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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22. 2018

자유의 무게





7:08 



 어머니는 홀로 나를 키웠다. 이혼한 남편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 집세 내고, 초등학생인 아들의 학용품 살 돈을 벌기 위해 오래 일했다. 배운 기술은 미용인데 써먹지 않았다. 미용사의 처우는 그때도 좋지 않았다. 페이는 비슷하거나 높은 판매직 일을 하셨다. 그녀와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께 구속당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일은 늦게 끝났고, 그동안 간섭에서 자유로웠다. 어머니의 귀가는 9시다. 요일마다 다르지만 초등학교는 1시에서 3시 사이의 비교적 이른 오후에 마쳤다. 반나절의 긴 자유 시간을 가졌다.


양육의 측면에서, 어머니는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늦게 자도 자식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차렸고, 하교 후에 먹을 저녁까지 준비했다. 카레나 짜랑, 제육볶음 등의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많았다. 하교 후에 책방에 들려 만화책을 몇 권인가 빌리고, 천리안에서 채팅을 하다가 저녁 무렵에 그 음식을 먹었다. 하루 용돈은 천 원으로 합리적이었다. 만화책을 3권 빌려도 100원이 남았고, 오뎅을 5개나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적절하게 분배하면 그 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나의 자유는 어머니가 오면 끝났다. 나는 어려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다. 여러 능력이 부족했다. 인내, 지구력, 일 머리, 덩치 등.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서만 생존이 가능했다. 농노가 지주에게 노동력 바치듯, 자유를 공상했다. 자유를 박탈당하면서 안정감과 안락함을 얻었다. 자유 소지자는 모든지 다 했다. 나중에야 그 치열함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더 일해서 늦게 들어오길 바랐다. 여윳돈도 자유도 얻게. 


성인이 되고 독립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다. 경제적으론 의존이었다. 사업하시는 삼촌이 마련해주신 아파트에서 집세의 무서움을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용돈 명목으로 매달 20만 원씩, 총 40만 원을 내게 보냈다.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해서 차비가 들지 않았다. 독립이라는 말의 외형만 빌려 쓴 셈이다. 옷 사느라 돈을 다 쓰면 어머니는 한 달이 지나지 않아도 20만 원을 더 넣어주셨다. 예산을 자주 초과했다. 


경제적 서포트가 일시적으로 끝난 시점은 군대를 전역하고부터다. 그때부터 집세를 부담했다. 용돈도 받지 않고, 주택 청약과 저축까지 들었다. 학교에 복학하지 않을 계획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권유로 3 개월 뒤에 복학했다. 다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어머니는 다시 집세를 부담했고, 청약과 저축을 해지하지 않고 자비로 냈다. 학비도 물론 어머니가 냈다. 그 후에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비교적 온전한 독립이었다. 모든 지출을 내가 번 돈으로 했다. 돈을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고 극도의 자린고비가 됐다. '어떻게 번 돈인데, 이렇게 쓸 수 없다. 이거 먹으려면 2시간 일해야 해' 매 소비마다 방어기제가 과하게 작동했다. 내가 번 돈이 아까워서 한 달 생활비로 5만 원만 썼다.


이제 어머니는 한국에도, 호주에도, 일본에도 없다. 공간이 아닌 시간의 변화를 통해야만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드디어 그녀로부터 완벽한 독립이다. 한국에 처리할 서류 업무가 있으면, 직접 한국으로 가야 한다. 누구도 돈 벌어서 나한테 주지 않는다. 자기가 쓸 돈 자기가 벌어야 했다. 빨래도, 요리도, 사회생활도 다 내 몫이었다. 돌아갈 곳이란 게 없었다. 결혼 전에는 그랬다. 올해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겼다. 어머니와 살 때처럼 내 자유를 담보로 생활을 보장받지 않는다. 되려 챙겨야 할 것이 많아졌다. 이제 자유는 나에게 항상 옳다. 가끔 자유가 부재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선 큰 책임이 따른다. 역설적으로 가해자는 역경이 많고, 피해자는 큰 걱정거리가 없다. 아들의 자유를 반 평생 맡았던 어머니의 어려움을 떠올린다. 자유의 온전한 소유자로 거듭날수록 그 무게를 실감한다.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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