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민의 신춘 문예 비평을 비평 (하)

by 띤떵훈

-앞서 신춘 문예가 망하는 원인을 분석했다. 일반적인 견해는 스마트폰의 발전과 놀이거리 증가 때문. 최강민은 단편 문학이 갖는 특성을 그 원인으로 꼽음. 왜냐? 서사가 약하고, 정형화된 패턴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됐기 때문. 이번 편에선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 방향을 제시할 것임. 자기 입장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게 문화평론가의 일이니, 여기서 그의 통찰력과 분석력이 나와야 함.



[문학판 : 최강민의 잡놈 문학] 신춘문예, 단편소설 문학제도는 이제 망했다! (2)


타성화된 문학 제도와 문학의 침체


내용은 형식을 규정한다. 반대로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1900년대 개화기문학 시절에 제대로 된 근대문학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근대적 내용을 채울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근대적 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용과 형식은 상호 규정하고 규정되는 부부 관계이다. 2000년대 들어 단편소설을 묶은 창작집의 소설 시장은 파산했다. 단편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소설의 주력 장르로서의 지위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단편소설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들어와 종료되었다. 1970년대는 중편소설이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한 시대였다. 1980년대 들어서는 중편소설에 이어 장편소설이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문예지 신인상, 신춘문예 제도, 기성 작가들의 문예지 작품 게재라는 문학 제도의 속성은 단편 제도의 공고한 매너리즘의 카르텔 성곽을 완전히 붕괴시키지 못했다. 문학적 관성은 새로운 혁신을 두려워하며 기존의 문학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문학 제도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되지 못한 채 안전한 닭장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망했다는 표현이 다시 봐도 참 맘에 든다. 게임에서 직업을 고를 땐, 데미지 딜러를 고른다. 글도 통찰력과 논리 공업해서 극딜하는 사람이 좋다. 자극적인 제목에 걸맞는 극딜이 나올까. 내용과 형식의 상호보완성을 언급. 내용에 맞는 형식이 있어야 함. 또 고인물 언급


2000년대 들어 단편소설이 문학시장에서 외면받으면서도 기형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신춘문예 제도와 문예지의 타성화된 공조 카르텔 관계 때문이었다. 그 동안 창작된 단편은 창작집의 형태로 묶여져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문예지 게재-창작집 발간-문학 독자의 소비’로 이어지는 삼각 구조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문단은 2007년 장편 중심론을 제기하면서 단편에서 장편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한다. 하지만 발표 지면이 계간지, 월간지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단편 중심의 제도를 말끔하게 청산하고 장편 중심의 제도로 변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새로 들어올 사람은 들어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2000년대 문학판은 관성의 늪에 빠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동거를 지속했다.


- 신춘 문예와 문예지 때문에 단편이 생존함. 2000년대부터 창작집 외면 받기 시작. 2007년엔 장편 중심론이 제기 됐지만, 현실적인 지면 문제로 완전한 변신 불가능했다. 또 고인물 언급


현재까지도 이러한 전환기적 혼란과 부적응 양상은 계속되고 있다. 장편 중심을 외쳤지만 그에 걸맞은 우수한 장편들이 지속적으로 상당수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장편 중심론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단편은 자신의 기득권적 영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장편 중심론의 취약성을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는 중·장편이 문학과 독서 시장을 이끄는 대세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 없다.


- 문제의식은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지면의 한정성)에 부딛혀 입지 약화.


특별한 체험을 요구하는 독자들


오늘의 독자들은 바쁘다. 대학 입학, 취업, 비정규직 탈피 등 다양한 현실적 조건이 문학 독서를 방해한다. 인터넷, 게임, 영화 등도 여가 시간에 문학 독서를 방해하는 강력한 경쟁자들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일반 독자들이 시간을 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일년 동안 일반 독자들이 과연 문학책을 몇권 읽을지 상상해 봐라! 기껏해야 한두권 정도 읽을 것이라는 점. 이때 일반 독자가 단편이 수록된 창작집보다는 장편을 택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점이다. 독자는 문학 텍스트 읽기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어렵게 낸 것이다. 특별한 시간에 일반 독자들은 짤막한 이야기의 단면보다 좀더 심층적이거나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한다. 단편은 압축화된 서사와 상징 속에 구체적 사건과 인물의 형상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 독서 방해 요소: 1.대입, 취업 등의 현실적 조건. 2. 인터넷, 게임, 영화 등의 경쟁자. -> 결국 독서가 대단한 사건이 된다고 언급.

