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민의 신춘 문예 비평을 비평 (상)

by 띤떵훈

- 최강민이 2013년도에 신춘문예를 비평하는 글을 썼다. 신춘 문예에 언젠가 지원해볼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었다. 최강민은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주로 언급했다. 비문 투성이의 짧은 요약은 '-' 기호 뒤에.




[문학판 : 최강민의 잡놈 문학] 신춘문예, 단편소설 문학제도는 이제 망했다! (1)최강민(문학평론가)
아직 등단하지 않는 문청들은 12월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열병을 앓기 시작한다. 일명 신춘문예 병이다. 신춘문예는 연말에 작품을 응모하여 신년 벽두에 당선자를 발표한다. 문청들은 신춘문예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밤잠을 못 이뤄가며 글을 완성한다. 보통 그 완성은 마감일이 가까워져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고치고 고치는 난산 끝에 최종본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문청은 자신이 희망하는 신문사의 주소를 꼼꼼하게 적어 등기우편으로 보낸다. 보내고 난 다음 발표일까지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자신의 당선 소식을 기다리며 오매불망 전화통을 바라본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보통 크리스마스이브를 전후하여 응모자에게 통보된다. 신춘문예 응모자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저주이자 축복인 셈이다. 2013년도 12월이 가까이 오면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또 그 신춘문예 열병을 앓을 것이다.


-망했다는 극단적인 말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면 글쓰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최강민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관심종자 중 하나이다. 많은 담론이 오갔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제목에서 느껴진다. 관중의 하나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응모자들의 모습을 통해 글을 시작. 역시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는 것은 기본적이고 안정적이다.
신춘문예 제도는 1914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처음 시작했다. 1925년 《동아일보》와 1928년 《조선일보》에서 신춘문예 제도가 시행되면서 ‘신춘문예 제도’는 유력한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신춘문예 제도는 유력 일간지의 영향력, 비교적 고액의 상금 등을 통해 문학적 권위를 부여했다. 그 동안 신춘문예 당선자는 문단의 주목 대상이 되어왔고, 신춘문예 출신들이 문단의 중요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신춘문예의 문학적 권위를 높여왔다.


- 신춘문예의 등장 배경
신춘문예 제도의 파산과 계륵

그런데 신춘문예 지망생들에게 나쁜 소식을 하나 알려야겠다. 신춘문예는 이제 망했다! 신춘문예에 관심 있는 애독자들은 신춘문예 응모자와 가족, 그리고 문학 관련 관계자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춘문예는 일반인도 함께 참여하는 축제에서 소수의 애호가들이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이다. 대중들이 신춘문예와 문학에 관심을 끊으면서 신춘문예 제도는 파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이재복은 신춘문예 제도를 시기별로 신춘문예의 발생기(1914~1928), 신춘문예의 모색기(1929~1940), 신춘문예의 암흑기(1941~1954), 신춘문예의 발전기(1955~1969), 신춘문예의 융성기(1970~1989), 신춘문예의 쇠퇴기(1990~2006년 현재)로 분류한 바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신춘문예는 황금시대를 거쳐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현재의 신춘문예 제도는 과거의 황금시대를 추억하는 관성 속에 좀비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 신춘 문예는 폭망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 흥망성쇠를 다룸.

신춘문예 제도의 침체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진단들이 그 동안 있어왔다. 신춘문예 작품의 새로움과 대중성 약화, 대중의 문학에 대한 관심 부족, 다양한 오락거리의 등장, 인터넷 문화의 확산, 스마트폰의 대량 보급, 인문학 침체와 실용서의 인기 등이 침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일간지는 이러한 문제점을 발빠른 대응으로 불행하게도 해소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신춘문예 제도는 망했다, 망했다. 신문사의 입장에서도 과거의 신춘문예는 다수 독자의 확보와 일간지의 문화적 사업이라는 일거양득의 입장에서 절대적 환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신춘문예 제도는 신문사의 입장에서도 투자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는 계륵같은 존재가 되었다.(물론 이것은 주안점을 어디 놓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신문사 입장에서 신춘문예 제도는 아예 없애자니 좀 아쉽고,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놔두자니 비생산성의 구시대적 유물에 가깝다. 문학 신인 배출은 신춘문예만이 아니라 문예지, 문학상 공모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원인분석 1: 춘문예 작품의 새로움과 대중성 약화, 대중의 문학에 대한 관심 부족, 다양한 오락거리의 등장, 인터넷 문화의 확산, 스마트폰의 대량 보급, 인문학 침체와 실용서의 인기.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견해. 여기서도 망했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박아넣음. 계륵이야
그런데 신춘문예 제도를 통해 배출된 신인 소설가들이 대중적인 문학 스타가 되는 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일반 문예지와 문학상을 통해 배출된 신인 소설가들이 신춘문예 출신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학 독자가 많다면 신문사의 입장에서 신춘문예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문학 독자도 대폭 줄었다. 신춘문예 제도는 신년 문화 이벤트, 신문사의 문학 권력 유지, 잠재적 유력 문인의 필자 확보 차원에서만 매력적일 뿐 그 이외에는 특별한 매력을 상실한 것이다.


