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7시 20분경 일어난 일이다. 제한속도 70킬로 구간에서 엑셀을 밟고 있었다. 5차선 도로인데, 마지막 차선은 우회전 차량 전용이다. 우회전 신호는 빨간불, 직진 신호는 초록불이었다. 나는 4번째 차선에서 순리에 맞게 직진 중이었다. 그 순간 앞 차가 급정거를 하고, 놀란 내가 급정거를 하고, 더 놀란 뒤차가 내 차를 박았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리고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안전벨트는 그 이름에 걸맞았다. 안전하게 유리창을 뚫고 나가려는 몸을 붙잡아주었다. 교통사고는 하늘에 날린 아드레날린 덕에하나도 아플 일 없었다. 차는 관성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앞차를 들이받았다. 아름다운 3중 하모니, 3중 추돌 사고가 완성됐다.
정황은 이렇다. 우리 차선에 4대의 차가 있었다. 1번째 차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온 건지, 급하게 우회전 라인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공간이 부족해서 4,5 번째 라인의 절반에 차를 걸친 채로 차를 정차했다. 그 뒤를 따르던 2번째 차량은 하는 수없이 급정거를 하게 됐고, 3번째(나)와 4번째도 이어서 멈췄다. 심폐소생술을 실제로 해 본 이들은 말한다. 보통 세기로 해서는 소용이 없다고. 갈비뼈 몇 대 부러트릴 각오로 눌러야 숨통이 트인단다. 결국 심폐소생술은 아프다. 충돌은등으로 받는심폐소생술이었다.
일단 온갖 생각이 질서 없이 뇌에 노크했다. 노크가 좀 과격했다.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상황을 확인했다. 내 차의 파손 정도가 심각했다. 앞 차는 문제가 없었다. 그 차와 뽀뽀한 내 차의 앞 범퍼 역시 멀쩡했다. 심각한 곳은 내 차의 뒤 범퍼였다. 뒤를 받은 소형 세단인 마쯔다3는 굉장히 튼튼한 친구였다. 앞 차의 뒤 범퍼를 완파 시키고 트렁크 손잡이와 라이트를 깰 정도의 충격을 가한 것치고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앞 그릴이 몇 개 부서졌고, 범퍼에 동그란 상처 하나 입은 정도였다. 트렁크 문이 닫히지 않아서 견인차를 불렀다. (트렁크를 열고 운전을 할 수 없다)
보험사와 다른 두 차주와 견인 업체와 카센터와 와이프와 고객들과 오늘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쁘지 않은 멀티태스킹 능력을 보였다. 견인차에 차를 싣고, 행선지를 보험사 연계 수리 업체가 아닌, 개인적으로 서비스 받아온 업체로 바꿨다. 직원을 귀가 시키고, 나 또한 견인 업자의 허락을 받고 그와 카센터로 향했다. 여러 사람과 절차를 조율하고, 보험사에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내 과실이 없는 상황으로 판단되었고, 지출금 없이 수리를 받게 됐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나쁜 소식도 있는 법이다. 인생의 진리다. 파손 정도가 심해서 폐차를 염두에 두란다. 안타까운 점은 폐차를 할 경우, 보험사에서 차량 가격을 말이 안 되게 책정하는 관례가 있다. 예를 들면 천만 원 주고 산 차를 폐차 시에 300만 원으로 계산한다는 식이다. 중고 부품을 써도 좋으니 그것만은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점잖게 요청했다.
카센터에서 차량 렌트도 병행했다. 나는 청소용품을 렌터카에 옮겨 싣고 귀가했다. 공교롭게도 렌트할 수 있는 차량은 10인승 승합차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 학원 관장님이 친히 운전했던 등하교 차량이 떠올랐다. 태권도 관장 빙의해서 도로를 달렸다. 인생 첫 봉고 운전 치고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송민호 노래 가사처럼 '겁'먹었지만 몇 분 뒤엔 노래를 불렀다. 걱정한 와이프는 반차를 쓰고 집에 왔다. 부부는 한낮에 집에서 상봉했다.
이상 사건 경위 브리핑을 마친다. 사건 이후 이야기는 이렇다. 집에 와서 와이프가 사온 포장 초밥과 라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그리고 검트리(호주 중고나라)에 올린 맥북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직거래 약속을 잡았다. 그 뒤로 호주 건강 보험 신청 양식을 작성하고 건강보험관리공단(Medicare)에 방문했다. 기다리며 와이프와 모바일 캐치마인드를 하며 부부 금슬을 다졌다. 그 후엔 집에 와서 근처 카페 겸 펍에 와 생맥주와 피자를 주문해서 먹었다. 랩탑도 챙겨 술을 마시며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이렇게.
오늘 나는 다치고, 폐차를 고려할 정도로 차가 파손되고, 10인승 승합차를 렌트해서 운전하고, 모르는 다수의 아무개 씨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이라고 부르기엔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이다. 이 모든 일 뒤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고에 개의치 않고 평소대로 할 일을 찾아서 한다. 사건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우리가 흔히 부르는 '어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카오스 속에 오더를 넣어 흐름을 내 것으로 가져온다. 멋부리지 않고 한국말로 이야기하자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익숙한 행동 몇 가지를 의식적으로(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함으로써 내 삶의 주도권을 뺏어오는 것이다. 며칠 뒤에는 오늘도 그리 특별하지 않은 하루 중 하나로 바뀐다.
어른은 특별함을 익숙한 것과 병치해 특별함을 희석시키는 사람이다. 이러면 큰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어느 정도 본인의 페이스를 유지하게 된다. 너무 짜릿하고 설레고 행복한 날은 없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즐겁고, 슬프고 우울하다. 에피쿠로스의 현생이다. 아타락시아(평온)을 높은 가치로 상정하고 그 기준에 맞게 사는 인간이다. 20대의 연애와 10대의 일탈처럼 짜릿한 경험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애석한 한편 지금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