가뜩이나 줄어든 독자층과 상대적으로 더 관심이 덜한 창작집. 단편의 한계.

일반 독자들은 단편소설이 생산하는 문학적 충격을 영화, 드라마, 다큐 등의 시청을 통해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반 독자가 굳이 영상물 대신 단편이 실린 창작집을 읽을까? 이런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일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영상물 등에서 느끼지 못했던 좀더 심층적인 구체성의 질감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단편소설의 상징성과 미학성은 일반 독자의 특별한 기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데에 미흡하다. 독자들의 기대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소설은 단편이 아니라 중장편의 소설이다. 전문적인 문학 매니아가 아니라면 창작집의 수요는 기대하기 어렵다. 작가들이 고정적인 소수의 고급독자에 의지하여 생존하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소설이 대중성과 완전히 절연한 상태에서는 본격소설의 생존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신문사들은 일반 독자들이 잘 찾지 않는 단편에 목매달지 말고 대중성과 연결된 중편소설 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편소설의 멸종론을 정당화하려는 주장은 아니다. 대중성 있는 중장편 소설의 활성화 속에 그나마 작품성 있는 단편도 혈통이 끊기지 않고 대를 이을 수 있는 것이다.


- 단편의 역할 : 문화적 충격 -> 영화 드라마 다큐로 대체 가능. 최강민이 보기엔 특별한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님. 영상물에서 느끼지 못 한 질감을 위해선 중, 장편이 필요하다. 신문사에게 중,장편 제도 활성화 촉구(주제)


단편 제도를 통해 배출된 소설가들은 대중성 있는 장편소설을 창작하는 데에 있어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장편과 관련한 창작 수련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익숙한 단거리에서 갑자기 장거리를 뛰게 되는 것이니 모든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만약 중편소설을 창작하는 것이 습관된 작가라면 소설의 사건을 좀더 키워 장편을 만드는 데에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작가 지망생이 단편을 응모하지 않고 장편 습작을 통해 문학적 수련을 쌓는 것은 쉽지 않다. 작가 지망생들은 단편이라는 쉬운 입문 통로가 있는데 장편이라는 위험 부담이 있는 소설의 창작을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시장을 활성화해 문학의 부흥을 이끌려면 단편소설 중심의 신춘문예 제도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중편은 단편과 장편을 모두 훈련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을 뽑는 것은 현재 《동아일보》가 유일하다.


- 중장편 작가가 단편 쓰기는 쉽지만, 단편작가가 중장편을 쓰긴 힘들다. 장편 수련이 부족해서. 장편은 위험 부담이 있어서 지망생들의 입장은 이해함. 다만 문학의 부흥을 위해 체질 개선은 필수 불가결.


중편소설 부문의 전면 신설과 단편소설 제도의 전면 폐지


새로운 시대의 장르는 중편과 장편이다. 중편소설은 분량이 250매 이상으로서 단편보다는 많고, 장편보다 적은 분량의 소설이다. 독자들마다 다르겠지만 중편을 읽는데 3~4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현대의 독자들이 한나절 정도 소설을 읽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이 중편소설의 분량이다. 중편소설은 단편소설이 단일한 사건이라는 협소한 지점만 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비해 좀더 규모가 커져 있다. 중편소설은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규모를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중소 규모의 이야기를 담당할 수 있다. 중편은 상징성이 강한 단편보다 서사성을 좀더 강조하는 형태를 가지면서도 문학적 미학성을 갖고 있다. 중편소설의 구호는 단편보다는 좀더 많은 규모의 적당한 이야기를 약간의 압축된 이야기 전개 방식을 통해 전달한다. 혹자는 신춘문예에서 단편도 중편도 아닌 장편소설을 공모하는 것은 어떤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신춘문예에서 장편소설을 응모할 경우 응모 작품수의 부족과 기존의 장편 소설 공모전 문학상과 중복될 수밖에 없다. 또한 문학 신인은 장편 소설의 창작과 완성에 있어 기성 작가에 비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러한 이유로 신춘문예에서 장편 부문을 신설해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최강민은 단편 소설 비중을 줄이는 것이 아닌 전면 폐지를 대안으로 제시. 단편의 단점: 협소한 지점만 이야기 가능. 중편의 장점: 이야기성, 서사성.

