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운이 안 좋은 날이 있다. 속쓰린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불행한 날을 보내는 나름의 대처방법은 이렇다. 1. 잇따른 운이 불행을 불러온다, 불행은 좋은 일의 징조이다, 고로 액땜이다.라며 합리화한다. 2. 외면한다. 3.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해 충격을 소거한다. 이번 글쓰기는 일기이자 소거 행위다.
한동안 손에서 일을 놔서 그런지, 일이 있는 날엔 마음이 무겁다. 오전 11시까지 고객 집을 가야 한다. 네 달 동안 네 명의 직원이 열심히 청소기를 돌려준 덕분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젠 직접 움직여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가정사, 비자 등의 문제로 강제 휴식을 취했는데, 변명거리가 없어졌다. 막상 고객 집의 현관문을 연 후엔 별생각 없이 일을 하는데, 준비하는 시간은 부담스럽다. 10시가 돼서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먹고 씻는 정도였다. 친구에게 '일 다녀올게' 말을 건네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한 달 전, 엔진 문제로 2년 동안 타던 차를 폐차시켰다. 최근에 산 차는 호주에서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예산에 맞춰 몇 개의 차량을 구매 리스트에 올렸다. 고민 끝에 부품 공급이 용이하고 경제적인 일본 브랜드를 선택했다. 전에 타던 차는 독일제 경차였는데, 연비가 좋고 잘 나간다는 말에 구매했다. 다만, 중고차였고, 연식이 오래됐었고, 부품값이 비싸 유지비가 만만치 않았다. 가벼운 접촉 사고나 일상적인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다른 브랜드 제품 대비 3배의 수리비를 지불해야 했다. 왜 이렇게 비싼가 카센터 사장님께 질문했다. 그는 조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차는 한국제나 일본제를 사야 해'. 일본 차 구매 후엔 한 숨 돌리겠거니 했는데, 독일 경차보다 두 배 비싼 보험비와, 기름값에 머리가 어지럽다. 보험료가 부담되어, 일이 많아지면 보험사에 연락하기로 결심했다. 조심스럽게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운전은 어느틈엔가 스트레스가 됐다.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비게이션은 돌아 가는 길을 안내했다. 초기 경로 검색 시에 예상 소요시간은 10분이 안 됐지만, 결국 2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대낮인데도 고객 집 앞엔 차들이 많았다. 번화가에 자리한 곳으로 느긋하게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뒷 차들의 성화를 가슴으로 들으며, 근처 골목을 빙글빙글 돌았다. 주차 금지 표지판이 없는 주택가에 차를 세웠다. 고객 집과 거리가 있어서, 여러번 왔다 갔다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모든 청소 장비를 어깨와 양손에 쥐고,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다. 잠깐씩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청소 중에 누군가가 집에 있으면 신경 쓰인다. 다행히 아침에 고객이 열쇠를 우체통에 두고 간다며 문자를 남겼다. 집에 도착해 우체통 앞으로 가서 열쇠를 찾았다. 그런데 나와야 할 열쇠는 안 나오고, 광고 책자, 택배 미수령 쪽지가 보였다. 몇 차례 더 찾아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함에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10분 정도 찾고 기다리길 반복했다. 며칠 전에 같은 고객에게 견적 스케쥴을 잡기 위해 문자를 보냈었는데, 5 시간 가량이 지나 연락이 왔음을 떠올렸다. 'I think you are too busy to text me. I'll come later.' 짧은 문자를 남기고, 무거운 짐을 챙겨 차로 향했다. 장비를 정비하고, 허탈함에 운전석 문을 열었다. 자리에 털썩 앉는데, 앞 유리에서 팔랑팔랑 움직이는 종이를 발견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뗀 순간 가슴 한편이 아파왔다. 91불짜리 벌금 딱지였다. 50불 벌러 왔다, 그 두 배 가까운 벌금을 내게 됐다. 신음성을 토해내고, 주변에 표지판을 찾았다. 저 먼 곳에 Permit Zone 피켓이 보였다. 보통 피켓 아래 부분을 제외하곤, 일반 주택 앞은 주차가 가능하다. 이번엔 '보통 경우'가 아니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무거운 발을 액셀 위로 올렸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유니폼과 안경을 벗고,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91불의 가치를 되새김질했다. 친구가 가고 싶다던 고깃집을 두 번이나 갈 수 있는 돈, 6개입 로컬 맥주 패키지를 7개나 살 수 있는 돈. 분한 마음을 인터넷으로 달랬다. 맥락 없이 설농탕을 사 왔는데 왜 못 먹니란 말이 가슴에 울렸다. 설농탕은 비극의 상징 전에, 자잘한 하루의 운을 상징한다. 운이 나쁜 날이면, 나도 모르게 운수 좋은 날의 대사가 떠오른다. 그런 비극은 없으니 다행이야라며 합리화하고 치유하는 작업인지 모른다. 그래도 엎어진 설농탕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