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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15. 2021

토요일 아침 글쓰기

부의 속도, 머니 게임 외


토요일 아침이다. 멜버른의 아침은 비로 시작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 사이를 뚫고 집 앞 카페에 나왔다. 랩탑을 펴서 여러 주제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남길까 한다. 내 직업과, 책 '부의 속도'와 웹 예능 '머니 게임'에 대한 3가지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1.

세상엔 여러 직업이 있다. 대체로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세상은 청소부를 원한다. 나는 세상에 이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과론적 이야기다. 쉽고(주관적) 돈 많이 주는 일을 찾다 보니 나온 게 청소다. 사명 아닌 효율이 골라준 일이다. 어쩌다 보니 8년 동안 청소기 돌리고 있다. 떠밀려한 일이지만 직업만족도가 높다.


직업의 장점은 여러 가지 있는데 오늘은 한 가지에 포커스를 맞출까 한다. 바로 듣는 자유다. 업무 시간에 이어폰 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방문 직후 1분가량이다. 충실히 피드백이나 요구 사항을 듣고, 완벽히 혼자됐을 때 이어폰을 착용한다. 내 일은 고객이 원하는 적당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어폰 착용은 직업윤리에 반하지 않는다.


청소는 반복이다. 현상태가 만족스러워 새로운 고객 받을 필요를 못 느낀다. 기존 고객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청소 내용이 비슷하다. 집에 따라 구조와 청소 패턴이 조금씩 다르다. 그것도 삼 회 방문이면 적응하기 충분하다. 신경 쓸 일이 많지 않다.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시스템 A의 영역이다. 몸이 일할 때 정신은 놀고 있다. 이어폰으로 할 일을 준다.


이어폰을 통해 팟캐스트를 청취하고 책을 읽(듣)는다. 리디북스는 해외 결제를 허용해주는 몇 안 되는 고마운 플랫폼이다. 리디북스를 이용하면 구매한 책의 청취 기능을 무료로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팟캐스트 7/ 이북 3의 비율로 들었는데, 최근엔 팟캐스트 3/ 이북 7 비율로 전세가 역전됐다. 청취 기능의 다른 장점은 청취 속도 조절이 가능하단 점이다. 나는 보통 3배속으로 책을 듣는다. 3배속이 실제 독서 속도와 비슷하다. 이보다 더 빠르게도 가능한데, 그 경우엔 이해력이 감당하지 못 한다. 일반적인 요즘 책의 분량은 12만 자다. 좀 많다 하면 25만 자다. 12만 자 책의 경우 4시간 정도(이해 위한 중지, 하이라이트 하는 시간 포함) 면 완독이 가능하다. 25만 자 책은 8시간 정도다. 12만 자 책은 당일 구매, 당일 완독한다. 25만 자는 이틀이 걸린다. 2021년엔 200 권 정도 읽을 것같다.



청소할 때 집중이 잘 된다. 온전히 오디오북을 들을 때 보다 낫다. 유리 닦으면서 들을 때 연산이 빨라진다. 손이 청결 유지하는 동안, 뇌는 듣고 이해하고 카테고리 별로 지식을 나눠 담는다. 청소는 일석삼조다. 돈 줘, 운동시켜줘, 책 읽어줘. 안 좋아할 수 없다. 세상에 이롭고 내게도 이롭다.



2.

금요일은 일이 많다. 덕분에 청취 기능으로 책 한 권을 끝낼 수 있었다. 어제 읽은 책은 '부의 속도'란 책이다. 최근에 파이어족에 대해 글을 썼다. 경제적 자립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지금까지 투자 서적을 많이 읽었다. 모든 서적이 경제적 자립을 말한다. 그러다 온전히 파이어족을 중심에 놓은 책을 읽은 적이 없단 사실을 떠올렸다. 리디북스에 파이어족이란 키워드로 검색하자 책이 몇 권 나왔다. '부의 속도'가 거기 있었다. 1/10 분량의 체험판도 있었다. 체험판을 받았다.


