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자기 표현

by 띤떵훈





오랜만에 타이핑한다. 바쁘진 않았다. 그간의 공백을 다른 활동으로 채웠다. 사진 찍기와 사진 보정. 사진과 요즘 부쩍 가까워졌다. 매달 만 오천 원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보정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일상에서 사진과 접점을 늘려야 한다. 헬스장 끊어놓고 발길도 끊었던 경험이 있다. 돈은 나가고 나는 안 나가고. 일 년이 넘어서야 그 미련의 고리를 끊었다. 이번에는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꾸준함과 자본의 지원사격으로 전보다 괜찮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온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고래보다 훨씬 작은 나라는 인간도 춤추게 한다. 물론 비유다. 사람들의 격려와 감탄이 쌓여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틸 공간을 주지 않는다. 사진기를 매고 매주 어딘가로 떠난다. 셔터 누르고 마우스 누르는 횟수가 늘면 새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인간은 반복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싫어하기도 한다. 매번 같은 구도, 같은 보정 법 사용할 순 없다. 정체가 두렵다. 새로움은 다른 가능성과 연결된다. 전에 없던 시도 뒤엔 경탄이 따른다.




보정 작업까지 끝난 완성품을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다. 팔로우를 늘리려는 아무개 씨의 입발린 칭찬부터 오래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의 칭찬까지 다양한 종류의 달콤한 말을 듣는다. 만족도의 차이도 다르다. 개개인이 가지는 특정인을 향한 수식은 다르다. 나는 누군가에게 '재수 없는' '논리 병 걸린' '책 많이 읽는다고 까부는' '별 볼 일 없는' '결혼 잘한' '감정 없는' '웃긴' 친구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사진 좀 찍는'이 추가됐다.




십 년쯤 전에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여기서 비슷한에 담긴 말은 '사진에 열정이 있는'이다. 내 안에 말이 많아서 어떤 식으로든 분출해야 했다. 가공 안 한 그 자체의 말은 되려 나라는 인간의 값어치를 떨어트렸기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라캉이 말한 죽음 충동이 강한 시기였다. 본인을 파멸로 몰고 갈 배짱이 없었기에 승화와 이야기 속 대타자를 앞세워 욕망을 일시적으로 해소했다. 대타자는 소설, 승화는 글쓰기와 사진이다. 승화 중에서 글쓰기는 남고 사진은 소거됐다. 표현 방식이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의 평가를 재고할 때가 왔다. 표현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사진기 본체와 렌즈, 구도, 시간, 날씨, 보정 법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나만의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모든 사진에 내 생각이 들어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단순히 구도의 아름다움,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픈 목적으로 찍은 사진이 있는 반면, 단면에서 서사를 만들어 함의를 넣어 찍은 사진도 있다.




함의가 담긴 사진은 시와 가깝다. 해석의 여지가 무궁하다는 점 때문이다. 피사체의 눈빛, 손동작, 입은 옷, 빛과 그림자가 말을 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식대로 다시 말한다. 동양 철학에서, 주석을 다는 것과 같다. 공자가 뭐라 말할 것에 제자들은 본인 생각을 더한다. 나도 그 장소와 시간이 말하는 것에 내 생각을 더한다. 사진과 함께하는 시간이 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양한 단어를 깨우친다. 문장 속에서 적합한 단어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듯 풍경 속에서 적합한 빛을 찾아 생각을 구체화한다.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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