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Sep 17. 2022

한국 일주일



 한국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9 3일부터 9 10일까지, 토요일에 시작해  다음주 토요일에 났다. 한국 여행치곤 짧은 일정이다. 오가는 시간만 40시간 넘게 걸린다. 보통 이주 일정으로 떠난다. 이번엔 일을 대신 봐줄 직원이 없고, 당장 돈이 아쉬워서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 짧은 일정이어서 빽빽하게 스케줄을 짰다.  해야 하는 일을 정리하고, 최적의 동선을 계산했다. 덕분에 알찬 일주일이 됐다. 충분히 즐겁고 유익했고 만족스러웠다. 만족도의 총량으로 봤을  이전의 길었던 체류보다 나았다. 돌아보니 찜찜한 구석도 있었는데, 이는 후술하겠다.


해야 할 일은 가족 친지 만나기, 의료 서비스 받기, 미용 서비스 받기, 매장 리서치하기였다.


한국 방문의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를 뵙는 것이었다. 작년 말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동맥이 막히면서 심장에 문제가 생기는 질병이다. 위험한 병으로 정도에 따라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봬야 했다. 아버지의 제안으로 시골 본가에서 만났다. 겸사겸사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와 작은아버지가 조성한 집안 산소 방문을 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여러 친척 분들이 시간 내서 시골로 내려와주셨다. 큰 고모가 인천공항으로 픽업을 왔다. 덕분에 편하고 빠르게 시골에 도착했다. 친척 어른들의 배려로 일박 이일 동안 맛있고 건강한 음식 먹고, 지역 명소 돌아보고, 쾌적한 숙소에서 숙면을 취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자식을 보여줘 뿌듯한 눈치였다. 호사 누리며 효도했다. 송구스럽다.



출산 예정일 하루 앞둔 친구 부부, 중고등학교 친구들, 호주에서 알게 된 친구들, 너서와의 친가 쪽 친척들을 차례로 만났다. 모두가 기꺼이 마음과 차 문과 지갑을 열어줬다.



가족 친지 방문 다음으로 중요한 일정은 기본 검사였다. 신검, 비자 발급 시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검사를 한 적이 없다. 나이가 서른 하고도 다섯이다.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그간의 삶을 돌아본다.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냈는가? 건강하게 먹었는가? 당차게 예쓰! 할 수 없다. 매일매일 위장에 담은 신라면과 너구리가 떠오른다. 야채와 과일과 거리를 뒀다. 일주일에 이삼일은 맥주나 와인 한 잔씩 했고, 올해 이전엔 운동과 담을 쌓았다. 문제가 생길 법하다. 기본검진을 예약했다. 의료보험공단 전산상 문제로 나랏돈으로 검사를 받을 수 없었다. 병원의 조언을 받아 35만 원을 내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일정 사이에 시간이 생겼을 때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만 삼천 원을 지불했다.



다음 중 미용서비스를 받기 좋은 나라는? 1. 호주 2. 한국. 정답은 2번이다. 가격 경쟁력이 다르다. 실력도 2번이 뛰어나다. 왜? 의료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담 호주 사는 사람이 한국에 간다면 꼭 해야 할 일은? 1. 미용서비스. 정답은 1번이다. 톡스앤필 매장을 검색해 얼굴에 보톡스와 필러를 꽂았다. 호주 기준 400불인 턱 보톡스를 단돈 2만 원에 받았다. 광대뼈에도 한방 맞고, 콧대의 굴곡을 필러로 채웠다. 패키지 서비스라며 추가금 없이 미간에 주름 예방 보톡스도 맞았다. 여드름 피부를 고치기 위해 로아큐탄 처방을 부탁했다. 처방전과 제네릭 약인 이소티논 한 달 치를 포함한 총비용은 30만 원을 하지 않았다.