책 수준이 낮다. 엄청난 인사이트는 없다. 아는 내용 반복이다. 잘 모르는 부동산은 논외로 치고, 주식 투자를 언급한 부분만 놓고 보면 그렇다. 저자의 주식 경력과 공부가 짧은 탓이다. 증권 분석이 치밀하지 않고 전략도 허술하다. 파이어족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장기, 안전 투자를 지향한다면 펀더멘탈만 중심에 놓고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 덧붙여 장기적 안목으로 가져가야 한다. 저자는 주식 최고점을 비교 대상에 놓는 상대 평가 방식으로 주식을 선별했다. 트레이더들이 사용하는 방식의 지수 거래를 했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자산을 융통하는 파이어족 투자 컨셉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요컨대 투자 인사이트를 원한다면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읽는 게 낫다.



그럼에도 책을 샀다. 비슷한 나이대의 국적 같은 남자가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드라마였다. 지식을 얻진 못 해도, 재미는 얻을 수 있었다. 나머지 9/10이 궁금했다. 궁금증은 결제 버튼 누르기 충분했다. 비슷한 점이 많아 공감이 쉬웠다. 30대에 가정이 있고, 어릴 때 부모님이 주식에 손댔다가 크게 손해 본 일로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고, 해외 이민을 꿈꿨다는 점이 그렇다. 다만 서울대 출신에 시드머니 3억 원이란 부분엔 괴리가 있다.



파이어족 성공으로 포르투갈 이민 성공한 썰 푼다 -


라는 제목으로 네이트 판에 올라온 글을 읽는 느낌이었다. 무시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설명하고자 함이다. 네이트 판의 막장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소설이나 비문학 책 찾기 어렵다. 재미의 농도만 보면 네이트 판 게시글은 최상급이다. 얻을 게 불쾌감과 엇나간 시민의식밖에 없어 굳이 찾아보지 않지만. 부의 속도는 그것들보다 수준 있고, 끝 맛이 좋았다.



그들은 본인들이 원한대로 파이어족 입성해서 포르투갈 이민에 성공했다. 축하축하



3.

웹 예능 머니 게임이 인기다. 나도 재밌게 보고 있다. 다만 그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시청자의 태도는 재밌지 않다.


몇몇 참가자, 특히 6번 참가자 파이에 대한 비난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애초에 그녀가 그렇게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게임 안에서 게임의 논리를 따라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다. 그의 최선이 취향에는 안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비난받을 이유가 되진 않는다.


게임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다들 동의하고 온 내용이다. 파이는 돈을 받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했다. 서바이벌 게임에 정치가 없을 수 없다. 게임 안이 치외법권이 아니다. 폭력을 쓸 순 없다. 폭력 이외의 모든 거짓말과 정치, 논쟁은 용인되어야 한다. 내로남불 언사와 게임 룰을 망가트리는 게 두 가지 큰 비난의 이유로 꼽힌다. 수익의 독식이나 생존이 제1 목표다. 내로남불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적절한 정치 수단이다. 단체 퇴소를 근거로 협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언어를 벗어나지 않았다. 얻는 수익보다 상대의 파멸을 고른 것도 지극히 인간적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결국 그 덕에 팀 파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고 정적도 제거했다. 이 모든 행위는 게임의 논리 위에 존재한다.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온 점, 그러니까 룰 변경은 제작진의 책임이다.


파이는 '비논리까지 적절히 사용한 영리한 플레이어'일뿐이다.


설사 룰을 어기거나 프로그램 전체를 속이는 등의 용인되지 않는 행위를 했다 해도 마찬가지다. 메신저의 외모, 성격, 성별 등을 타깃으로 한 인신공격은 있어선 안 된다. 인신공격은 대표적 비형식적 논리 오류다. 오류인 이유는 확실하다. 그것은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고 극단의 상황에 이르게 할 뿐이지 어떤 효용도 없기 때문이다. 비난자의 감정 해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메시지의 무엇이 잘못인지 지적하는 게 세상의 행복을 위해 여러모로 낫다. 당사자는 이해를 못할지언정, 관람객의 전반적 수준 상승과 합리적 경기장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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