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통 터치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비유. 아직 밖 어두움). 이른 취침 덕에 평일처럼 6시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른점이라면 거실 소음. 전날 밤 와이프는 보드게임 모임원 몇 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불타는 금요일에 보드게임 나잇을 열었다. 그녀의 불타는 열정을 응원한다. 몇 명이든 불러서 마음껏 놀라고 했다. 이렇게까지 마음껏 놀 줄은 몰랐네.
방을 나서며 식탁을 둘러앉은 네 명의 청년에 찬사의 말을 건넸다. "여러분이 챔피언입니다." 그들은 전날 먹으라고 썰어 놓은 당근 스틱을 비웠다. 내가 열어놓은 와인병에 와인은 그대로 남았다. 당근만 먹으며 10시간의 보드게임 렐리를 펼쳤단 뜻이다. 술 없이 온전히 게임에 몰입한 10시간이다. 그들의 뜨거운 열정에 3도 화상 입었다.
그들 옆에서 모닝커피를 내렸다. 그들은 막 게임을 끝내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헤... 너무 염치없었나요 죄송하네요 헤헤....라고 말하는 듯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문을 나서는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커피 머신에서 내린 에스프레소 2샷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와이프에게 완벽한 바통터치라 말했다. 그녀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바로 건네지 않았다. 바통을 맞잡은 시간을 늘렸다. 와인 한 잔을 따라 내 옆에 앉았다. 아연한 내게 와인은 수면제라고, 잠자는 사람을 돕는 고마운 음료라 말했다.
와이프와 6시부터 7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나의 하루 시작과 그녀의 하루 마지막이 만나 하루의 중간에 오갈 법한 대화를 나눴다. 점심 예약이 있다. 예약 시간을 맞추기 위해 늦어도 정오엔 일어나야 한다. 씻지 않고 방으로 향하는 그녀를 이해했다. 숙면을 기원했다. 그녀는 방으로, 나는 서재로 이동했다.
2. 인생은 운빨 존망 게임
간밤에 보드게임을 즐기는 그들의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을 꼈다. 점잖은 사람들이어서 크게 방해되진 않았다. 어차피 소음을 듣는 거라면 유익한 소음이 낫다.
일본어 리스닝을 위해 일본 VLOG를 검색했다. 최초엔 야칭(한달 방세) 8천 엔의 홋카이도 주택 거주자의 브이로그를 봤다. 8천 엔의 이유가 납득됐다. 난방이 안 되고, 모든 수도는 꽁꽁 얼었다. 집은 30cm 넘는 눈으로 둘러싸였다. 최소 생활비로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삶을 엿봤다. 그 유튜버의 영상엔 말이 거의 오가지 않는다. 가끔 들리는 내레이션이 전부다. 이걸론 리스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쉼 없이 말하는 활발한 유튜버로 넘어왔다. 야칭 1만 5천 불의 룸 쉐어에 사는 일본인이다. 샤워시설 앞에 세면도구 두는 곳이 있다. 폼클렌징 도둑이 자신의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아 분통을 터트렸다. 1평 남짓한 자신만의 공간을 소개해 줬다. 너무 추워 큰맘 먹고 극세사 이불을 샀다, 양말에 구멍이 났다, 맥북 도둑맞을까 두려워 머리맡에 두고 잔다 등의 생활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입이 적은데 지출이 많으면 지출을 줄이면 된다. 그들은 줄이고 줄인 사람의 일상을 보여줬다.
고난이 와닿았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오사카로 향했다. 꽉 찬 1년을 보냈다. 야칭 4만 5천 엔의 집에서 최선을 다해 절약하며 살았다. 방한이 잘 되지 않는 집은 집의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집 안에서 입김이 나왔다. 전기세가 아까워 히터를 틀지 않았다. 히터의 뜨거운 바람 대신 입김으로 원룸을 데웠다. 너무 추우면 유니클로나 저가 브랜드 세일 제품을 샀다. 끼니는 일하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가끔 기분 내고 싶을 땐 마트에서 타임세일하는 도시락이나 요시노야에서 290엔짜리 규동을 샀다. 기본 이하 의식주다. 유튜버들은 내가 십 년 전 마주한 고됨에 힘듦 몇 스푼 얹은 삶을 산다. 속으로 열혈 리액션을 했다. 와 그때 나보다 힘들다고?
