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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22. 2016

친구의 탈선

 친구와 나는 같은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친구가 알려준 길로, 한 번 들어서면 벗어나기 힘든 곳이다. 주사위 던지는 재미에 시간을 뺏긴다. 친구는 일 년 넘게 서행하고, 최근 나는 폭주기관차처럼 과속한다. 두 달 가까이 게임을 한 입장에서 보면, 넷마블은 어떤 요소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도박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모두의 마블은 사행성 게임이라 불리기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도박적 요소가 가득하다. 사전적 의미처럼 유저들은 요행을 바라고 횡재를 노린다. 일주일에 두 번씩 새로운 이벤트가 나오는데, '자 여러분 다이아를 사용하면 평소에 얻기 힘든 아이템을 한 번에 얻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돈이 새고 있다. 조금만 더 하면 좋은 아이템을 얻을 것같은 마음에 모바일 결제를 한다. 재밌으니 용서할 수 있다. 친구와 우정도 돈독해지니 이걸로 된 게 아닌가 합리화도 한다. 실은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다른 유익한 활동을 하는 시간을 뺏기고 있음에도 다양한 장점을 들어가며 납득시킨다. 이 재밌는 게임을 쉽게 놓지 못 할 걸 알기 때문에, 말장난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한다. 어차피 게임을 할 생각이면, 스트레스 없이 재밌게 해야지,라고.


 친구는 많은 것을 알려줬다. 갱신된 이벤트가 효율이 좋은지, 특정 맵에 어떤 캐릭터가 강력한지, 캐릭터별 잘 어울리는 아이템은 무엇인지 등등. 이미 강력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구비한 친구는 여간해서 지지 않는다. 같이 할 때 든든한 아군이다. 그의 지도편달에 의해 캐릭터와 전략은 나날이 강해진다. 친구의 퇴근시간에 맞춰 같이 게임하기를 권유한다. 협력해서 주사위를 던지며 강한 적들을 무찌른다. 


 그런 그가 돌연 게임을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왜냐고 물으니, 개인 시간을 너무 뺏겨서 생산적으로 여가를 보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나도 느끼고, 외면하고 있는 사실이다. 신규 유저도 그러는데, 일 년이 넘은 그는 오죽할까. 그 말을 듣고 몇 가지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첫째로 친구에게 잘 된 일이니 응원하자란 격려의 감정이다. 친구가 잘 되길 바란다. 게임하는 시간을 다른 데 투자하면, 그의 연봉은 오르고 삶의 질 또한 동반 상승할 것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어찌 안 된다며 잡을 수 있을까


 두 번째, 아쉬움이다. 강한 파트너와 협력해서 연승 가도를 달리는 것은 유쾌하다. 세상 어디에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기는 편이 재밌다. 훌륭한 스승이자 동지가 없으면 승률이 떨어진다. 게임이 재미 없어질 게 뻔하다. 이제 완벽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 적어질 것이다. 팀원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무책임하게 오토로 돌려놓고 게임을 떠나버린다면 속이 상한다. 즐거우려고 하는 게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 아이러니.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승리가 여러모로 유익하다.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원망이다. 나을 향한 원망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위치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분발해야겠다는 자극을 받는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의지를 다진다. 그러다가도 게임을 하면 내가 그렇지 뭐...라고 말한다. 매 판 클로버가 하나 씩 없어지듯, 자신에 신뢰도 -1 -1 -1 씩 차감된다. 게임은 해야겠고, 욕은 먹기 싫다. 자기애가 강해서 상처 주는 말을 뱉고 싶지 않다. 무의미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를 보며 위안을 얻었고, 합리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잖아.


 결국 친구가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내게 올바른 행위였다고 간주했고, 생산적 삶으로의 회귀가 탈선이 됐다. 친구 따라 강남 갔던 것처럼, 귀가도 비슷하게 하면 좋을 텐데. 중요한 핑계를 잃어서, 시선을 게임 밖으로 두어야 한다는 위기감이 찾아온다. 결국 올해 1월부터 해오던 다른 게임을 지웠다. 단칼에 잘라버릴 정도로 독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만큼은 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홀로 하는 모두의 마블이 재미없다면 내게도 유익하니, 이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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