당 성향의 문화예술인을 탄압할 목적으로 만든 블랙리스트는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말을 맞아 카페에 왔다. 글을 쓰던 중, 우연히 카페에 들어선 친구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한국의 블랙리스트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블랙리스트의 언급 빈도가 줄었다. 흐릿해지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번 20분 동안 블랙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살생부 개념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있었다. 직접 그 단어가 등장한 시점은 영국 찰스 2세 시절이었다.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함이었다. 이후에 그 단어는 분야에 따라 다양한 쓰임으로 쓰였다. 게임 업계로 치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유저나, 회사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드는 이들을 규정하기 위해 쓴다. 영화계에서는 팔리지 않은 각본을 블랙리스트라 부른다. 이번 시간에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집중할까 한다. 


우선 헌법에 의거,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도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또한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도 보장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우리가 누려야 마땅한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 문화, 예술은 불편부당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창작물이나 그들의 발언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거나,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대중의 질타, 혹은 법적인 조치를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이, 판사가 할 일이고, 정부가 개입해선 안 된다. 되려 문화 부흥과 다원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9500명 가까운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주요 원인은 두 가지다. 세월호와 관련이 있거나, 문재인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역행한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힘으로 타인을 탄압하는 것은 독재정부에 있을 법하다. 표현의 자유를 국가 차원에서 제한하다니, 박정희 군부 독재 시절과의 경계가 흐릿하다. 예산 지원을 끊어 항복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종래에 측근의 폭로와 언론의 조사를 통해 실체가 밝혀졌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상대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 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자들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치졸한 방법으로 유지한 권력은 치졸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실질적 관련이 어느정도인지 단언할 순 없으나, 이는 혐오 메커니즘과 맥을 같이 한다. 약자를 탄압하고, 나와 반대의 입장을 가진 이들에 다양한 방해 공작을 펼치는 게 용인되는 사회다. 혐오를 조장한다.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그들을 대상화하며 실존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다양성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기득권은 자신이 가진 재화와 힘을 유지하기 위해 부조리를 묵인한다. 아니 부조리를 행하는 주체가 된다. 박근혜 정부가 말한 문화예술의 '건전화'와 '문화융성'이 얼마나 좁은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치 이념과, 생각과 궤를 달리하면 건전하지 않은 생각, 문화 융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블랙리스트는 민족성을 중심 이념으로 경제 개발에 힘쓴 박정희의 논리와 닮았다. 순수한 우리의 민족성을 침해하는 외래의 침범을 두 팔 걷고 막았다. 장발, 미니스커트 등의 민족성과 맞지 않은 행동양식을 검열했다. 온 나라가 70년대 학교가 됐던 셈이다. 이어 말하면 우리 학교 문화는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이다. 당시 교복은 일본의 가쿠란과 같은 형태였는데, 이는 일본 군복을 본떠 만든 옷이었다. 모든 학생의 생각과 행동, 의복을 통제하고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부품으로 만들었다. 천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카미카제 조종사 꿈나무가 되는 공간이다. 민족성을 주창한 그를 지원할 적절한 공장인 셈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온 나라를 규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문화에 익숙해진 노년층들은 문화예술계 탄압의 장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태극기를 흔든다. 박정희가 만든 윤리위원회는 자기 입맛에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툴이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남 눈치를 보며 내부적으로 건전한 문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같은 도구를 만들었다. 


결국 이런 체제에 순응하길 강요하는 분위기에 많은 이가 동화되었다. 권력은 우민을 양성했다. 일베로 지칭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가 나온 배경이다. 자칭 애국 보수주의자는 편협한 사고로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했다. 소수자를 건전하지 못한 이들로 규정한다. 이런 이유로 김미화나 김제동 등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체제에 적극 동의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희화화 했다. 이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민족주의와 비슷하게 들린다. 열성인 인간들을 말살하고 우등 시민을 길러내자는 슬로건으로 많은 인종학살을 자행했다. 우등한 우리의 사상에 거부하는 열등한 진보주의자를 자본주의 방식으로 처단했다. 


누군가 한 말처럼, 검열과 눈치로 태어난 문화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다름을 억압하며 자신의 안녕을 유지하려는 이들은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만 대가를 묻는 우리는 억압이나 폭력의 생산자가, 그러니까 또 다른 살생부의 생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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