- 신춘문예의 등용문으로써의 역할 약화. 매력 상실.

단편소설의 대중적 흥행성 제로시대

문학 독자의 급격감 시대에 신춘문예 제도의 부활을 위한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현재의 문학판과 신춘문예 제도의 위기는 문학이 대중성을 상실한 채 게토화된 나르시시즘의 영역에 갇히면서 발생한 위기이다. 대중성의 회복없이는 문학의 부활은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문학성을 포기하고 대중성만을 추구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중성과 문학성이 공존하는 중간문학을 확장시켜야 한다. 두터운 중간문학 층이 형성된 상황에서 작가의 개성적, 실험적 작업이 반영된 본격문학도 소수자로서 생존할 수 있다.


- 위기 분석2: 대중성 상실, 고인물. / 최강민의 해결책: 중간문학의 확장.

문학 독자는 급격감하고 있지만 서사물, 즉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폭발적이다. 영화, 만화, 게임, 인터넷 등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다양한 색깔로 변주되어 애용되고 있다.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문학 장르에서 소설이 주로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신춘문예 제도에서 소설의 주력은 단편소설이다. 문제는 문학의 독자가 대폭 격감된 상황에서 단편은 창작되더라도 제대로 유통 소비되지 못한다. 신춘문예 당선작도 이러한 안타까운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선작은 신년호에 실린 구색맞추기 전시품으로 전락했다. 한 해의 단편 우수작을 뽑은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나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등이 예전과 같은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단편 소설 중심주의로 문학의, 신춘문예 제도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 서사물 수요는 늘어난 반면, 단편 위주의 신춘문예는 경쟁력을 잃음. 왜냐 단편은 서사보다 관념, 상징 위주라서
단편소설은 달리기로 비유한다면 일종의 100m와 200m 단거리 경주이고, 중편소설은 800m 이상의 중거리 경주이고, 장편소설은 5000m 이상의 장거리 경주이다. 분량이라는 형식은 단순하게 분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분량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소설 기법과 적절한 내용이 존재한다. 독자가 1~2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적 제약은 그에 걸맞은 형식과 내용을 탄생시켰다. 7~80매 정도의 단편소설은 유기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단일사건, 단일구성, 선택된 대상에 대한 집중적 묘사, 극적 사건과 충격적인 결말 등은 단편소설의 주요 패턴이다.


- 소설 분량별 달리기 비유. 단편의 특성: 단일사건, 집중묘사, 극적 사건과 충격적 결말. 최강민 칼럼엔 한 문단에 두가지 내용을 그냥 적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도 그랬고, 다른 칼럼에서도 그랬다. 보통 내용이 바뀌면 문단을 나눠야 하는데, 왜 안 나눴을까? 1. 문단이 너무 짧으면 없어 보여서 2. 문단이 너무 짧으면 없어 보여서. 나도 가끔 고민하는데, 아예 없애거나 내용을 보강해 문단을 나눈다. 그런 노력이 필요없는 건가?

