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다엔 별별 진기한 물건이 떠다닌다. 바다 위를 항해하다 재밌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파이어족 은퇴 계산기다. 외국 사이트라고 해도 별거 없다.몇 가지 디테일만 적으면 계산기 돌릴 수 있다.
위에 3가지를 적는다. 나이/ 연봉/ 연평균 지출
아래에 재산을 적는다
그 밑에 재산 분배 현황을 적는다. [주식 / 채권/ 현금] (내 경우 주식 95% 채권 0% 현금 5%)
각 항목별 목표 수익률을 적는다 [주식:15% / 채권 생략/ 현금 -3%]
(현금은 인플레이션 탓에 가치가 떨어진다)
이 사이트의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1. 매년 연봉(수익)에서 생활비(지출)를 빼서 저축액을 계산
2. 분배된 자산의 수익률을 계산
3. 재산의 이자 수익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시점 계산
일단 목표 수익률 15%는 높은 수치다. S&P 500의 평균 수익률이 8%다. 남들 보다 2배 더 벌겠다는 의미다. 연 15% 수익을 매해 얻을 수 있는 펀드가 있다면 전재산 넣을 만하다. 기재한 기대 수익률 15%를 고려해 사이트는 상당히 빠른 은퇴시기를 제시했다.
내 호주 나이는 32이다. 36살에, 그러니까 4년 더 일하고 은퇴하란다. 4년 치 저축액을 넣고, 4년 동안 자산이 14%(현금 자산 수익률 -3% 합산)로 성장했을 때 경제 독립 가능하다. 기재한 1년 소비는 4만 불이다. 파이어족 기본 이자율은 4%다. 정리하면 이자 수익이 4만 불을 돌파한 시점, 그러니까 자산이 10억을 돌파한 시점이 36살이다.
4년 더 일하고 은퇴 가능하다는 말은 아주 달달하다. 하지만 4년 뒤에은퇴하지 않을 생각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적당한 노동은 생산력에 도움 된다.
2. 노동을 멈추기엔 너무 튼튼하다. 생산 능력안 쓰면 낭비다.
3. 부양할 와이프가 있다.
4. 더 빠른 자산증식이 필요하다. 총자산 10억은 내 고정 수입을 무시할 정도로 큰돈이 아니다.
*주식투자에서 매년 15% 수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4년 뒤에 은퇴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자산 상태를 파악하는 일은 유익하다. 우선 돈 계산은 재밌고, 지피지기(적은 각종 리스크: 사고, 투자 실패 등)로 백전백승할 수 있고, 동기부여된다.
4년이란 수치는 충격적이다. 최근까지 경제 독립은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타인의 노동을 사용해 자산을 증식시키는 방법 중 사업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자연히 사업의 성공이 제1 목표였다. 사업을 하면 완벽 은퇴는 불가능하다. 사업주가 관리하지 않는 사업은 망한다.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줘야 한다. 투자를 시작하고 완전한 경제 독립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경제 독립이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는 생각을 규정한다. 최근 등장한 파이어족이란 신조어가 사람들의 성취를 독려한다. 투자 덕에 on fire다.
사업과 비교하면 주식 투자는 메리트가 많다. 투자엔 신경 쓸 게 적다. 우량 기업은 나보다 백만 배는 유능한 사람들이 운영한다. 그들이 직원도 뽑고, 연구 개발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인수합병도 하며 기업 가치를 키운다. 투자자는 거기서 나온 수익만 뽑아 먹는다. 반면 기업이 문제 일으킬 땐 투자자는 책임지지 않는다. 유한책임이라 부른다. 이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찰리 멍거도 투자로 돈을 너무 쉽게 벌어 미안하다 말했다. 사회 환원의 이유란다. 내 몫은 미래에도 우량할 기업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꾸준한 투자 수익을 얻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장기 투자가 성공 가능성이 높다. 정말 좋은 기업을 산다면 평생 판매할 필요가 없다. 워렌버핏이 코카콜라와 시즈캔디, 가이코를 보유한 기간이 그 증거다.
파이어족 은퇴 시기 계산을 통해 투자의 위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이른 경제 독립은 치트키 쓰고 하는 인생 2막 느낌이다. 남은 시간은 썩어나는데, 돈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물론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내 합리성은 한동안 수리 시 부품값 비싼 독일차 금지, 인터넷 최저가 확인, 쿠폰 확인을 시킬 것이다. 100조 자산 있는 버핏도 3.5불짜리 동네 식당 할인 쿠폰 들고 다닌다. 평생 부유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굵직한 결정의 순간에 돈이 발목을 잡았다. 옷에 관심 있다는 걸 깨달은 스무 살에 해외 패션 스쿨 진학을 막았고, 사업이 망했던 20대 초반에 재수학원과 대학 입학을 막았고, 일본 워킹 홀리데이 시절에 현지 대학 진학을 막았다. 코스톨라니는 본인의 저서에서 부자의 좋은 점은 인생의 큰 변곡점에 누구에게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는 점,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인생 2막에선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아직 1 막을 마무리할 생각이 없다. 2 막을 향한 기대감을 고취시키려면 1막의 기막힌 마무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