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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07. 2022

돈과 행복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드립팩토리란 곳으로 시민들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는다. 연기자는 준비해 온 꽁트를 하고, 카메라는 옆에 앉은 일반인 반응을 담는다. 그중 한 에피소드에서 나온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맥락이다.

"너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못 사. 우리가 가진 돈으론 살 수 없어. 행복은 존-나 비싸. 행복은 이를테면 에르메스 가방이지.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나이키 잠바 정도의 즐거움이야."

깔깔거렸다. 그리고 '나는 어느쪽?' 이란 질문을 했다. 나이키 잠바다.


행복과 경제력의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와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설문은 넓은 범위에서 그런 경향성을 찾아냈다. 본인의 행복도를 묻는 설문에서 수익과 행복도가 비례함을 밝혔다. 한도 없이 느는 것은 아니고, 조사 당시 100억이 상방 한계선이었다. 100억이 없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행복이 돈이라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행복해질 방법을 찾았다. 행복에 다다르는 길은 2번 변했다. 최초엔 나의 노동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도착지점이 까마득하다. 열심히 노동해서 한걸음 내딛는다. 이렇게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날까? 택도 없다. 아무리 걸어도 자리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방법은 타인의 노동을 빌리는 노선이다. 누군가를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을 구매했다. 물론 거기서 나오는 소득의 일정 부분은 내 주머니에 들어온다.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는 이유로 비슷한 강도의 노동에서 더 큰 이득을 얻었다.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고 고객을 모았다. 이 사소한 작업의 결과가 몇 배의 수익이다.

마지막으로 바꾼 노선은 유능한 다수의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기업에 돈을 던지는 행위(투자)가 전부인 곳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인재들이 기업에 모인다. 그들은 정해진 월급 받고 열심히 일한다. 큰 영업이익이 생긴다. 그 이익을 회사의 주인이 나눈다. 돈 던진 사람이 회사의 주인(주주)이다. 두 번째 노선과 다른 점은 나의 노동이 하나도 투입되지 않다는 점, 생산활동에 투입된 인재가 나보다 훨씬 유능하다는 점이다. 행복에 이르는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문제가 있다. 던진 돈은 기업의 곁에 있어야만 몸집을 불린다. 때론 몸집을 줄인다. 가치 평가를 잘하고 안전마진을 듬뿍 넣어도 잃는 경우가 있다. 블랙스완을 만나 난파당하거나, 기업 외적인 이유로 손실을 입기도 한다. 핵심은 우량한 기업에 장기간 돈을 맡기는 것뿐이다. 말인즉슨 투자에 사용되는 돈은 인출 전까지 내 돈이 아니다. 생활은 나의 노동의 토대에서만 가능하다.


위 이유로 세 번째 길은 행복에 가까워짐을 실감할 수 없다. 노동 수익은 한계가 있다. 내 고정 수입은 사업 초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생활 수준이 변하지 않는다. 조금 나아졌지만 저축을 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몇 년 전과 비슷한 삶을 산다. 나이키 잠바 살 정도의 즐거움을 느끼며. 더 큰 행복에 다가갔단 실감 못 한 채로.


드립팩토리 연기자의 말,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단 명제를 가설로 삼는다. 호주 살며 장바구니에 행복 여러개 담을 수 있는 인물을 목격한다. 그들이 남들보다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구 하나 부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의 부를 어깨너머 듣는다. 오빠 오빠 그거 알아요? 쟤네 수입 호주 0.01%래요. 연봉 몇십만 불이라고 하더라고요. 쟤도 비슷하고요. 그러면 아~ 부자였구나 깨닫는다.

다른 경로는 나의 무의식이다. 나의 전자두뇌가 시키지도 않은 수입 분석을 한다. 88방 사업하는 친구 아무개의 하루 매출이 5천 불이란다. 직원 7명이니 일당 300불 빼고, 자잿값 외 관리비 제외하면 하루 순이익 2500 정도 되겠구나.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친구의 수입도 계산이 된다. 주말은 풀 부킹이고, 평일은 2/3 가량 돌아가는 숍이란다. 한 직원이 8시간 일하면 시간당 100불 차지하니 인당 800불을 벌 것이다. 가게가 3인 직원 체제니 주말 매출 2400불. 손님 못 받는 날 포함해 매장 하나에 하루 2천 불 매출로 주 7일 돌아간다. 가게 하나 매출이 6만 불 정도로 직원 급여는 매출의 30%, 렌트비가 20%, 각종 보험과 세금 10% 미만. 가게 하나당 떨어지는 마진은 2만 불 전후. 가게가 한 개가 아니니 곱셈...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누군가의 수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들은 행복한가? 나야 모르지. 행복은 에르메스, 존나 멀어-라는 로직에 크게 공감하진 않는다. 타고난 낙천성이 가장 중요하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자식에게 줄 최고의 유전 성질로 낙천성을 꼽는다. 수익이, 자산이 많다는 건 업무 환경이 낫다는 뜻이다. 고액 연봉 주는 기업에 복지가 잘 되어 있고, 업무 시간도 (전부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짧다. 충분한 여가 시간을 얻을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회적 안전망, 복지, 여가시간이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 모든 대기업이 복지나 근무 환경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이 모든 사항을 고려한 결과 내 나름의 답을 냈다. 돈과 행복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다.


