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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3. 2019

저 청소일 하는데요?

이번 글은 두 가지 주제로 이뤄져 있다. 1. 도서 비평, 2. 인터뷰



동명의 책을 임대해서 읽었다(리디 셀렉트 등록 도서로, 셀렉트 가입 고객은 무료로 볼 수 있다)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었다. 제목 보고 골랐다. 내가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청소부임을 천명하며 작품발표한 것인가? 직업의 귀천을 꼼꼼히 나누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궁금증이 커져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다. 리디북스 서재에 책 한 권이 추가됐다.


책장을 몇 번 넘기자 대략적인 정보를 얻게 됐다. 1. 독립출판 서적이다. 2. 웹툰이다. 3. 작가는 (정말로) 청소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4. 작가의 그림은 엉성하다. 독립 출판이 아니라면 나오기 힘든 퀄리티였다. 동일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으로 끝까지 읽었다. 완독까지 걸린 시간은 25분이었다. 만화이고, 텍스트 사용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일러스트 북으로도 볼 수도 있다)


책을 다 읽고 짧은 리서치를 했다. 독립 서적 치고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했으며, 이 책으로 인해 작가는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책이 가진 중심 내용이라면 청소부라는 직업이 주는 창피함을 받아들이려는 자아의 싸움이다. 서열 사회에서 다들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다. 높은 준거점이 주는 박탈감을 느껴본 이들이 많을 터이다. 일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21세기의 한국 젊은이들은 작가의 자아실현 과정을 공감한다. 나 또한 공감한다. 공감이 만들어낸 승리다. 모자란 그림 실력을 공감과 다소 전위적인(과감한 공간 할애= 어떻게 보면 귀찮음의 발현) 구성을 통해 메웠다.


전혀 다른 세계의 접점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인간의 기본적 특성이다. 그런 이유에서 스파이더맨, 대리 사회, 저 청소일 하는데요? 등의 책이 화제가 된다. 평범한 학생과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의 접점을 파커에서 찾고, 강단에 서는 지식인과 지적 노동과 전혀 관계없는 대리 운전기사의 접점을 대리사회의 작가에서 찾고, 청소와 웹툰 창작의 접점을 위 책의 작가에서 찾는다. 동전의 양면 나누듯 인간의 특성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순 없다. 가장 크게 대조되는 부분을 강조하면 컨텐츠가 된다. 직업은 현대 사회에서 나를 규정하는 가장 큰 기표이다. 대립되는 기표란 틀이 제공하는 간극은 드라마틱하다. 낮져밤이도 같은 맥락이다.



2.

청소일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자. 나다. 여기서부터 셀프 인터뷰로 포맷이 변경된다.


질. 직업이 부끄러운가?  

답. 그럴 때도 있다.


질. 언제 부끄러운가?

답. 청소에 낮은 가치를 부여한 이들 앞에서 직업을 설명할 때가 그렇다.


질. 직업을 근거로 자신이 평가당할까 두려운 것인가?

답. 그렇다. 이 경우에 몇 가지 장치를 사용해 본인을 포장한다.


질. 어떤 장치인가?

답. 타이틀을 바꾼다. 청소부가 아닌 청소 사업가라고 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업가라는 언어는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제공한다. 청소부가 가진 이미지가 쓰레기통 비우고 변기 닦는 것이라면(실제 이런 일을 한다) 청소 사업가가 가진 이미지는 잠재 고객을 설득해 계약을 따내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다(이런 일도 한다)


질. 다른 장치는 무엇인가?

답. 청소와 거리가 먼(것으로 인식되는) 행위들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질. 예를 들어줄 수 있는가?

답. 물론이다. 독서(+독서모임), 글쓰기, 사진 촬영 등이다. 수치는 객관을 포장하기에 좋다. 일 년에 100~ 150 권의 책을 읽고 있음을 (은연중, 혹은 대놓고) 드러낸다.


질.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면 기분이 나아지는가?

답. 반대다. 기분이 좋지 않다. 청소업이 미래를 위해 거쳐가는 사소한 직업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을 하찮게 다루면, 그때 진짜 하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표는 누군가 내 직업을 물어볼 때 망설임 없이 cleaner(청소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청소는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노동 만족감을 주는 고마운 행위다.


질. 청소의 어떤 점이 좋은가?

답. 우선 수입이 나쁘지 않다. 청소부와 돈은 매치가 안 되는 것 같다. 실은 매치가 잘 된다. 차이가 눈에 보여 재밌다. 러브 하우스가 비포 애프터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면, 청소 비포 애프터의 차이는 개인적 만족감을 준다. 근무 중에 팟캐스트 청취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청소하는 나의 귀엔 항시 이어폰에 꽂혀 있다. 시사, 경제, 철학, 도서 팟캐스트를 듣는다. 청각은 시각보다 이해에 도움이 된다. 회사 사장들이 보고서를 읽지 않고 누군가에게 읽게 시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매일 3~ 5시간씩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돈을 벌며 배우기까지 하는 1석 2조의 활동이다. 그 외에 사람 상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질. 청소를 좋아하는 것 같다. 평생 할 것인가?

답. 평생은 모르겠지만, 오래 할 것 같다. 직접 청소를 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식으로 직책을 바꿀 수도 있다. 노동의 숭고함 논하기는 오버 같지만, 일정 부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버는 행위는 삶의 활력이 된다. 근무 시간엔 몸을 움직이고, 근무 시간 외엔 머리를 움직인다. 몸과 머리를 다 활용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스스로 활동의 차이를 실감하며 얻는 재미도 있다.


질. 잘 알겠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직업이 무언가?

답. 나 청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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