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의 글의 치사함

by 띤떵훈


글쓰기 동호회 파운틴의 회원으로서 활동한 시간이 어느덧 9 개월. 정확히 언제부터 활동을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카페의 최초글을 확인했다. 1월 5일, 회원 승인을 위해 보낸 자기 소개글이 카페에 올라 왔다. 그 전까지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낙서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완성된 글을 쓸 능력이 없었던 내게 동호회 가입은 좋은 기회였다. 회원이 되면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써야 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므로 신경써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좋은 모습은 못 보일지언정, 망신은 당하지 말자는 일념 하나로 첫 글을 썼다.

다른 회원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워, 변명을 위한 소개글을 올렸다. '저는 퇴고도 안 하고, 생각나는 대로 쓰는 타입이라 문장력이 안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가 글의 요지였다. 실은 안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안 좋은 것이었다. 부족한 실력이 드러나도, 막 쓴 거니까. 혹은 나만의 독특한 문체를 위한 의도된 파격. 이라고 받아드리길 종용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역시 문장력이다. 빈도는 잦았지만 몰입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문장력은 낙제였다.

다른 회원들의 열정과 깊이가 보이는 글 덕분에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변해갔다. 글쓰기에 부담은 덜고 여가 없이 생각을 적어내는 것, 신중을 기해서 문장을 정제하는 방법, 엎치락 뒤치락 서로의 유익함을 자랑한다. 평가는 매일 변하는데, 어떤 게 더 좋다고 단언할 수 없다.하지만 앞서 말했듯 처음과 비교해 신중 쪽으로 기울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퍼블리쉬가 될 글의 경우, 주제를 보강할 수 있게 자료를 조사한다. 일차 작성 후에는 클리쉐를 제거하고, 상황에 어울리는 묘사도 추가한다. 덕분에 '사유'를 살짝 맛보는 수준의 글이 나온다. 그와 반비례해서 글쓰기에 부담이 더해진다. 이런 이유로 최근 한 달 이상, 파운틴에 퍼블리시용 글을 올리지 않았다. 부담 없이 쓸만한 가벼운 소재의 글을 빠른 시간에 써서 블로그에 업로드할 뿐이다. 최근 시스템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에 관한 공지글이 올라왔다. 매니져님은 공지를 읽으라고 했고, 오랜만에 파운틴을 찾았다. 글 중간에 한 문단에서 시선이 멈췄다.

-----
​사실은 6월에 '콘텐츠하다'와 '일요일'이라는 출판사와 함께 대안 콘텐츠에 관한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때 전 파운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일상적 글쓰기 모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우리의 글이 어떻게 변해왔는지...그리고 브런치에서의 조회수와 글에 대한 댓글 반응.
회의는 어느새 파운틴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고 '일요일'출판사의 대표와 직원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했습니다. 그들 역시 갈수록 상업화 되어가는 저속한 콘텐츠들에 대해서 염증을 느꼈고 인문학적인 좋은 콘텐츠가 뭐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우리의 시도와 성과가 묘한 쾌감을 준 것 같습니다. 우린 책자 매거진과 웹플랫폼까지 아이디어를 확장했고 성공가능성에 대한 예감까지 점쳐봤습니다.
일요일 출판사 대표는 신정훈님의 '응답하라 스타벅스'(http://contentshada.com/archives/9195)이야기를 눈여겨 봤습니다.

다른 글들도 너무 좋지만 이 글은 정말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추후 웹플랫폼을 만들었을 때 광고를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는 미지수라고 봐요. 그런데 이 글을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보입니다. 스타벅스 측이 정말 원하는 광고이면서 동시에 독자가 봐도 부담스럽지 않은 글이죠.
[출처] Close Your Eyes (작가모임 및 매거진 제작회의 후기) (비공개 카페\
-----
​ 일요일이란 출판사를 모른다. 누군가가 나의 글에서 특별함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체는 간결하고, 수식이 적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특별한 맛이 줄어들고 어디서나 볼 법한 느낌이 길 끝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니. 플롯은 거저먹기 식으로 단상을 적고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을 때 사용하는 꼼수이다. 밖으로 꺼낸 문장을 많이 살리기 때문에, 긴 분량의 글이 금새 완성된다. 스스로 치사하다고 평가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다.
일 전에도 퍼블리시한 글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파운틴 멤버로서 브런치에 올린 칼럼 중 하나가 엄청난 수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파운틴 브런치 계정은 매니져님이 관리하기 때문에, 나중에야 알게 됐다. 연애에 관한 글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것도 치사한 방식으로 쓴 글이었다. 퇴고를 몇 차례나 했음에도 저렴한 느낌이 남았다. 사유를 아껴서 억지로 분량만 채운 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글에 야박한 편이 아니지만, 형편없다 평가했던 칼럼이었다. 대중이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브런치의 메인에 올릴 글을 선별하는 팀의 선구안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됐다. 수준 낮은 글이라도 독자에게 흥미로운 소재라면 거리낌 없이 채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에 선구안이 있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비슷한 말을 했다. 위 두 개의 글만큼, 치사한 것이 나의 마음이다. 인정할 수 없는 글이 칭찬을 받았음에도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글을 쓸 기운을 얻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다. 정의롭지 못 한 생각이며, 자존감을 낮추기도 한다. 자기 기준에 맞춰 눈치 보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주입하면서도, 눈치 엄청 보고 산다. 자존감도,자신감도 눈치 없이 고개를 들이민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란 말이 있는데, 이 상황은 분명 빠질 때다.
칭찬을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고래보다 부피도 작고, 귀가 두꺼운줄 알았지만 실은 얇은 나는 해드스핀까지 할 판이다. 캐릭터 없고, 가벼운 글 위주로 쓰는 나이기에 특별함은 없다고 생각했다. 호주에서 살다보면, 여기 사람들은 다양성 존중이라는 미명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이슈에 있어 그렇다. 이제서야 그들의 입장에 깊게 공감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존중받으니, 허접한 글에도 관심을 표하는 사람도 있는 게 아니겠나. 매니악한 취향을 가진 누군가를 위해 글쓰기에 조금 더 힘을 실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타인을 위한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