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설리를 고통으로 이끈 것일까?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자본주의에서 아이돌이 다뤄지는 방식을 짚고 넘어간다.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누구도 아버지의 법(자본이라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거부할 수 없다. 기획사는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친구들을 찾아 몇 가지 조치를 하고 무대 위로 올린다. 아이돌이 대체되는 주기는 가속화된다. 연예계에서 오가는 돈이 늘어갈수록 신제품(사람을 물화된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연예인들은 기구한 삶을 살게 된다. 찬양 받으면서도 철저히 도구로 취급된다. 찬양은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킬 때만 유지되는 것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대체로 십 년을 넘지 못 한다.
문화비평가 이택광의 말대로 가수는 유행의 산물이다. 전성기는 짧고, 쇠락은 필연적이다. 시장의 법칙에 따라 '한물갔다'는 수식을 뒤따른다. 상품 가치의 저하는 존재가 소멸을 의미한다. 극단적 선택의 결정적 이유는 존재 소멸의 공포 때문이라는 이택광의 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연예인은 대중의 대상화를 본인의 욕망으로 체현한다. 외모가 상품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아이돌은 특히 정도가 심하다. 실재의 나와 대중이 보는 나의 간극은 자신을 괴롭힌다. 분열적 실체가 된 이들은 자신을 참을 수 없다. 대중의 욕망을 이뤄줄(소녀시대가 소원을 말해보라며 대중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투영하는 것처럼) 수 없을 때, 상상의 붕괴는 본인 존재의 소멸로 다가온다. 이것이 연예인의 숙명이고 이중적 시선이 자아를 괴롭힌다.
언론이나 대중이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을 화제로 다룰 때 곧잘 우울증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우울증은 병리적 현상이다. 그 뒤를 보는 일은 어렵(지만 당위적인)다. 그만큼의 열정을 쏟을 이가 많지 않다.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 세미나에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로 인간을 규정했다. 아이돌이 짊어진 욕망은 고되다. 자연스레 완벽한 몸매와 얼굴을 유지하길 욕망한다. 통제하는 것은 외모만이 아니다. 시장이 품을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은 OK, 그 이상은 불가. 언행은 늘 높은 도덕성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예술가에게 세속적이길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다른 이정표를 동시에 요구받아 아이들의 혼란은 가중된다. 정치적, 사회적 발언 역시 지위를 위태롭게 만든다. 설리는 그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올라가려 했고, 아버지의 초법적 권위에 억눌렸다. 사회는 연예인에게 예쁘게만 존재하다 스크린 뒤로 사라질 것을 명한다.
정리하자면, 타자의 욕망을 체현한 이들이 그 욕망의 실현이 힘에 부침을 느낄 때 본인의 존재 이유를 부정당한다. 대중의 시선이 자신의 쓸모에 결정적이라 믿게 만든 사회 탓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취할 수 있는 구제 방안은 두 가지다. 1. 상품이 된 나와 실존적 나를 구분하는 것 2. 상품의 수명이 한정적임을 인지하는 것. 대중의 욕망을 영원히 충족시킬 수 없다. 그 욕망을 나의 전부로 인식하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끝이 온다. 나의 일부가 소멸해도 남는 본체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두 번째는 돌아가는 길을 인식하는 것이다. 헨델과 그레텔이 과자집으로 향할 때 빵 조각을 바닥에 흘리며 돌아갈 길을 다져놓은 것처럼, 연예인의 삶이 편도가 아닌 왕복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보다 예상 범위 안에 있는 문제가 다루기 더 쉽다. 인기의 끝을 알고 있는 것이 완충제 역할을 할 것이다.
개인이 모든 짐을 해결하길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나 아이돌의 삶이 이른 나이에 시작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가까이 선 소속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상품이 되는 길을 알려주는 것뿐만이 아닌,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악플을 어느 정도 필터링해야 한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충격이 누적되면 버티기 어렵다. 통제 가능한 채널 위에서 연예인들에게 노출되는 정보를 제한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에 말이 나오고 있는 악플 금지법 등은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난 악의적 비방이 넘쳐난다. 솜방망이 처벌은 그들의 행위에 힘을 싣는다. 일벌백계의 처벌로 본인의 사소한 행동이 얼마나 큰 여파를 불러오는지 대중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또한 자극적인 방송을 만들어 연예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엔 대중의 피드백이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포퓰리즘과 한 몸과 다름없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상품은 배제된다. 누군가의 인격을 밟아가며, 불필요한 사생활을 노출하며 돈을 벌려는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윤리적으로 제재와 비판의 말을 건네야 한다. 연예인들의 사적 영역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누가 더 자극적으로 만드나 싸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과열된 비인간적 장사를 식힐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존재를 배제하며 존재할 수 없다. 수준 높은 개인주의의 토대 아래서 상대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