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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21. 2018

나 프로듀스48 팬인데?




 프로듀스 시리즈의 열혈 팬으로, 모든 에피소드를 빠짐없이 시청했다. 첫 번째 시리즈는 한국 여자 연습생을 대상으로, 두 번째는 남자 연습생, 마지막으로 지금 방영 중인 프로듀스 48은 한국 여자 연습생들과 일본 그룹 AKB48의 멤버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지난 두 시즌을 흥미롭게 보기도 했고, 일본 아이돌 시스템에 관심이 있기도 했으며, 두 이질적인 엔터 시스템의 합일이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하기도 해서 방영 전부터 관심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이제 프로듀스 48의 마지막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방송분과 그밖의 단상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본 아이돌 판의 구성을 알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남녀로 구분 지어야 한다. 먼저 소속사 '쟈니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도부터 아이돌 장사를 시작해 성공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해오고 있다. 시대별 슈퍼스타를 배출한 일본의 sm이라 봐도 무방하다. SM에서 HOT -> 동방신기 -> 엑소라는 원톱 아이돌을 배출한 것처럼, 쟈니즈는 타노킨 트리오 -> 소년대 -> 히카루겐지 -> SMAP -> 아라시라는 원톱 아이돌을 배출했다. 차이점이라면, 쟈니즈는 남성 아이돌만 손을 댄다는 점이다. 그들이 엔터계에 끼치는 영향은 압도적이다. 지난 몇 십 년 쟈니즈 소속 아이돌이 tv에 출연하지 않은 날이 없다. 방송사보다 일개 연예 기획사의 파워가 더 센 기현상이다.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 멤버가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출연하는 게 일상적인 곳이다. 덕분에 쟈니즈 아이돌은 데뷔 후에 이름을 알리기가 수월했다. 연기력, 인맥, 외모보다 소속사의 파워가 더 중요하다. 여자 아이돌은 어떨까? 몇 년 전까지 쟈니즈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그나마 유명 프로듀서 층쿠의 소속사 정도였다. 그가 기획한 아이돌 모닝구 무스메는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으나, 성공을 뒤잇는 후속 그룹이 탄생하지 못했다. 여성 아이돌판은 AKB48의 등장하며 변했다. 쟈니즈에 견줄 수 있는 AKB사단이 연예계를 장악했다. 조직 구성도가 일반적이진 않으나 그룹의 영향은 괄목하게 성장했다. 나오는 앨범마다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일본 엔터 역사상 다신 없을 수퍼 그룹이 됐다. 그 AKB48가 프로듀스 48에 나온다.



성공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승승장구하던 AKB 사단도 점점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같은 아버지가 만든 라이벌 그룹 노기자카 46에 조금씩 따라잡히는 판국이다. 인기에 한몫했던 주축 멤버들은 졸업해서 빠지고,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던 멤버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변화 없는 그룹은 역사의 저편으로 간다. 여기서 AKB 사단의 아버지 아키모토 야스시가 변화의 도화선으로 삼은 것이 프로듀스48이다. 이로써 프로듀스101과 AKB48의 시스템을 혼용한 독특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일본인 참가자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형편없는 실력'이다. 연습 기간이 따로 없다. 인기가 있다면 바로 데뷔해서 활동한다. 트레이닝은 관심 있는 멤버가 사비로 학원에서 배우는 정도다. 일본 아이돌 판에서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인성과 애교, 귀여움, 색기, 유머감각, 기분 나쁜 오타쿠를 앞에 두고 웃는 정신력 등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곡이 떼창이라 가창력이 필요 없고, 율동 수준의 안무는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판매 구조에서 수요하는 이들의 성향을 봐야 한다. 그들은 완성된 아이돌이 아닌, 미성숙한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한국 연습생은 기본이 실력이다. 압도적인 비주얼, 씹덕, 그룹 이미지에 맡는 인상의 소유자라면 튀지 않을 정도의 실력만 장착해 보내는 경우는 있다. 또는 멤버들의 특색을 살려줄 무능 캐릭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의 실력은 요구된다. 다소 난이도 있는 안무를 따라 추려면 필수적이다. 최소한의 호흡법과 발성을 배워 자기 파트에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까지는 만든다. 그 외의 연습생들은 한 가지 이상의 확실한 장기가 있어야 한다. 최근 데뷔한 어떤 그룹을 봐도 포지션 분배는 확실하다.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양국 아이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는 멤버들은 전부 한국 연습생이다. 이채연, 이가은, 권은비, 최예나, 조유리, 나고은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 노력은 가상하나 실력은 아쉬운 멤버 대부분이 현해탄을 건너온 이들이다. 한국 연습생이 안무를 따고 알려주고, 보컬을 지도한다.



