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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l 19. 2022

타고난 문장



 그제 친구와 글쓰기를 주제로 이야기 나눴다. 친구는 글과 친하다. 국문과, 대학신문 국장, 언론사 반 년 인턴, 국어 선생 출신이다. 본인의 글로 세상을 밝히고자 했다. 지금은 펜 대신 칼 들고, 문장 대신 식자재 다룬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놓은 꿈을 되찾겠단다. 그는 유시민 작가에게 글을 칭찬받은 이력도 있다. 나는 곧잘 권위에 순응한다. 친구는 권위자의 보증을 받았다. 대화 상대로 더할나위 없다.


그는 타고난 문장의 힘을 역설했다. 작가에 이르는 두 단계를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많이 써야 한다. 이런 문장 저런 문장 쓰면 기술이 생긴다. 퇴고 과정에서 주어와 동사를 일치시키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적합한 비유를 찾는다. 다작이 중턱까지 안내한다면, 재능이 정상까지 안내한다. 다작을 통해 생각을 시각화 시키는 능력을 기른다. 나머지는 재능이 담당한다. 재능의 세공을 거쳐 글은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돌이 된단다.


친구의 기준으로 내가 쓴 글을 본다. 오호! 내 글솜씨는 바다다. 무수히 많은 돌을 만든다. 파도가 아무리 바위를 깎아도 다이아몬드 만들 순 없다. 블로그에 천 개 넘는 게시글을 올렸다. 지겹다. 생각 덩어리 세공은 매번 실패다. 천 개 넘는 돌을 모았다. 블로그 이름을 돌방으로 바꿔야 할까.



왜 쓴 기간에 부합하는 글을 쓰지 못 하는가? 나는 나를 잘 안다. 합리충으로 관심 있는 일에선 항상 인과를 찾는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나올 때까지 생각한다. 나의 인과 분석 알고리즘이 가동한다.



첫째, 느끼함을 향한 반감. 느끼한 음식은 좋은데 느끼한 글은 싫다. 느끼함은 감정의 과잉을 뜻한다. 다양한 느끼함이 있다. 나는 글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엄밀한 논증이 필요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 후자의 경우 느끼함이 필요하다. 기준치 이상의 감정, 감성이 등장해야 시선을 끈다. 재미를 준다. 공감을 이끈다. 터져 나오는 감정의 홍수! 자 여러분의 심장을 어루만지는 눈물과 웃음 기쁨, 분노. 나는 글에서나 현실에서나 4와 6 사이의 감정을 유지하고자 한다. 여기서 0은 슬픔의 끝, 10은 기쁨의 끝이다. 툭툭 튀는 감정선을 억누른다. 돌출된 영역은 끝 맛이 안 좋다. 지속성도 별로다. 10 찍는 사람은 0도 찍는다. 감정도 기브 앤 테이크다. 0은 나를 파괴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 이런 가치관과 경험이 한데 어우러져 반느끼 전선(Anti-cheesy line)을 구축했다. 반느끼 전선엔 후회가 없다. 그리고 임팩트도 없다.



둘째, 경험 부족. 나는 경험이 부족하다. 새로운 환경에 좀처럼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MBTI 테스트의  번째 결과는 E. E Extroversion 약자로 외향성을 뜻한다. 나는 외향적이다. 처음 만나는 상대와 대화 나누는  자연스럽다. 새로운 만남을 좋아한다. 반복은 더 좋아한다. 아는 맛에 끌린다. 효율을 따지는  성향 탓이다. 나는 50%  즐거움보다 100% 적당한 즐거움을 택한다. 여기서  효율이란 말이 나왔는지 궁금할 것이다. 우선  즐거움이 적당한 즐거움의 2배가  된다. 또한 실패는 0 아니라 마이너스기 때문이다.


숫자가 이해에 도움이 된다. 적당한 즐거움이 10이라면, 큰 즐거움은 15다. 50%로 15를 얻지 못 할 경우, 기분은 -5가 된다. 자 2번 새로움 선택해서 한 번은 성공, 한 번은 실패인 경우를 가정하자. 이때 내가 얻는 즐거움은 10이다. 15 -5 = 10이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아는 그 맛, 확실하고 적당한 즐거움을 택한 경우를 가정한다. 2번 다 성공한다. 내가 얻는 즐거움은 20이다.


많은 경우 나는 도박하지 않는다. 확실한 즐거움과 미지의 큰 즐거움 사이에서 전자를 택한다. 다시 말해 한 거 또 한다. 아는 사람 만나, 아는 곳 가서 아는 음식 먹는다.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행복의 최대 효율을 따지기에 경험이 부족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다양한 경험이 양념이 되어 글맛을 살려줄 텐데 그럴 수 없다. 대체 경험(책)을 통해 말한다. 생생함이 덜하다.



내 기본 성향과 바꿀 수 없던 환경이 더해져 이런 내가 됐다. 특성을 고려한 결과, 나는 엄밀한 논증을 요하는 글과 더 가깝다. 더 가깝다고 해서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함은 합리성, 풍부한 배경지식, 노력이 어우러져야 나온다. 나의 글은 적당한 합리성, 빈약한 배경지식, 전무한 노력의 합이다. 합리성과 지식은 쌓을 수 있는데 게으름은 어찌할 수 없다. 천성이 게으르다. 요컨대 좋은 글 쓸 수 없게 타고났다.



 탁월한 메타인지 능력을 통해 탁월한 글을 쓰지 못 하는 자신을 분석했다. 글쓰기 자아에 사형 선고를 때린다. 후후후 넌 절대 좋은 글쓴이가 될 수 없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의 문장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벗어날 수 없지. 그래도 쓴다. 글쓰기 목적은 우수한 문장 만들기만이 아니다. 우수한 문장을 못 만들어도 여러 혜택이 있다. 일단 즐겁다. 아웃풋 만드는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참가 이유로 충분하다. 재능 없는 문장 챙겨 글쓰기 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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