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과 요조가 함께 진행하는 도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요조 인트로를 인용하며 글을 시작한다. 남들이 궁금한 게 궁금한 나(요조 아님)다. 궁금증 해소를 위해 화제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었다. 독서는 6시 38분에 시작돼서 7시 43분에 끝났다. 1시간 5분 동안 뇌를 오갔던 생각을 글로 남기겠다. 빠른 진행을 위해 특별한 구성 없이 카테고리 별로 단상을 정리하겠다.
1. 제목
문장형 제목이다. 한국 출판계 트렌트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일선에서 유행을 만든 장본인 중 하나다. 일전에 독서모임 발제 도서여서 피치 못하게 구매해야 했던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와 동류다. 페미니즘과 힐링 에세이라는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 책이지만 특징이 비슷하다. 분량이 짧고, 쉽고, 문장력이 아쉽고, 얕고, 젊은 독자층을 타겟으로 한다. 문장형 제목의 책은 표지 디자인도 비슷하다. 제목과 표지 DNA가 출판계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렸다. 봉쥬 비어, 방구 비어, 빙구 비어 류의 카피 프랜차이즈와 같다. (차이라면 오리지날의 퀄리티도 별로란 점) 긴 제목과 힙한 표지 디자인은 허술한 문장력과 책의 콘텐츠를 가리는데 효과적이다.
2. 분량
핸드폰(갤럭시 s9+) 액정 위, 기본 폰트를 기준으로, 책은 143페이지다. 기타 책 내용과 관련 없는 페이지 제하면 실제 분량은 더 짧다. 대화 형식으로 중심 안건이 진행되기 때문에 줄 나누기가 많다. 글자 수는 6.3만자다. 이 책은 2권으로 나눠서 출판됐다. 2권을 하나로 합쳐야 한 권 분량이다. 불필요한 권 수 나누기 전략이 숨어 있다. 분열엔 장점도 있다. 읽은 책 수 늘려 말할 수 있다. 하프 마라톤은 상대적으로 완주가 쉽다.
3. 구성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녹취하고 녹취 내용을 글로 옮겼다. 그 둘의 대화가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상담 이후엔 상담과 관련한 짧은 단상 남기기가 뒤따른다. 100페이지 정도 되면 상담과 단상 남기기가 끝이 난다. 나머지 40페이지는 본인이 쓴 사설(일기에 가까운) 모음이 수록됐다. 다 읽었지만 작가가 왜 이런 형식을 취했는지 알 수 없다.
4. 괄호 사용
저자는 기가 막힌 괄호 사용으로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괄호 사용과 다른 의미로 말이다. 여기 인상적인 몇 구절을 인용한다.
-친구들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만족도가 더 중요해요(단호박)
-나: (감동의 눈물) 내. 감사해요.
-나: (갑자기 눈물 터짐) 정말 기뻐할 거 같아요.
-나: (이때 눈물 터짐) 저 너무 착한 척하죠?
인터넷 썰 풀기 양식을 그대로 떠다 지면 위로 옮겼다. 경탄의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크로스 컬처, 플랫폼 대통합이다.
5. 내용
제목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다. 죽고 싶지만(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떡볶이는 먹고 싶어(보내는 위안)
죽음은 나의 고통스러운 감정이고 떡볶이는 행복한 감정이다. 양극단의 접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치유 에세이다. 문제는 (전문가의 감수를 받았다고는 하나) 일반인 독자가 쓴 에세이의 벽을 넘지 못한다. 중간에 개념의 오용도 있다.(롤랑 바르트의 사진 분석 방법론인 푼크툼을 개인적 기호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구체적 치유 방법이 구술된 책이 아니다. 단지 저자 백세희의 투병일기다. 백세희가 투정 부리고 의사는 투정을 받아준다. 방문 별로 챕터를 나눌 필요가 없다. 동어반복식으로 자기 비난, 자기 연민을 한다. 구체적으론 교우 관계를 되돌아보고 반성한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해결방안을 기대하고 본 독자라면 실망한다. 남 일기장 훔쳐보는 관음의 재미,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위안 정도가 남는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말했듯, 그녀는 문예 창작과 출신이다. 그녀는 문예 창작과가 갖는 아우라를 설명한다. 그 단어가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오는 실망이 두렵다고 말한다. 본인 출신을 숨기게 됐다고 하는데, 글에서도 숨겼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녀의 글은 실망스럽다. 글빨은 기대를 채우지 못한다. 출판 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문 사용은 넘어가더라도, 불필요한 형용사 부사, 접속사 사용이 자꾸 눈에 밟힌다. 문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불확실의 표현도 많다. 아마, 나도 잘 모르는, 잘 몰라서, 것 같다... 창의성도 아쉽다. 힘 들어간 클리셰의 대향연이다. 읽는 내내 기시감에 시달린다. 있어 보이지만, 그만큼 낡고 명확하지 않은 단어(혹은 단어 조합)가 산개해있다. 예를 들면,
주어 서술이 모호하고, 문장이 지저분하다. 이를테면, '약하기에 약한 것들이 두렵고 싫고 무서운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내 안에 없던 걸 만들어내고 연대하는 순간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핵심은 없고 의욕은 있다.
또한 구체적 대안 제시 없이 그 순간 쓰고 소모되어 버리는 각오들이 즐비했다. 구색 맞추기를 위한 문장이다. 예를 들면 '진부하고 구린 거짓말'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이 그렇다. '으으 솔직해지고 싶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부담 없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6. 나머지 단상
리디 셀렉트를 통해 무료로 읽었다. 돈을 내야 했다면 안 읽었다. 이 책은 3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1. 도서의 굿즈화 2. 낮은 출판 장벽 3. 국내 독자들의 기호. 말 그대로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내용이 어떻든 포장이 예쁘면 팔린다. 출판사도 수익 창출을 위해 존재한다. 돈이 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작가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 적당히 콘셉트 맞는 글쓴이를 찾아 검수 없이 포장하고 출하한다.
학창시절에 자주 다이제를 사 먹었다. 양이 많고, 합리적인 가격대를 갖추고, 맛이 있었다. 비닐 포장지는 빈 공간 없이 내용물을 감쌌다. 닥터유라는 이름이 붙자, 과자보다 빈 공간이 더 많은 제품으로 변했다. 종이 박스 안에 있는 공기도 값을 매겼다. 죽떡먹은 출판계의 닥터유 다이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