막상 방송을 보면 두 시스템의 융합이 아닌, 온전한 프로듀스의 후속작이다. 앞선 2개의 시리즈의 답습이다. AKB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극장 시스템은 이미 아이돌 학교에서 차용했다. 결과는 미지근했다. 그러나 프로듀스48은 의미가 다르다. AKB라는 이름을 통해 카피캣 이미지를 벗고, 일본 활동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으며, 일본 아이돌 팬덤의 시선을 국내로 돌릴 수 있다.


데뷔 시 일본과 한국 연습생에 정해진 비율은 없다. 순수하게 최상위 연습생 12 명이 선발되는 것이다. 중반까지는 실력이 우수한 한국인 연습생 위주의 그룹이 탄생하나 싶었으나, 후반으로 들어선 지금은 일본 아이돌 팬들의 투표에 화력이 붙어 일본 출신 연습생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일본 아이돌은 몇 년인가 활동을 한 이들이기에 확실한 팬덤을 갖고 있다. 매력을 어필할 자료나 과거 영상들이 타 연습생에 비해 많은 것은 확실한 베네핏이다. 그 베네핏을 확실히 사용하는 인물이 미야자키 미호다. 노래도, 춤도, 외모도 떨어지는 멤버다. 다만 그간 보여줬던 친한 행적이 계기가 돼서 표를 얻어 가고 있다.


시청률을 기준으로 볼 때, 전작에 비해 히트 쳤다고 할 수 없다. 수치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방송 종류 후 데뷔할 차세대 글로벌 아이돌 그룹의 성공 또한 확실치 않다. 팬덤이 분열된 것이 이유다. 일본 아이돌 팬들과 한국 연습생 팬들이 좀처럼 융합되지 않는다. 각자가 그리는 그룹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팬의 경우, 한국식 아이돌이 탄생하길 바란다. 한국식 아이돌이란 각자의 포지션에서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는 멤버들로 구성된 아이돌이다. 예를 들면, 춤 멤버, 보컬 멤버, 랩 멤버, 예능 멤버, 씹덕 멤버(외모가 떨어지나 귀엽거나 엉뚱한 행동으로 매력 어필하는 멤버), 벨런스 멤버(이것저것 평타 이상하는), 리더 등. 프로듀스란 프로그램 제목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모든 포지션을 염두 해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려 한다. 반면, 일본 아이돌의 팬들은 다르다. 그룹의 밸런스보다는 일본인이 멤버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그룹의 균형감은 떨어지고, 프로듀서들의 애정 또한 식는 양상이다.


프로듀스 48엔 다양한 미션이 있다. 주제가 내꺼야의 춤과 노래 외우기, 컨셉 평가, 포지션 평가 등이다. 그중 컨셉 평가에 집중해볼까 한다. 컨셉평가는 국내 유명 작곡팀을 섭외해 신곡을 받아 출연진이 공연하는 방식이다.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로 참여자와 어울리는 곡을 매치시킨다. 어떤 방식으로 아이돌이 신곡을 내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 흥미롭다. 하나의 곡이 나오기까지의 대략적인 과정을 알 수 있다.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는 A&R과 같다. 그 그룹 컨셉에 어울리는 곡을 받아 매치시키는 작업이다. 그 후에 팀에 맞는 안무를 짜고 목소리와 음역에 맡게 파트를 분배한다. 그 후 대중의 냉정한 판단이 기다린다.