일본의 경우 나라를 위해 국민을 희생하는 체계다.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엔저를 모토로 경제를 이끌어왔다. 아베노믹스가 기업 몰아주기의 상징이다. 마진 최대화를 위해 대기업 중소기업 구분 없이 낮은 임금 체계를 유지했다. 최저임금은 10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물가는 오른다. 2000년 도쿄 기준 최저시급은 703엔, 2022엔 1041엔이다. 22년 동안 48프로 올랐다. 2000년도 한국 최저임금은 1600 원이다. 22년 동안 570프로 올랐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덕에 지출이 커지게 됐다. 시민의 부담이 커진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후리터라 부른다. 그들은 보험 혜택을 못 받는 대신 최저시급을 받는다. 2002년에 12만 엔 정도면 살만하지-란 한국인의 반응을 자아냈다. 당시 150만 원 전후의 수입은 한 사람 건사하기 부족함 없는 돈이었다. 문제는 2022년에 비슷한 돈을 받는단 사실이다.
나는 10년 전에 비해 훨씬 나은 생활을 영위한다. 내 집에서 적당히 궁상떨며 적당히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소비한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주거 환경이다. 남서향으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환기가 잘 돼서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전망도 괜찮다. 창으로 바다와 공원, 멜버른 시티가 보인다. 매일 스테이크 썰러 파인다이닝에 가거나, 독일 명차를 타거나, 분기별로 해외여행 갈 형편은 못 된다. 적당한 여가를 보장받고 적당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한다.
삶의 질의 드라마틱한 진보다. 십 년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아니다. 적어도 돈 버는 기술 측면에선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여전히 대학교 졸업장 없고, 자격증은 면허증이 전부다. 지금 내가 다시 일본으로 간다면, 덧붙여 자본이 없다면, 나는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바코드 찍거나, 식당에서 음식 만들거나, 공사판에서 공사 도구 나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사회인으로서 스펙은 발전하지 않았다. 내게 당장 수입을 주는 것은 노동이나 내 사업이다. 사업은 자본을 요한다. 자본이 없다면 육체노동할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올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속하거나 자신의 사업을 해야 한다. 돈 많이 주는 직장에 가기 위해선 학위나 기술이 필요하다. 학위나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남은 길은 사업뿐이다. 사업을 하기 위해선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돈을 모으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한국 고용시장과 비슷하다. 회사는 경력직만 찾는데, 막상 구직 중인 사회 초년생을 경력을 쌓을 곳이 없다. 태생적 모순이다. 한국이나 일본에 머물렀다면 내 삶의 질은 제자리걸음을 했을 확률이 높다. 호주는 기본임금이 높아 사업 자본을 마련하는데 오랜 기간이 필요치 않다. 국가를 비교할 때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보면 중산층(사회 다수를 뜻하는 의미에서)이 행복했던 영미권 국가들의 사정도 바뀌고 있다. 복지국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국민은 국경 안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았다. 다만 선진국이라면 필히 성장률 둔화를 마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소득은 둔화되지 않는다. 그럼 국민소득에서 자본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결국 중산층이 붕괴된다. 허리를 지탱하던 대다수의 소득이 평균 이하로 떨어진다. 21세기 자본은 이 주장의 근거를 500페이지 넘게 나열한다. 국내 불평등의 심화는 소외받은 다수를 만든다. 불평등은 진행 중이다. 복지국가에 산다며 한숨 돌리는 이들에게 곧 한숨 쉴 날이 도래한다는 뜻이다.
결론이다. 열악한 삶의 질은 내 탓이 아니다. 임금이 동결된 일본의 경우 똑같이 일하면 날이 갈수록 가난해진다. 사회적 안전망이 열악한 나라에서 부자 아닌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면,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을 얻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트랙에서 벗어나면 요구하는 노력의 정도가 상당해진다. 사회적 안전망이 상대적으로 잘 구축된 나라도 긴장해야 한다. 전쟁이 나거나, 전면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당한 삶의 질'은 자본을 가진 사람의 특권이 된다. 우리 삶은 운빨 존망 게임이다. 나라로 잘 뽑아야 하고, 부모도 잘 뽑아야 한다. 가챠 운이 필요하다. 노력 혹은 운으로 실패한 가챠를 극복했다면? 최선을 다해 환경을 사수해야 한다. 시스템을 바꿀 자신이 없다면 3가지 방법을 취해야 한다. 1.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한다. 2. 사업을 한다. 3. 노동 소득을 앞지르는 자본 소득을 만든다. 3번을 위해 부자 부모 만나거나, 부자 배우자 만나거나, 1,2번을 하며 자본을 많이 모아야 한다.
복지 없는 인간은 너무나 무력하다. 환경의 도움 없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구구절절 말한 걸 요약하면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나이 먹었는데, 기술 없고, 돈도 없다고? 여생에서 반전 기회를 못 얻을 확률이 높다. 백 세 시대다. 서른 즈음 사회 내 포지션이 정해진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남은 70년 동안 비슷하거나 더 안 좋은 삶을 영위할 것이다. 돈 벌려면 돈이 필요하다. 근데 돈 벌 곳이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