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by 띤떵훈

6개월 만에 제대로 육체노동을 했다. 어젯밤 우리 매니저가 남자친구 형님 결혼식에 참석하고, 미래의 시아버님 시어머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한국에 가게 됐다. '24살인데, 벌써 결혼이라니 허허...'. 그녀의 빠름에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매니저가 담당하고 있는 고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역할을 맡을 인물은 나밖에 없었다. 신속히 적응하라는 계시인지, 첫날부터 일이 많았다. 오전 8시 30분 첫 집을 시작으로, 오후 7시 30분 마지막 집에 이르기까지 11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첫 집 이동 시간, 일 끝나고 클리너 내려주는 시간 포함해 12시간을 일에 투자했다. 기껏 해봐야 한, 두 시간 일하던 내게 부담스러운 하루였다. 게다가 고객들은 담당 클리너 변동에 예민하기 때문에, 더 신경 써야 했다. 최근에 뽑은 클리너분이 잘 따라준 덕분에, 일이 무사히 끝났다.

노동이란 토픽이 나왔으니, 인상적이었던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본에서의 일이다. 당시 오사카역과 연결된 유명 백화점 레스토랑 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유동 인구가 워낙 많아, 숨 돌릴 틈 없는 매일이었다. 아침 10시 일을 시작해 보통 11시에 문을 닫았는데, 나는 풀타임 스태프로 주 6일을 오픈부터 마감까지 일했다. 중간에 점심시간 2시간이 있었는데, 거의 잠을 자는데 썼다. 조금이라도 자두지 않으면, 몸이 버틸 수 없었다. 전에는 일이 끝나면 맥주와 과실주 한 캔씩 사서 스스로 격려했는데, 매장을 옮긴 후론 자는데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투자했다. 한 달이 안 돼서 몸무게가 6킬로가량 빠졌다. 몇 차례인가 혈뇨가 나오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살았던 때였다.

그런 빡센 스케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변 환경 덕분이었다.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매니저에게 고충을 토로해 6일 중 하루는 4시에 퇴근하게 됐다. 주 5일 풀타임 근무, 하루 6시간 근무였는데, 훨씬 할만했다. 비교적 한가한 평일엔 10시 퇴근도 가능했다. 그 매장엔 본사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우리 점장이었는데, 주 6일 근무는 물론이고,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서 누구보다 늦게 퇴근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30살의 젊은 청년으로, 한 살도 안 된 아기가 있었다. 어쩌다 아기가 아픈 날이면,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조퇴했다. 그리곤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일에 대신 근무했다.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그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거기다 그는 '일이 재밌다'고 해, 그와 내가 전혀 다른 사고를 가졌음을 깨달았다. 놀라운 점은, 백화점 의류 잡화 층에 있는 한 브랜드의 점장은 우리 점장보다 더 많이 일을 했다는 것이다.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했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 기가 질렸다. 인생의 전부가 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나의 노동은 대단하지 않았다.

호주에 와서 개인 사업을 하며, 평균 업무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수입도 달라졌다. 당시 13시간 매장에 체류하며 받았던 돈과, 지금 1시간 30분 일해 번 돈이 비슷하다. 노동의 강도나, 절대 시간을 비교할 때면, 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일본 시급이 한국 시급보다 배로 높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만약 외국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잘 안 풀린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 시급 6000원의 알바생이거나, 주 50 시간 근무로 월 200 정도 버는 풀타임 스탭이다. 빈곤한 알바의 삶, 개인 시간을 잃은 풀타임 노동자의 삶이 나의 지금일 수 있다. 만약 현실에 만족하고 아무 도전도 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일하고 납득할 정도의 대가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가장 바쁜 날이 끝났다. 11시간 중 햄버거 먹는 15분을 제외하곤, 쉼 없이 일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다. 매니저가 오기 전까지 앞으로 이주 정도 남았다. 다음 주부턴 부담 없이 쉬엄쉬엄 일을 할 수 있다. 일이 몇 개 없어서 하루 4~5시간 정도만 움직이면 될 것 같다. 몸이 휴식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단 느낌이다. 너무 집에만 있어도 스트레스다. 물론 오늘처럼 주 5일을 일하라면 못 하겠지만, 적당히 일할 필요는 있다. 정신적 생산성만 추구하다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노동에서 삶의 가치를 찾았던 우리 윗세대의 영향일까, 인간의 기본 프로세스일까? 어쨌든 한국행 비행기가 뜨기까지 보름 정도 남았다. 조카 선물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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