포지션 평가에서 이미 발매된 곡을 재해석하는 재미를 느낀다면, 컨셉 평가에선 없던 곡을 만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룹 구성원을 만들어 그룹명까지 정해주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취지에 맞는 평가다. 이런 여과 과정 (필터링)을 거쳐 데뷔 후에 어떤 모습,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판단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첫째, 현재 한국 예능의 전반적인 문제기도 한 편집이다. 국민은 온전하게 프로듀서가 될 수 없다. 이미 가공된 정보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다. 소비자는 비교를 통해 올바른 정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프로듀스는 다르다. 한쪽의 의견만 수용하기에 균형 잡힌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없다. 출연자가 화면에 잡히는 비율이 다르다. 팔리는 장면과, 자신들이 밀고 싶은 멤버의 훈훈하고 매력 있는 모습이 담긴 장면을 선별한다. 슈퍼에서 치킨 너겟을 샀다고 가정한다. 너겟의 맛을 보고 치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철저히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나는 꼴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모습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설령 철저히 랜덤하게 동일 분량으로 방송한다 해도 균형이 생길 수 없다. 누가 먼저 방송에 나오는가가 중요하다. 투표 시스템 때문이다. 임팩트 있는 모습을 앞서 보인 출연자의 경우 그 효과를 받아 높은 투표수를 오랜 기간 차지할 수 있다. 다음 화에 동일한 임팩트를 보여준 출연자가 있을 때, 그 효과가 발휘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이라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외모지상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외모로 평가절하됐다. 잘생긴 제자 플라톤이 그를 기리는 몇 권의 책을 내고 나서야 재조명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정도가 심하다. 외모가 전부다. 이채연이라는 연습생은 눈에 띄는 실력을 갖고 있다. 춤은 압도적이고 노래 실력 또한 준수하다. 전체적인 밸런스로 볼 때 가장 뛰어난 출연자라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못생겼다는(실제로 못생기지 않았다. 다른 출연자의 외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이 덜 간다는 맥락이다) 이유로 투표에서 밀린다. 출연자들끼리도 그런 방송의 습성을 알고, 적극적으로 시스템에 맞춰 조직을 개편한다. 예쁘니까, 인기 많으니까를 이유로 그룹의 중심에 실력이 떨어지는 출연자를 선별한다. 퍼포먼스 중 가장 시선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센터 포지션'은 실력 보다 외모로(곡에 어울리는 분위기라고는 하나 사실 인기와 카메라에 잡혔을 때 임팩트 있는 얼굴과 몸매) 뽑는다. 보컬이나 춤이 센터를 구분 짓는 경우는 차치하지만 그 외는 비주얼이 중요하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팀에서 방출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돌 판의 경우 얼굴이 실력인 셈이다.


한걸음 떨어져서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돌 그룹을 철저히 상품으로 보는 자본주의 성향이 시청자의 기저에 깔려 있다. 상품들이 스크린에서 성능을 자랑한다. 품평회를 거쳐 괜찮은 부품을 골라서 오더 한다. 불량이 생기면 (인성 문제, 과거 문제, 이성 문제, 파트 욕심, 실력 미달 등) 주문량이 떨어져서 완제품의 부품으로 발탁될 수 없다. 그럼 커스텀 메이드 제품이 탄생한다. 아이돌계가 그렇지만, 프로듀스 시리즈의 경우 대중문화의 자본 잠식의 끝판왕이자 상징이다.



대중이 향유하는 문화의 형태가 점점 저급해지고, 단면적이며, 사유를 방해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노골적인 성 상품화, 섹슈얼리즘의 미디어 장악이 눈에 띈다. 어느 틈엔가 10대 소녀가 가슴 파인 옷에 팬티만 가린 복장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아닌 것을 알지만 그 자극에 중독되면 일일이 비판하기 어렵다. 비판하려면 판 자체를 뒤집어야 하며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가라타니 고진이 <네이션과 미학> 언급한 괄호넣기를 인용한다. 비판적 문화 수용을 괄호에 넣는다. 나는 (자본에 종속되며) (성상품화이고) (저급하고) (사유를 방해하며) (권력자의 이해관계 아래 있고) (본질을 보는 것을 막으며) (합리적 소비자의 집단 형성을 지양하는) 방송을 시청한다. 피로와 불편을 감수하기 위해 괄호에 합리적인 비판을 넣어 소거한 뒤 대중문화를 소비한다.



그럼에도 방송을 즐겨 본다고 천명한다. '야 쟤, 프로듀스48 본대. 졸라 오타쿠야. 생각 없어.'라는 반응을 스스로 만든다. 이왕 천박한 대중문화이 소비자가 되기로 했다면 철저히 역할을 수행하는 편이 맞다. 나름의 정의다. 뒤에서 엄청 보고 앞에서 안 보는 척, 깨어있는 척하는 위선을 피한다. 그냥 팬으로 남아 말한다.


'장원영 졸라 아이돌이야. 표정 너무 상큼해. 원영이 데뷔해. 채연이 실력 오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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