다른 미용 서비스론 눈썹 문신과 헤어컷트를 받았다. 눈썹 문신은 계획에 없었다. 일정 사이에 두 시간가량 시간이 남았다. 한국에서 하면 이득인 서비스를 생각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약속 장소 근처 눈썹 문신 샵을 검색했다. 후기가 좋고 프로모션을 하는 곳을 발견했다. 시간상 무료 리터치를 받을 수 없다. 리터치 안 받는 대신 추가 할인을 받았다. 서비스는 꼼꼼했다. 마취, 도안 그리기, 문신, 각종 설명으로 두 시간을 채웠다. 10만 원을 지불했다. 헤어커트는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좋았는데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갓 대학을 졸업했을 법한 보조스탭이 헤어커트 중간중간 마사지와 트리트먼트를 했다. 두피 각질 제거, 두피 트리트먼트, 두피 마사지 등은 업무와 관련된 서비스였다. 손 오일 마사지와 목, 어깨 마사지는 업무와 관련 없는 서비스였다. 머리를 1차로 잘랐다. 띠동갑으로 보이는 어린 스탭이 나를 창가 쪽 허리 높이의 의자로 안내했다. 손 오일 마사지를 한다며 나를 마주 보고 손을 잡았다. 미용실 유니폼의 치마가 짧았는데, 의자에 앉자 치마가 속옷만 간신히 가릴 정도로 올라갔다. 디자이너는 사복을 입었고, 보조 스탭들은 그 짧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민망함에 몸을 창가 쪽으로 틀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엔 손깍지를 끼었다 풀고 손바닥을 툭툭 쳤다. 마사지 효과는 없었다. 미용실이 보조 스탭의 성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만 이천 원을 지불했다.


호주에서 새로 하려는 사업과 관련해 한국 매장 리서치가 필요했다. 번화가에 갈 때마다 동종업종 가게에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어떤 식으로 인테리어 하면 좋을지 알아봤다.



한국은 모든 것이 빨랐다. 일 처리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반대로 융통성은 넘쳐흘렀다. 몇 가지 사례를 남긴다.


1. 유심: 유심을 쿠팡으로 미리 주문했다. 동봉된 서류에 빈칸을 채우고 담당자에게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내자 바로 개통됐다. 입국한 시점이 토요일 아침이다. 휴일 구분 없이 문자에 칼답장을 해줬다.



2. 보험공단정지 해제: 보험공단정지 해제 신청을 했다. 그날 중으로 해제된다 안내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치과에 갔다. 상황을 설명했다. 접수원은 일단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다. 일단 기본요금으로 하고 나중에 해제처리 되면 환불하고 재결제 처리해 주겠단다. 접수가 끝나기 무섭게 간호사가 자리로 안내했다. 치료 의자가 열 대 정도 쭉 나열됐다. 안내된 곳에 앉자 치과의사가 들러 간단히 이야기 나누고 떠났다. 곧바로 치위생사가 바통을 넘겨받아 능숙한 솜씨로 스케일링을 했다. 요금을 지불하러 갔다. 치료받는 이십분 사이에 정지 해제 처리가 완료됐다.



3. 의약품 처방: 보톡스 전문 업체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간호사가 모든 사전 준비를 끝냈다. 의사가 방에 들어와 5분 만에 모든 시술을 끝내고 사라졌다. 그 5분의 시술 사이, 의사에게 혹시 여드름 약도 여기서 처방받을 수 있냐 물었다. 뭐 필요한 약 있냐 물었다. 로아큐탄이라고 답했다. 의사는 더 묻지 않고 같은 성분의 더 저렴한 제레릭 약 한 달 치 처방했다. 같은 건물 1층으로 내려가자 이미 전산으로 처방전을 받은 약사가 약을 조제 중이었다.



4. 기본검진: 검진을 받기 위해선 공단에 등록이 되어야 한다. 호주에서 예약을 잡았다. 귀국 전엔 공단에 등록을 할 수 없다. 보험이 정지 상태임에도 예약을 받았다. 자리 잡아놓을 테니 귀국해서 공단에 전화한 뒤 다시 연락 달란다. 예약 전환 처리해 주기로 했다.



