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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Sep 26. 2016

17살의 내가 그린 서른과 실제 서른의 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3시 30분쯤 눈을 뜬다. 마우스를 움직이자 모니터가 빛을 내뿜는다. 어둠에 익숙한 눈이 살짝 찡그려진다. 온라인 게임을 켜놓고 잤다. 팔고 싶은 물건이 있어, 유저가 많은 지역에 자리를 잡고 매대를 폈다. 그 사이 몇 가지 아이템이 팔렸다. 이 돈으로 레벨에 맞는 아이템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사냥을 하다 게임을 끈다. 며칠 전에 다운로드한 영화를 재생한다. 보다 보니 아침 5시,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일어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아침 운동을 나가시고 나는 영화를 감상한다. 한 시간 후 아버지가 운동에서 돌아오시고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요리에 소질이 없는 분이고, 시골 입맛을 갖고 있다. 그가 만든 요리를 앞에 두고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맛에 대해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면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매일 먹을 것이다.


 아침 5시 30분, 눈이 떠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여전하다. 전날 멜버른대학교 석사 연구 인터뷰에 인터뷰이로 참석했다. 동북아시아 출신 국제 학생들의 쇼핑 패턴을 조사하기 위함이란다. 친구의 권유였는데, 인터뷰를 하면 중식당 10불 바우쳐와 현금 10불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꺼이 승낙했다. 큰 문제없이 인터뷰가 끝났지만, 여전히 영어에 부족함을 느꼈다.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오늘은 모바일 게임 대신 한 시간 동안 호주 가디언지 지문을 몇 개 읽는다. 배가 조금 출출해지는데, 컵라면 하나 먹어야겠다.


 식사를 마친 후, 교복을 입는다. 또 늦게까지 학교에 있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집을 나서니 선선한 날씨가 나를 반긴다. 가을이 되어 날이 풀렸다. 자전거 통학하기 딱 좋은 날씨다. 0교시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선다. 동네 책방을 향해 분주히 페달을 밟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책방 문은 닫혀 있다. 언제고처럼 문 옆에 있는 벨을 누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취한 주인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책 빌리러 왔어요."  그가 조금 늦게 내려오는 탓에 책을 고를 시간이 줄어들었다. 무협지 두 권을 골라 아저씨에게 1400원을 건넨다. 오늘 수업 시간은 심심하지 않겠다.


 아침 9시 30분까지 늑장을 피울 수 있다. 아침 10시에 고객 사무실 청소 픽스를 하는 것이 오늘 스케줄의 전부이다. 짧게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이 주는 여유와 생산성으로 미루고 미뤄왔던 파운틴 에세이를 쓰기로 한다. 내 침대에서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가 숙면 중이기 때문에 되도록 소리를 죽이고 타이핑을 한다. 전날 새벽까지 과제를 하느라 힘들었을 터이다. 잠을 방해하면 안 된다. 책상에 컵라면의 잔해가 있다. 과제 중에 출출했나 보다. 자기 전에 치웠으면 좋았을 텐데.


 학교 수업은 지루하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학교에 있으려니 죽을 맛이다. 무협지 없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학급 친구들은 좀비처럼 기운이 없어 보인다. 중식 시간이 돼서야 다들 정신이 맑아진다. 공무원, 회사원이 되기 위해 이렇게 아까운 청춘을 보내는 걸까. 이런 답답한 생활을 인내한 보상이 그런 시원찮은 것들이라면 자신에게 면목없다. 게다가 정해진 궤도에서 사는 건 지루해 참을 수 없다. 30살이 되기 전에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우리 가족들 어깨 펴고 당당히 걸을 수 있게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어줄 생각이다. 나는 난놈이고, 뭐든 할 수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하고 싶은 것들 다 하고 살아야지.


 요즘 일이 많지 않다. 매니저에게 기존 고객을 맡긴 이후로 1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올해 7월 중순부터 일을 늘리기 시작했으니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수, 목, 금은 일이 있는 편인데, 여전히 월요일 화요일은 노느라 바쁘다. 고객이 많아져야 수입이 느는데, 지금 상황에선 일을 확장하기 전보다 못 하다. 결국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호주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보다 못 벌고 있다. 사업이라면 하이 리스크 하이 인컴인데, 어느 순간 안주하는 것에 몸이 익숙해졌는지 과감한 계획을 하지 않는다. 가끔 정해진 궤도에서 안정된 수입을 받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느낀다. 영어가 완벽하지도 않고, 정비 기술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엔 제약이 있다. 하고 싶은 것들 참고, 공부와 일에 매진해야 할 때이다.


 학교에 새로 선생님이 오셨다. 지방 국립대 출신 영어 선생님인데, 졸업하고 바로 부임했다고 한다. 나이는 24살이고,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상대가 있단다. 역시 학교 소문은 빠르다. 24살에 결혼이면 조금 이른 감이 있는데,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20대 초반이나 후반이나 성숙하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문제는 경제력이니까. 다만 친구들이 언제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는 40이라고 대답한다. "돈 많이 벌어서 뭐하겠어. 결혼하기 전에 실컷 방탕한 생활도 해봐야지." 놀 거 다 놀았단 생각이 들 때 결혼하는 게 이상적이다. 아마 마흔 정도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결혼 후엔 제약이 많다고 한다. 그전까지 개망나니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 달 뒤면 서른이 된다. 기혼자인 지인들에게 결혼에 대해 묻는다. 막연하면서도 가까운 느낌이다. 걱정이 되는 건 이렇게 어리고 미성숙한 내가 누군가를 부양해서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이다. 어차피 미루고 미룬다 해도, 언제고 가족을 꾸리기에 부족함이 많다고 느낄 게 뻔하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마음 통하는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며 안정된 유대감으로, 지지하고 받으며 살고 싶다. 마흔 결혼 플랜은 버린 지 오래다.


 결국 어린 내가 그린 서른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됐다. 사업가로 큰 성공을 하지도 않았으며, 부모님께 든든한 후원자가 되지도 못 했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렇다 해도 자신에게 실망했다거나, 한숨으로 하루를 지내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는 있지만, 이 10년의 경험이 싫지 않다. 분발했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많은 것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글을 쓰는 시간, 만나는 사람들, 먹는 음식들, 나의 여가, 어디에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머리에 그리는 마흔과 실제 마흔의 나와 간극이 있더라도 존중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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