나는 몇몇 시기를 제외하곤 일생 행복했다. 돈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건 여가 시간이다. 여가 시간이란 게 자유를 전제한다. 내가 내 경제력과 책임의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여가에서 내가 태어난다. 온전히 나의 선택에 의해 존재하는 시간이다. 물가를 고려한 지금과 같은 경제력에 적당한 여가가 주어진다면 나는 평생 불만 없이 살 것이다. 돈은 전보다 적지 않은 상태만 유지하면 된다. 있다 없으면 고통이다.


이런 생각과 더불어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조바심을 없애줬다. 나는 더 큰 행복, 더 큰 자유, 더 많은 여가를 위해 돈을 원했다. 행복했음에도 경제적 성공을 추구했다. 최근 너사와는 남편이 부자가 아니라 다행이란 말을 했다. 내가 터무니없이 큰돈을 벌고, 비싼 물건을 척척 사다 받친다면 인생이 따분해질 것 같단다. 만약 남편이 하루에 버는 돈이 자신의 월급이라면? 1. 본인의 노동이 하찮게 보인다  2.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  3. 커리어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4. 전반적인 삶의 질을 떨어진다. 흔한 말이지만 너사와의 입을 통해 들으니 머니 다다익선의 신화가 깨졌다.


다른 이야기는 그것이 알고 싶다 PD의 입에서 나왔다. 한 유튜브에 출연한 그알 PD는 최고로 충격적인 에피소드로 비트코인 편을 꼽았다. 그는 23세 비트코인 투자자를 인터뷰했다. 가상화폐 잔고 270억을 촬영했고 가벼운 인터뷰를 나눴다. 2시간 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잔고를 확인했다. 2시간 동안 잔고는 300억으로 늘었다. 시급 15억의 기적을 보고 나서 세계관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단다. 우리는 흔히 돈을 기준으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가 앉아 있던 2시간은 누군가(99%)의 평생 노동보다 가치가 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PD의 그 후 대처였다. 그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 투자가 인생에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30억은 일반인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돈이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게 이유였다. 무릎을 쳤다.


이 두 이야기가 신포도, 혹은 없는 자의 합리화일 수 있다. 그럼에도 너무 잘 이해됐다. 과거 행적을 본 결과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도 적용됨을 깨달았다. 어릴 적에 PC 게임을 즐겨 했다.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다 힘들면 게임 잡지를 사서 공략집을 찾아봤다. 그때 한 게임은 그렇게 재밌었는데 이제는 그때 한 대부분의 게임이 재밌지 않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싶지 않다. 노가다를 하고 싶지 않다. 손쉽게 에디터를 구해 사용한다. 최강의 무기를 얻고, 돈을 무한대로 찍어낸다. 모든 적이 한방에 죽는다. 보스를 잡아도 기쁘지 않다. 캐릭터가 들고 있는 아이템은 최강의 아이템이다. 좋은 아이템을 먹어도 기쁘지 않다. 득템의 재미도, 보스 공략의 재미도 사라진다. 에디터 사용하고 얼마 안 가 게임을 지운다.


결론을 말하자면,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가와 재미를 유예하는 것이다. 내 세계관을 한 번에 바꾼다면 나는 원래 세계로 올 수 없다. 원래 세계에 조금씩 밸런스 패치하며 나아가는 게 장기적으로 유익하다. 인생의 몰입도를 유지하고 하나하나의 성취에 감사할 수 있다. 이렇게 끝나면 감동적일 텐데 아직 끝이 아니다. 돈이 줄면 불행하다. 돈은 전보다 많아야 한다. 어릴 적 500원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돈이었다. 그 돈으로 문방구 가서 밭두렁 사고, 꾀돌이 사고, 떡꼬치 하나 먹고, 남은 100원으로 짱껨뽀 한 판 했다. 이제 500원은 내게 기쁨을 주지 못 한다. 물가상승률 고려, 그 열 배인 5천 원도 마찬가지다. 나이 먹으며 소비가 늘어난다. 주유 한 번에 10만 원, 짜장면 한 그릇에 2만 원이다. 짜장면 정도는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한다. 지금같은 소비를 보장해야 행복도 보장된다. 현시점에서 찾은 돈과 행복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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