5. PCR 검사: 해외 입국자는 귀국 당일 PCR 검사를 받아 검사 결과를 알려야 한다. 공항에서 하면 몇 만 원, 동네 보건소에서 하면 무료다. 할머니 요양원이 있는 시골 보건소에 연락했다. 보건소는 주말임에도 검사소를 운영했다. 검사소 문 닫기 10분 전에 보건소에 도착했다. 신청 서류를 작성했다. 그들은 확진 판정이 됐을 때 머무를 곳이 보건소가 있는 지역이어야 한다 말했다. 나는 확진 시 머물 곳이 해당 지역이 아니라 말했다. 담당자는 일초 가량 생각하다 말했다. "일단 받으세요."



4.5년 만에 방문한 한국을 새로웠다. 4.5년은 한국적인 것을 잊어버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새삼 빨리빨리와 유도리의 나라임을 깨달았다. 덕분에 나의 일주일은 쾌적했다. 기다리는데 시간 쓸 필요 없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일주일 동안 내 신분은 관광객이다. 다르게 말하면 소비자다. 재화를 사용해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했다. 구매하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나라다. 소비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상의 서비스 뒤로 물신주의의 그림자가 보인다. 돈이면 다 되는 곳. 내가 이 정도 돈을 썼는데, 이 정도 대접을 받아야 마땅해. 돈은 너무 중요하다. 너무 중요한 것에 비례하는 서비스를 요구한다. 물론 돈의 힘은 전 세계 보편이다. 다만 한국의 서비스 요구는 몹시 노골적이다. 돈을 쓰는 사람의 무례가 다소 용인되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주 미묘한 뉘앙스와 분위기에 번쩍하고 등장한다. 내가 작가였다면 그 결정적 순간을 이야기 사이에 숨겨 표현했겠으나, 애석하게도 내겐 그 정도 글빨이 없다.



이렇게 살기 편한 곳이 있을까? 란 생각을 하다 포지션을 바꿔봤다.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의 입장에 선다면 어떨까? 나의 노동과,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다르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입장인 경우 말이다. 기브 앤 테이크다. 내가 누린 수준의 서비스를 상대에게 제공해야 한다. 한국은 빠르고 효율적이고 다소간의 억지를 받아줘야만 하는 사회다. 판매자인 나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누군가의 억지를 들어줘야 한다. 주말에 오는 문자를 응대해야 하고, 회사 매출을 위해 가이드라인 밖의 판매로를 모색해야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톡스를 19,900원에 놔줘야 하고, 커피를 1500 원에 팔아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우후죽순 생기는 경쟁 업체와 치킨게임을 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판매자가 소비자가 될 때 최상의 서비스를 요구한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회가 공고해진다.



긴 글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소비자 천국'. 어디나 돈 있는 사람은 살기 편하다. 정도의 차가 있다. 한국은 정도가 지나치다. 이 편리의 토대는 타인의 고통과 부당함이다. 누군가의 불쾌가 나의 쾌를 만든다. 소비자가 적당히 불편하면 판매자도 적당히 편해진다. 사람마다 최적의 밸런스가 다를 수 있다. 돈 있는 사람이라면 소비자 행복 지향의 사회가 최적일 테고, 없는 사람이라면 판매자 행복 지향의 사회가 최적일 터다. 계급은 고착화된다. 이런 캐주얼한 글에 모시기 송구스러우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한 번 언급한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미래엔 지금보다 자본을 토대로 한 계급이 공고화된다. 자본과 금융지식이 상속되기 때문이다. 있는 사람의 자식도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부자에게 '당신이 가난해질 가능성이 있으니 판매자 입장에서도 살기 편한 사회를 지지해 줘!'라 말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는 굴러갈 자본과 금융 지식이 있다. 별 탈 없는 한 부자가 될 것이다. 내 자식(있다면)도 부자일 확률이 높다. 소비자 천국의 사회를 온전히 즐기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힘듦이 편리의 토대라면 조금 덜 편해야 한다. 근데 실컷 즐기고 와서 이런 말을 한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부자 와이프와 기생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