다만 장편 공모는 문제점을 갖고 있어 위험함. 위험: 작품수 부족, 타 공모전과 중복. 창작과 완성에 있어 어려움. -> 현실적으로 어려움.

결국 적절한 대안은 단편 폐지와 중편 전면 신설


결론적으로 신춘문예 제도를 통해 소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중편소설이 제격이다. 작가 지망생들이 중편소설의 창작을 통해 인물의 구체적 형상화와 다소 복잡한 사건의 구성을 경험해서 소설 테크닉을 향상시킬 수 있다. 중편소설은 장편소설의 창작을 위한 일종의 훈련장인 셈이다. 중편소설과 장편소설에 대한 문학 독자의 욕망은 잡다한 이야기의 패키지인 창작집보다 하나의 집중적으로 심화시킨 전문점인 중장편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다양한 관심사로 분화된 일반 독자들은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를 심층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중장편의 다양한 전문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중편이 신춘문예의 핵심이 되야하는 당위성 역설. 지망생들이 인물 형상화, 사건의 구성 등의 테크닉을 갖게 됨. 장편을 위한 발판임. 독자에 니즈에 맞춰 중장편으로 이동해야 함. 다양한 관심사를 전문적으로 다뤄야 한다.


모든 신문사는 단편소설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중편소설 모집으로 응모 요강을 교체하기 바란다. 일부 신문에서 단편소설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작가 자격증을 조속히 따려고 생각하는 문학 응모자들이 단편 제도를 운영하는 해당 신문에 집중 몰리고, 상대적으로 중편소설 응모자 숫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문학 응모자들의 꼼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극약 처분같은 단편 제도의 충격적인 전면 폐지가 되어야 한다. 단편에서 중편으로의 변화는 단순한 분량만의 변화가 아니다. 형식과 제도의 변화는 그에 걸맞는 내용의 변화를 촉구한다. 신문사들은 중편의 분량을 신문에 게재하기 곤란하다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단편 제도의 폐지가 어렵다고 난색을 표시할 수 있다. 중편 소설을 꼭 오프라인의 신문에 게재할 필요는 없다. 신년호에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자의 약력·심사평·인터뷰를 싣고, 작품의 전문은 인터넷 판에 링크를 걸어두면 된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이 전혀 아니다.


- 구체적 대안을 다시 한 번 언급. 단편은 하나의 꼼수다. 여기서 단편의 폐지는 극약 처방이고, 충격 요법임.

예상 반발에 대한 해결책 제시- 지면의 한계를 온라인 게제로 극복함.


새로운 신춘문예 제도의 등장을 꿈꾸며


신춘문예 단편소설 제도의 전면 폐지는 신춘문예 제도 변화의 완결형이 아니다. 단편소설 제도의 전면 폐지는 신춘문예 제도의 전면적 혁신을 이끄는 시발점일 뿐이다. 문단 신인이나 기성 문인들은 저자가 아닌 독자 중심의 글쓰기를 해야 하고, 소통 불능의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나르시시즘의 전위성이나 실험성을 자제해야 한다. 해당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 요강을 보면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동일한 응모 요강은 독특한 문학 텍스트가 아니라 비슷한 문학 텍스트를 조장한다. 해당 신문사는 자사가 지향하는 문학적 정체성에 걸맞는 신인들을 뽑겠다는 태도의 변화 속에 신춘문예 응모 요강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때 우려되는 것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신문의 입김이 들어가 기존 주류와 차별성이 없는 보수적 신인을 왕창 뽑는 사태이다. 이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구태의 반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자살골이 될 것이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선정에 있어서도 유명 문인을 단순하게 초빙하여 심사위원을 맡기는 무개성적 선출 방식도 바꿔야 한다. 본심 심사위원의 나이도 더 젊어져야 하고, 보수적 심사위원이 압도적인 본심 심사위원의 분포도 시정되어야 한다. 새로운 신인을 원한다면 주류보다 비주류의 진보적 심사위원이 더 많아져야 새로운 신인들을 더 뽑을 수 있다. 메이저 문예지의 편집위원이나 그 출신이 심사위원으로 당연하게 초빙되는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사의 차별화된 응모 요강과 심사기준을 정하고 심사위원을 위촉해야 한다.


