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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31. 2018

라멘을 (얕게) 말하다


 와이프가 아침부터 고통을 호소했다. 전날 꽃가루를 너무 많이 마셔서 목이 아프단다. 그녀의 빠른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약을 챙겨 먹으라 권했다. 그녀는 약을 먹고 출근했다. 일을 하다 카톡을 보냈다. 목이 아파서 신경 쓰인다고. 일에 집중을 못 할 정도로 불편했던 것 같다. 점심에 고통을 줄여줄 국물 음식을 먹겠다 했다. 그녀는 일찍 마친 내게 회사 근처로 오라 했다. 그녀 회사 앞엔 라멘 잘하는 집이 있다. 다소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기꺼이 돈 낼 정도의 맛을 낸다. 나는 거절했다.


낮에 식사하면, 저녁때 배가 고파 고통스럽다. 낮 허기는 참아도 밤 허기는 참기 어렵다. 게다가 포만감은 나를 게으르게 만든다. 집중력을 저하시켜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없다. 점심은 다른 메뉴를 먹고, 라멘을 저녁으로 먹자고 했다. 그녀는 동의했고, 나는 저녁만 기다리고 있다. 일찍 카페에 나와서 약간의 공부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영어 지문 보고 문제 풀고 나니, 지쳐서 다른 활동할 기분이 안 난다. 라멘이 더 생각난다. 그래서 라멘에 대해 글을 쓴다.


일본에 살 때 라멘집에 자주 갔다. 휴식 시간에 점장님과 다른 직원들과 맞은편에 있는 라멘집을 찾았다. 같은 백화점 직원이라 약간의 혜택을 받았다. 디스카운트였는지, 서비스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들려 배를 채우고 낮잠 한숨 자면 저녁 일을 할 기운을 얻었다. 어머니가 일본에 아들 보러 오셨을 때도 라멘집에 들렀다. 어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는데, 본고장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돈은 어머니가 내셨다. 어머니는 짜다고 불평했다. 


라멘은 생각보다 단순한 조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면을 삶고, 면을 육수에 넣고, 몇 가지 고명을 올리면 끝이다. 육수는 가게마다 다르다. 닭 육수로 담백한 맛을 내는 곳도 있는데, 기본은 돼지 뼈다. 간장이나 된장 소스 원액을 그릇 아래 깔고, 돼지 뼈 육수를 부어 농도를 맞춘다. 챠슈라 불리는 간장 조림 편육, 구운 김, 쪽파, 숙주 등이 대표적 토핑이다. 다양한 식감을 한 그릇에 즐길 수 있다. 라멘은 대표적 서민 요리다. 동전 몇 개 들고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라멘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라면은 독자 노선을 탔다. 간장, 미소, 돈코츠 스프가 기본인 라멘과는 다르게 국내 라면은 매운맛이 기본이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모토로 몇십 년째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한 신라면이 대표적이다. 물론 매운맛을 한국인의 맛으로 규정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에서 민족성 고취를 위해 만든 근본 없는 전통이다. 그에게 잘 보이려 농심 사장이 몹시 매운 라면을 출시했고 그게 대박을 쳤다. 그 뒤로 라면의 기준은 빨간 국물, 매운맛이 됐다. 이제 라면과 라멘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라멘도 소바와 마찬가지로 담가먹는 방식이 있다. 찍어 먹는 라멘은 츠케멘이라 불린다. 냉메밀을 얼음 띄운 간장 소스에 찍어 먹듯이, 진하게 만든 라멘 스프에 면을 찍어 먹는다. 면발의 굵기에 따라 농도를 다르게 해야 한다. 만약 굵은 면을 먹는다면 육수는 더 진해야 한다. 몇 초 육수에 담근다고 면에 맛이 베지 않는다. 일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멘집을 찾았다. 츠케멘을 시켰는데, 육수도 싱겁고, 면도 두꺼웠다. 생면을 먹는 기분이었다. 츠케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소비자가 피해본다. 고객 잃은 라멘집도 피해다. 서로 피해 보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적절한 농도를 찾아야 한다.


일본엔 면 추가를 무료로 해주는 라멘집이 많다. 카에다마라고 불리는데, 직역하면 바꾼 덩어리다. 면을 뭉쳐 주기 때문에 타마라 표현하는 듯하다. 적은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이유다. 한국이나 외국의 라멘집은 추가로 돈을 받는다. 본고장의 맛을 내려 노력해도 가격 정책은 현지화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 최고의 라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라면 기행을 떠나는 작품이 있다. 여러 맛 집을 둘러보고, 지역 특산물을 비교한다. 몇 가지 후보를 꼽아서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는 게 목표다. 방송을 다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가게마다 추구하는 맛이 다르고, 정해진 맛을 내기 위해 까다롭게 만든다. 물론 일본도 서서히 프랜차이즈 가게의 수가 늘어나지만, 여전히 개인 점포도 많다. 고다와리라 불리는 고집을 통해 소비자들은 다양한 라멘을 먹을 수 있다. 라멘 식도락이란 단어가 성립할 수 있는 배경이다.


아직 와이프가 퇴근할 때까지 한 시간 반가량이 남았다. 그 말은 라멘을 먹으려면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더 쓸 말이 없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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