이러한 단편소설은 근대문학 제도의 확립과 함께 문학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다. 문예지와 동인지의 전성시대에 단편은 다수의 작가를 특정 잡지에 출연이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신춘문예 제도를 운영하는 신문사에서도 단편은 일간지 1~2면을 제공함으로써 게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문청의 경우 보통 신춘문예와 잡지의 신인상 준비를 하면서 단편을 쓰게 된다. 단편이 아닌 장편을 요구하는 곳도 여러 매체가 있지만 작가 지망생이 많은 분량의 장편을 여러 편 쓰는 것이 쉽지 않다. 70~80매 정도의 단편 분량은 신춘문예 지망생이 글쓰기에 집중한다면 몇 개월에 한 편 정도 생산할 수 있다. 등단이 일차적 목적인 신춘문예 지망생은 한편이 아니라 여러 편을 써서 여러 신문사에 투고하게 된다.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단편을 여러 곳에 투고할 수 있기에 혹시라도 당선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장편을 쓰는 것보다 여러 편의 단편을 쓰는 것이 작가의 자격증을 딸 가능성을 높여준다. 결국 단편을 요구하는 신춘문예 제도와 비교적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써서 여러 곳에 투고하려는 응모자의 욕망은 단편을 선호하게 되었다.


- 단편이 신춘 문예에 핵심이 된 이유. 1. 당선 가능성, 2. 빠른 집필 시간

2013년도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을 보자. 이호의 「폐쇄, 회로」(조선일보)는 아파트 주차장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을 조명한 실험적 작품이다. 미학적 실험성은 있어 보이지만 파편화된 서사는 독자의 읽기를 지속적으로 방해하면서 소설적 감동도 저하시킨다. 송지현의 「펑크록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동아일보)는 다소 이색적인 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끈다. 소설의 주인공은 2년제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도서대여점에서 일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과거 고교 시절에 펑크록을 좋아하며 반항적 삶을 나름대로 살았던 존재이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그는 일상의 저항에서 순응으로 변신했고, 가끔 비일상적 삶을 살았던 당시의 빨대맨을 그리워한다. 이 소설은 펑크록과 빨대맨이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지만 구체적 형상화는 단편의 한계상 부족하다. 조영한의 「무너진 식탁」(경향신문)은 대학강사인 영목이 성적 올리기를 요구하는 학생의 부당한 요구와 아들의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통해 일상적 안정성이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일상의 폭력성으로 인해 가족의 위기를 무너진 식탁을 통해 무난하게 표현하고 있다.


- 2013년도 신춘문예 단편부문 당선작 촌평. 파편화된 서사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한세기 전부터 있던 방식인데 항상 새롭다. 읽기를 방해하며 감동을 저하했다 평가한다. 어떤 소설은 의식적 거리 두기로 메세지를 강조한다고 하는데, 저 작품은 아닌가보다. 어쨋든 그가 보기엔 허접이 많다고.

조수경의 「젤리피쉬」(서울신문)는 성인용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장애인 여성의 외로움과 성적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여성을 젤리피쉬인 해파리에 비유하면서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이 소설은 이색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소재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윤지완의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한국일보)는 3년 전 투피스를 맡겨놓은 손님이 찾아와 물건을 달라고 하면서 안정적이었던 세탁소 가족의 위기가 닥쳐온다. 이 소설은 소비자의 착각으로 결론나지만 현대인의 일상이 어떤 작은 위기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나은 두 작품
이 다섯 편의 소설 중 조수경의 「젤리피쉬」와 윤지완의 「당신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비교적 함께 갖춘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은 단편의 한계로 인해 특별한 시간을 내어 특별한 소설 체험을 갖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문학적 충격이 미흡하다. 신춘문예 스타일 당선작들은 간결한 문체와 반전의 극적 사건을 통해 독자에게 호소하지만, 다소 틀에 박힌 당선작으로 독자에게 문학적 감동을 줄 가능성이 많지 않다. 단편소설을 통해 파산한 신춘문예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근대문학 제도의 산물인 단편소설의 창작과 게재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이미 한 물 간 유행인 것이다.


- 최강민: 그래도 븅신 고인물이야. 이것도 패턴화 된 작품이거든. 아니 단편이라는 방식 자체가 븅신이야. 근대 문학의 산물인 단편 out.

그렇다면 어떤 것을 통해 파산한 신춘문예 제도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자.


-일단 본편,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편에 있다는 미끼를 던지고, 전반부 칼럼을 마침. 이번 편에선 현상을 분석함. 단편이 안 되는 이유. 대중의 니드를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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