- 단편 제도 폐지는 시발점. 엘리트주의 타파해야한다. 실험성도 자제해야 한다. 개성있는 작가의 등단을 위해 선출 방식도 바꿔야 함.

구체적 대안: 1. 심사위원 연령을 낮춤. 2. 진보 심사위원 채용 3. 차별화된 기준 만들기


그렇다면 단편은 어디에 응모해야 할까? 지면을 통해 여러 작가의 작품을 게재할 수밖에 없는 문예지에서는 단편 부문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문예지는 단편만이 아니라 중편 제도도 함께 운영할 수 있다.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의 차별화된 모집 부문은 상호 결핍된 부분을 메우면서 상생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신춘문예에서 중편소설 부문의 전면적 신설이 곧 바로 문학의 르네상스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장편 소설 중심론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기존 틀에 갇히지 않는 중편소설의 불온하면서도 혁신적인 실험이 중편소설의 전성시대를 열 수 있다. 중편소설의 체질 향상은 장편소설의 체질 강화로 이어지고, 대중성 있는 장편소설의 창작이 융성해져 문학 독자를 확충시킬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문학 시장의 활성화를 열 수 있는 첫 단추가 신춘문예 제도의 구조적 혁신인 것이다.


- 구체적 대안2: 1. 문예지는 단편, 중편 동시 운영. 2. 중편소설의 혁신적인 실험이 중편 전성시대를 열 수 있다. 결국 대중성 있는 장편 창작이 호황을 누릴 수 있음. 그래서 첫 단추는 신춘 문예의 구조 혁신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니 2015년 신춘문예부터 단편소설 부문의 전면 폐기와 중편소설 부문의 전면 신설이 있어야 한다. 2010년대는 중장편 소설의 전성시대가 개막되어야 한다. 변화의 구체적 징후가 발견되어야 일반 독자에게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 신춘문예 제도의 부활을 꾀할 수 있다. 변화는 봄에서, 신춘의 초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만약 신춘문예가 변화를 선도할 수 없다면 남은 길은 끝없는 추락이다. 100년 가까이 운영된 신춘문예 제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 일반 독자와 절연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신춘문예는 현재 망했다. 변화가 없다면 미래도 망할 것이다. 문제는 이 와중에 문학도 함께 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신춘문예와 신인상에서 새로운 피가 제때에 수혈되지 않는데 문학판이 잘 돌아갈 수가 없다.


- 구체적 대안3: 1. 2015년부터 단편 폐지, 중편 전면 신설. 그렇지 못 하면 존폐를 걱정해야 함. 현재도 망했는데, 변화 없으면 문학 자체가 폭망임. 왜냐?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기 때문에.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신춘문예의 종언 시대.' 자랑스러운(?) 신춘문예 출신이기도 한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문학 재앙을 떠올리며 개봉일을 기,다,린,다. 극적 반전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신춘문예이면서도 정작 한겨울인 12월과 1월초의 잔치인 신춘문예 제도. 이제 응모 마감 날짜에 있어서도 1월말로 바꿔야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타성에 젖으면 발상의 전환도 기대하기 힘들다.


- 지금까지 말한 거 잘 들었지? 내 말 안 들으면 문학의 재앙이야. 난 너희를 지,켜,보,겠,어. 신춘 문예의 상징인 신년 초입 발표도 없애봐. 왜냐면 이게 발상의 전환이야.



- 대안1에서 단편의 전위성, 실험성을 없애고 대중성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 반면, 대안2에서 다시 혁신적인실험, 틀에 갖히지 않는 중편 소설이 필요하다고 말함. 이게 무슨 소리야!!!! 단편은 실험성이 없어야 하고 중편은 실험성을 가져야 한다니. 이 부분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쨋든 단편 제도 폐지를 외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왜 중편을 대안으로 제시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단은 살짝 코메디이다.

"발상의 전환, 타성에 젖은 제도 개선을 위해 12월에 있는 마감일을 1월에 옮겨야 한다!!!"

"타성에 젖은 병영문화의 개선을 위해 기상 시간을 6시에서 5시로 옮겨야 한다" 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 부분에선 타당한 이유를 적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삼모사식 해결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단편제도 폐지라는 극단적인 제안을 한 최강민이 넘나좋은것. 안타깝게도 2016년인 지금, 그의 제안은 영향을 주지 못 했다. 여전히 단편 소설 위주이고, 중편은 동아일보만 모집하고 있다. 다행히 재앙은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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