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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1. 2019

10월은 수필의 계절

10월은 수필의 계절이다. 내가 정했다. 지난 며칠 많은 일이 있었다. 정리하는 겸 글을 쓴다. 





1. 리디 셀렉트




일주일 전에 리디셀렉트에 가입했다. 리디셀렉트는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이북 임대 서비스다. 한 달에 만 원 정도 지불하고 리디북스가 선별한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리디 셀렉트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 1.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 없다(착각이었다)  2. 수집욕을 충족시킬 수 없다  3. 돈 주고 산 책 읽기도 바쁘다. 가입하고 나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우선 셀렉트에 선별된 책의 수량을 말하자. 리디 셀렉트에 등록된 책은 많다는 수식도 부족하다. 방대한 선별 도서를 보면 도서관에 온 기분이 든다. 이전엔 컨셉 자체를 오해했었다. 매달 열 권 정도를 선별하고 달마다 선정도서를 바꾸는 줄 알았다. 자연히 그 시기에 못 읽으면 다시 읽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리디 셀렉트를 방문하면 구비 서적의 양을 실감할 수 있다. 일례로 그리스 신화를 검색하면 관련 책이 수십 개 나온다. 




리디 셀렉트에 가입한 경위를 설명한다. 새로이 발제 도서(아픔이 길이 되려면)가 정해졌다. 이 책은 리디 셀렉트에 있다. 설명을 보니 리디 셀렉트 가입 첫 달은 무료이고, 특정 기간 안에 가입한 신규 회원(해외 거주자 한정)은 자동으로 리디북스 이북 리더기 경품에 응모할 수 있다. 한 달 공짜로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가입 철회하면 그만이다. 책 값이나 리디 셀렉트 한달 유지 비용이나 거기서 거기다. 속는셈 치고 등록해도 잃을 게 없었다. 새로운 경험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과장 좀 섞어 리디 셀렉트에 한 줄 평을 남기자면, 평생의 동반자. 신간도 많다. 




리디 셀렉트를 이용한 첫 이틀 동안 10 권의 책을 다운로드했다. 전권 다 읽었다. 완독한 것도 있고, 끝내지 못 한 책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리디 셀렉트의 존재 의의는 평소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그래서 읽을 수 없었을 책을 읽게 됐다는 사실이다. 책은 간접 경험의 창구다. 나의 정신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관념 홍길동이라 불러도 좋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난다. 신출 귀몰하다. 리디 셀렉트는 내게 활빈 당원이다. 김수미의 반찬 레시피 북이나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철학 에세이나, 기타 유명하지 않은 사진, 휴식, 마블, 글쓰기 관련 주제의 에세이, 개론서 등을 읽게 됐다. 몇 페이지 보고, 마음에 들면 집중해서 보고, 아니면 속독으로 정수만 빼먹는다. 




바야흐로 리서치 습관의 전기가 찾아왔다. 전에는 나무 위키가 최고 우방국이었다면, 이제는 리디 셀렉트가 동석한다. 좌우 날개가 지켜주는 한 지적 허영의 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 갈 필요도 없이 앉아서 필요한 책을 다운로드해 읽으면 그만이다. 






2. 이사




 지난 주말은 이사를 위해 존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사는 많은 노동과 자금과 시간을 요한다. 금요일은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썼고, 토요일은 이삿짐을 옮기고 가구 배치하는데, 일요일은 이삿짐을 풀고 필요한 생필품 구매하는데 쓰였다. 일요일엔 오랜만에 피를 봤다. 



새로이 이사한 집은 아파트다. 7층짜리 주상 복합 아파트로 시티 근처에 위치했다. 우리는 꼭대기 층에서 살게 됐다.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집이 크고, 전망이 좋고, 시티에 가깝고, 번화가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를 계획한 이유와 부합한다. 와이프는 출퇴근 때마다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혼 후에 처가 식구들과 살아온 집에서 살림을 이어가는 것도 별로란다. 새로운 가족으로 독립했는데 집이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그 외에도 기분 전환용, 새벽에 나와 맥주나 커피 마실 수 있는 동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내 의사와 별개로 그녀는 이사를 결정했다. 좋은 남편 역할 해주기로 했다. 




과정은 험난했으나, 과실은 달다. 아직 어수선한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집에서 보는 전망의 가치를 희석시키지 않는다. 아침에 보는 뷰, 낮에 보는 뷰, 저녁에 보는 뷰, 빠짐없이 아름답다. 스스로를 도시인으로 규정했다. 시골보다 도시가 잘 맞다. 커뮤니티 이벤트와 가까워야 하고, 다양한 문화생활과 식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친구들과 주기적 만남도 필수다. 이전 집에서도 시티 라이프를 누렸다. 새로운 집에선 참-도시인이 됐다. 피카츄가 라이츄로 변하는 것과 같다. 높아진 도시력을 자랑한다. 




월세는 올랐다.







3. 커피의 맛, 맥주의 맛




최근 들어 기호 식품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개인 카페에서 파는 호주식 롱블랙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했고, 펍에서 파는 생맥주 보다 병맥주를 즐기던 과거와 작별했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컵의 중간 크기로 나오는 롱블랙은 다양한 맛을 보유하고 있다. 커피의 신맛을 롱블랙 덕분에 알게 됐다. 물론 신 커피는 존재해선 안 될 음료였으므로 즐겨 마시지 않았다. 




커피 전문가를 자처하는 여러 인물들은 얘기한다. 다양한 맛과 향을 보유한 커피가 좋은 커피다. 이를테면, 탄 맛, 과일향, 신맛, 쓴맛, 고소한 맛, 단맛 등등. 이 기준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단언컨대 과거의 나를 위한 기준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렇다. 이 여러 가지 맛을 한곳에 품은 맛과 향 선물세트 식의 커피가 최고의 커피 자리에 등극했다. 생맥주에 대한 태도도 같은 궤적을 보인다. 공교롭게 시기도 겹친다. 생맥주가 제공하는 특유의 맛이 혀에 더 큰 즐거움을 제공한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나는 더 우수한 커피라는 기표를 학습해서 나의 미각과 취향을 거기에 맞춘 것인가, 아니면 이것은 인간이란 개체로서 누리는 자연스러운 귀결인가, 아니면 반복이 불러온 취향의 변화인가?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으면 한다. 만약 첫 번째라고 하면 내 취향이라고 하는 개념이 모호해지며 자신이 수동적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by 김상섭,의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열을 구분하고 그것을 학습하면 자신을 우등에 맞추려 노력한다. 혹여나 우열의 증표를 우리가 조작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성소수자, 인종, 민족 등) 스스로를 옥죄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열등의 딱지를 가진 이들은 높은 자살률, 낮은 만족감, 행복감에 시달린다. 나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런 구조적 특성의 발현으로 우수한 커피 맛, 우수한 맥주 맛의 기준에 내 입맛을 맞춘 게 된다. 




오늘 읽은 '한입 매일 철학' by 황진규의 구절도 불러올 수 있다. 파스칼의 허영 개념을 차용한다. 허영은 그 어원처럼 빈 꽃의 은유다. 실재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기호도 구속된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의도치 않게 취향이 바뀐 것이다. 물론 파스칼의 개인적 주장이다. 



사람의 입맛의 변화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의 원인을 찾자면 사회의 무수한 관계망도 있을 것이고, 정권과 기업의 경제 논리가 있을 것이고, 나의 무의식도 있을 것이고, 오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냥 몇 가지 원인을 추측하고 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한다. 






한 시간 동안 3 편의 짧은 수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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