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Aug 11. 2018

싸이월드




배경-

 유튜브에서 백예린이 부른 시티팝 버전 'Lalala love song'을 재생했다. 연관 재생으로 올드 시티팝이 이어나왔다. 옛날 노래 들으니 향수에 잠겼다. 싸이월드에 접속해 옛날 사진을 구경했다. 여러 생각이 튀어나왔다. 생각을 정리하는 겸, 싸이월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시작-

지금으로부터 14 년 전, 싸이월드를 시작했다. 주변 친구 절반이 계정을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 몇 없는 중학교 동창들과 연락하고,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친목을 다졌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상용화 된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게시글을 아무때나 업로드할 수 없었다. 쉬는날 날잡아 폰카나 디카로 찍은 조악한 화질의 사진을 싸이월드 기본 편집에 툴로 수정해 올렸다. 친구들 사진 몇 장 올릴 정도였고, 자주 접속하진 않았다. 


싸이 전성기-

성인이 되자 이성 친구들과 만날 일이 많아졌다. 싸이월드의 진가가 발휘됐다. 가장 잘나온 사진을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감성글을 더해 게시했다. 당시 유행했던 혈액형 별 성격 유행, 100문 100답, 드라마 스냅에 오그라드는 글 스크랩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이불킥 할 일은 많았다. 사기도 쳤다. 수작업을 통해 일간 방문자 수를 10 명 정도 올렸다. 싸이월드 방문자 검색기를 돈 내고 사용해 전 여친들이 방문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기세에 눌려 쭈구리가 되기 전까지 매일 접속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쇼핑몰 홍보, 친목도모, 독후감, 일기, 사진 업로드, 메모장, 웃긴 글 저장, 쇼핑몰 업무 등. 그중 기억나는 사건이라면, 싸이월드 투데이 멤버에 뽑힌 일이다. 빈티지 전사 시절이었는데, 누가 봐도 개성있게 옷을 입었다. 오랜만에 보니 어떻게 저렇게 입을 수 있었지? 하며 질책 섞인 질문이 터져 나온다. 예를 들면, 주황색 항아리 바지에, 프린팅 티셔츠에 주황색 홈스펀 재킷을 매치하는 등의. 머리는 장발에 파마한 재림 예수였다. 유니클로에서 일하던 여자친구 보러 갔는데, 그녀는 아는척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미안하다. 



현재 인터페이스-

고객을 타 SNS에 뺏긴 이후로 싸이월드는 부활을 꿈꿨다. 여러 가지 시도를 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오늘의 사용을 근거로 말하자면, 인터페이스가 별로였다. 조정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사진을 보기 위해선 클릭을 4,5 회 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게시판 목록을 숨겨서 클릭을 몇 차례나 더 하게 만들었다. 잘 나가는 SNS나 핸드폰 os가 사용자 친화적, 효율적 인터페이스에 목숨 거는 시대다. 그런 서비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불편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현재 위치에 적응했는지, 부활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현상 유지하다 몇 년 뒤에 사라질 것 같다.


교훈-

10 년 전만 해도 싸이월드 계정은 필수였다. 지금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시초였다. 언젠가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망할지 모른다. 절대 망할 것 같지 않던 싸이가 망했다. 여기서 깨달은 점, 망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영원한 건 없다. 

 버티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경쟁 업체를 인수 합병하면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변화 없이는 존재를 보장할 수 없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고,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스냅챗을 인수하고, 아마존이 도서 이외의 유통업체를 인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청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고객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수익 창출에 사용하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 가장 효율적인 개인 정보 사용법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유튜브, 구글, 구글os, 애플 os,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매일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하나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싸이월드도 마찬가지였다. 


자극 민감성- 
자극의 진폭이 변했다. 고등학교 때는 자극 민감도가 높았다. 자극이 많지 않은 일상이었다. 물론 일상이라는 말 자체가 반복되는 생활 양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 말 뜻은 일상의 궤적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유 시간이 없었고, 마음껏 소비할 돈도 없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있노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무 살을 달랐다. 자극 민감도는 그대로였으나, 자극의 빈도와 강도가 달라졌다. 뭐를 해도 새롭고, 설레었다. 

예전 사진을 쳐다보며 그때를 떠올렸다. 심장 떨렸던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첫 연애', 대학 첫 OT, 첫 사업, 첫 휴가 등. 처음으로 가득했다. 남자들이 득실거렸던 교실을 벗어나 술자리에서 또래 여자 동기들과 만났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할 말 못 할 말 구분하지 못 했고,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거나 쎈 척하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어색함을 뿜뿜 뿜어냈다. 

이젠 무언가를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많지 않다. 안 먹어본 음식이 없고, 안 해봤던 대외 활동도 적다. 더 ㅋ 큰 문제는 새로운 거라 해도 기존에 했던,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경험이나 책을 통한 대리 경험으로 완벽히 모르는 세상이 없다. 새로운 분야라도 어느 정도는 안다.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안전한지도 알기 때문에 전만큼의 부담감이나 긴장감이 있지 않다. 예절과 매너를 배우다는 말은, 어디서 욕 안 먹고 받아들여지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과 같다. 낯선 환경에선 눈에 안 띄고 중간만 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받아들여지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복장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선 무채색에 무난한 셔츠와 청바지, 단화를 신는다. 정리하면 결국 외부 자극에 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뭐든지 금방 익숙해지고 싫증을 느끼는 내 성향도 한몫한다. 사진과 글에 비치는 과거의 내가 많은 변화를 시사한다. 

재밌는 점. 경험과 지식은 반대의 역할도 한다. 감각엔 무뎌졌지만, 같은 사건을 보고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할 수 있다. 현상을 분석하는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소설을 예로 든다. 지속적으로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소비한다는 가정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사에 어떤 흐름이 있었고, 상징체계를 학습하고, 인문학 배경지식이 늘어간다. 10년 전 나와 지금 내가 상실의 시대를 읽는다. 10년 전의 나는 작가의 의도나 숨겨진 내용은 잘 모르지만, 큰 영향을 받았다. 몇 달을 책 속에 살고, 머릿속으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재차 재생한다. 지금은 작가의 의도나 상징의 의미, 시대상, 개연성 등에 집중하며 더 많은 규정된 지식을 얻는다. 책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자극에 취하면 사리분별이 어렵다. 지금 나는 싸이월드에 남아 있는 생각을 과잉과 미숙함이라 읽는다.

10년 후에 나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본다고 가정한다. 그때도 지금을 미숙하고, 새로움으로 가득 찬 나날로 떠올릴 수 있다. 기억은 변하고, 내 세상을 보는 기준도 변한다.



작가의 이전글 한 달 동안 쓴 글 모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