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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10. 2019

띤떵훈 씨, 전문성이 부족하시네요

사진은 글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 자랑입니다.






일하는 중에 갑자기 생각했다. 나는 배운 것들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구나.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한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구적이지 못한 기억력은 인간이라는 종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다. 나는 종의 특성보다 나라는 개체의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 전문성은 한 가지 분야를 깊게 팠을 때 생긴다. 좋아하는 분야는 있지만, 내가 전문적이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1. 인간의 기억력 유통기한 주기에 맞춰 리마인드하는 작업이 부족하다.

인간이 10을 배우면 다음날 5를 기억한다. 일주일 후엔 3, 한 달 뒤엔 1이 남는다. 여기서 남은 1이 장기 기억 보관소에 남는다. 만약 다음날, 일주일 뒤, 한 달 뒤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면 효과적으로 장기 기억 보관소에 정보를 남길 수 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오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봤던 것을 또 보는 것보다 새로운 정보를 많이 집어넣으면 정보의 절대치가 는다는 믿음이다. 그렇지 않다. 이것은 복습에 걸리는 시간과 처음 보는 자료를 학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복습에 걸리는 시간은 짧다. 특히나 핵심 요약정리 노트가 있다면 2시간 걸려 배운 지식을 다시 다지는 데 10분이 걸린다. 복습은 짧은 시간 투자로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다.



2. 지표에 휘둘린다.

책을 몇 권 읽었냐, 철학 팟캐스트를 몇 편 들었냐, 글을 몇 개 썼냐 등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결과에 신경을 쓴 탓도 있다. 책 하나를 10번 읽은 것이 10 권의 다른 책 읽은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전문성'이 목표라면 더더욱 전자가 효율적이다. 넓은 이해보다 깊은 이해가 전문성과 어울리는 단어다. 그루핑을 하자면 깊은 이해, 전문성, 반복, 복습 등이 한 카테고리에 속하리라.



3. 학습에 노력이 덜 한다.

효율적 독서, 효율적 학습 방법을 다룬 책을 몇 권인가 읽었다. 저자도 책 제목도, 구체적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핵심은 기억할 수 있다. 딱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메타인지다. 몇 가지 구체적 방법을 남긴다.

3-1. 배움 전에 내가 어떤 배움을 얻을지 미리 예상한다. 목차 읽기가 이에 포함된다.

3-2. 배움 중간중간에 정보의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다.

3-3. 배움 중간중간에 핵심 키워드를 도식화해서 서로 연결한다.

3-4. 배움 중간중간에 예상한 정보와 실제 정보의 차이를 비교한다. 왜 차이가 생겼는지 알게 되면 배움에 인상적인 장면이 추가되어 강조 효과가 생긴다.

3-5. 배움 끝에 배운 것을 글로 남긴다. 이때 원자료를 보거나 듣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남긴다.

3-6. 남긴 것과 원자료를 비교해서 노트로 남긴다.

3-7. 정리한 노트를 반복해서 읽는다.


나는 3-1과 3-2에 소홀하다. 같은 시간을 배움에 투자하지만 거기에 쏟는 집중력과 노력의 정도는 다르다. 나태한 학습은 자기 합리화와 같다. '내가 자기발전을 위해 이만큼 시간을 쏟고 있어. 할 만큼 했어' 나의 학습은 나태하다.



4. 공론의 장이 부재하다.

어려운 담론일수록 학습하고 그것을 나눌 사람들이 필요하다. 철학이나 사상의 경우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에 참여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오류를 잡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성취에 자극을 받아 배움에 정진하는 계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공론의 장이 없다. 독서모임이나 와이프와의 대화는 유익하지만, 특정 분야의 일정 깊이 이상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나도 그들의 전문 분야를 모른다)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정신승리할 수 있지만, 찾아보면 방법은 많다.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카페나 채팅방 등의 채널을 경유해 생각을 나눌 수 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귀찮고, 망신당할 수 있다는 걱정 등이 이유다.



최근엔 How to Read 데리다를 읽고 있다. 데리다를 깊이 이해하는 세계적인 석학이 저자가 된다. 데리다 사상의 정수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한 가지 주제에 자극이 많을수록 깊이와 이해가 생긴다. 독서와 병행해 철학 팟캐스트(두철수)에서 데리다 에피소드를 청취했다.



듣다가 자조 섞인 물음을 던졌다. 나라는 인간은 누군가의 사상을 답습하는 것도 벅차한다. 이런 내가 새로운 철학 혹은 문화 비평 방법론을 만들어서 주체적으로 세게를 파악할 수 있을까?

'아니 어려울 거야. 너는 시도조차 안 하는걸.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의 제시는 학계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할 수가 없어. 최신의 의제를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 속해야 한발 더 내밀 수 있는 기회가 생기거든'



인간의 가능성에 한계는 없다, 구조주의자 빙의해서 특정 상황과 맥락에 나를 집어넣으면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체보다 개체를 둘러싼 촘촘한 관계망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의도적으로 주위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대학에 철학이나 인문학 관련 과로 진학해 석사, 박사 과정을 끝낸다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기본 연장을 받는다. 진학이 불가능한가? 가능하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글쎄.

위 물음을 정리하면 이렇다.


- 나는 A라는 성취를 이루고 싶다. 그러나 B가 없어서 못 이룬다. B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얻을 수 있다. B를 얻었으나 C가 없어서 A를 이룰 수 없다. C는 얻을 수 있다. 그러나 D가 없어서 A를 이룰 수 없다. D를 얻을 수 있다. D를 얻었으나......



나는 내가 어떤 일을 못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 책임을 전가한다. 잘 관리된 무의식의 힘이다. 나약한 이고를 지켜주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만드는 것이다. 비평가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판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애드혹으로 대처한다. 반증 자료를 대면했을 때 '이런 경우에는 통용되지 않는다'라고 살길을 마련한다. 반증가능성 개념을 만든 칼 포퍼가 들었다면 '와... 이건 좀...'이라고 대답했을지도. 셀프 크리틱에서 나온 지적 사항에 에드혹을 붙여 비난을 쓰루(Through) 한다. 월드 클래스 윙백이 선보이는 스루패스와 비슷한 수준의 책임 전가다.



얼마 전에 칭찬의 힘을 기술한 책 2권을 읽었다. 나를 비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30년 관찰한 결과, 나는 당근에 강한 편이다. 채찍 1 당근 9 비율이 나와 잘 맞다. 이런 셀프 비평을 토대로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아들, 엄마는 아들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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