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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0. 2023

발로 뛰는 사장





새로운 비지니스 준비를 위해 마케팅 책을 읽고 있다. 올해만 열다섯 권을 읽었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있다. 사장이 발로 뛰어야 한다. 사장이 한 만큼 경험치가 생기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으며, 문제 상황에서 대처하기 수월하다는 이유다. 최근 그 조언을 절감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방구석 여포다. 말로는 세상을 다 휘어잡고, 재벌 되기 직전의 명석한 경제감각의 소유자다. 철저한 이성으로 합리적 결정을 반복해 부의 정점에 이르고자 한다. 여기서 '방구석'이란 수식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조롱하기 위해 쓰인다. 나의 포부는 대체로 말만 있다. 책과 컴퓨터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다행히 투자의 경우는 방구석 여포가 활개 치기 좋다. 투자라는 것은 판단이 끝나면 컴퓨터나 핸드폰을 통해 이뤄지기기 때문이다. 구매 버튼 누르는 것 제외하고 집 밖에서 할 일이 없다. 반면 사업은 다르다. 방구석 여포가 성공할 수 없는 곳이 사업이다. 사람을 써야 하고, 상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나가 서비스와 재화를 판매해야 한다. 투자자 유치도 해야 하고, 은행 등 서류 업무를 위해 전문가도 만나야 한다. 방구석 여포가 낄 수 없는 곳이다. 





방구석 여포 생활을 벗어나려 한다. 말인즉슨 집 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사업에 투자하는 대신 직접 사업을 경영할 계획이다. 읽고 쓰고 밖으로 나선다. 배운 내용을 동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한다. 사업에서 성취를 낸 친구들이 곁에 있다. 그들과 다음을 도모하고 있다. 사업의 성취는 발로 뛰지 않으면 낼 수가 없다. 그들은 발품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효율이고 자시고 일단 가서 뭔가를 한다. 나처럼 미연에 될 일, 안 될 일 구분해서 차단하지 않는다. 일단 해보고 되면 땡큐고 안 되면 되는 방법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그들의 존재가 방구석 여포가 왜 어리석은지 알려준다. 실감할수록 벗어나기 수월하다.





주위에 사업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 동업자이며, 절친한 친구이다. 일터 안팎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다. 새로운 사업 또한 같이 하기에 더 자주 만난다. 사업하며 배우는 사실은, 사업도 기술이란 것이다. 몇 가지 기술의 반복이다. 아이템 선정하고, 마켓 조사하고, 사업계획서 쓰고, 투자 유치하고, 설비하고, 마케팅해서 안착 시킨다. 해 본 놈이 더 잘한다. 기술도 시행착오를 겪어야 는다. 친구는 사서 고생을 하는 타입인데, 그 사서 고생이 시행착오다. 그 덕에 돈 버는 기술이 경지에 올랐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친구를 만나 경영을 보고 거들고 있다. 사업에서도 사소한 습관이 큰 변화를 만든다. 그의 사소한 습관을 지켜보며 배우는 게 많다. 





최근 특히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다. 커피를 마시며 오후를 즐기고자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이를 공주놀이라 부른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브런치나 커피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네이밍이긴 하나, 공주 놀이라는 어감이 너무나 강렬해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안타깝게도 공주놀이 대신 막노동을 했다. 일주일에 삼 일 정도를 만나는 사이다. 특별히 목적을 갖고 만나지 않는다. 뭐든 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만난다.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고 문제 수정하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되려 매장에 일이 생겼다며 밖으로 호출했다. 





매장에 전광판을 설치하는 일을 함께 했다. 그는 멜버른 시티에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다른 사업처럼 그 매장도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팀 미팅을 한다. 안건이 생기면 공유하고, 문제점을 찾고, 개선 방안을 강구한다. 결국 매장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회의이다. 한 경영 서적에선 이를 '본질 강화'라 부른다. 이번 본질 강화 방식은 카운터 위에 메뉴판과 음식 영상 등을 띄우는 전광판 설치다. 고객은 메뉴를 보기 쉽다. 전광판은 깔끔하며, 세련된 인상을 준다. 그 식당은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음식을 팔고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적응한 그들에게 사진과 영상 매체가 어필한다.





종종 맥도날드, KFC 등의 매장을 간다. 캐셔 위에 있는 전광판을 보고 메뉴를 고른다. 전광판은 메뉴판으로서, 광고보드로서 역할을 한다. 친구에 따르면 그 정도 사이즈 전광판 설치는 1만 불 정도 비용이 든다. 설비 업자가 와서 사이즈를 측정하고, 규격에 맞는 모니터를 구매하고, 영상을 틀 수 있는 USB 등을 연결해야 한다. 혹시 USB 지원을 안 하는 모니터라면 전용 컴퓨터를 구비해 시스템을 잡아야 한다. 인건비가 비싼 호주다. 만 불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친구는 전광판 설치를 직접 하기로 했다. 결심할 무렵 나를 만났다. 성공한 사업가가 그렇듯 그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사무용품, 오피스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오피스 웍 매장으로 향했다. 그가 측정한 규격에 맞는 모니터 4대를 구매했다. 그리고 천장측 선반에 고정할 마운트 4개를 구매했다. 여기에 영상 송출용 노트북, HDMI 단자 4개를 하나로 연결하는 4 in 1 허브를 샀다. 글로 쓰니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엔 상당한 노동과 시간과 귀찮음이 따랐다. 4번 정도 각기 다른 매장을 방문했고, 수차례 반품했고, 교환했다. 막상 들고 간 제품의 규격에 맞지 않아 측정을 다시 하고 다른 사이즈 제품을 샀다. 매장에 찾는 제품이 없는 경우 재고가 있는 다른 매장으로 향했다. 문장 몇 개로 표현한 이 작업을 위해 반나절을 보냈다. 





난관의 연속이었다. 반나절을 쓴 결과 필요한(것으로 추정되는) 제품을 구비할 수 있었다. 친구는 다른 미팅을 위해, 나는 다음날 이른 출근을 위해 헤어졌다. 이틀 뒤 아침에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사진을 찍어 완성된 메뉴판/ 제품 사진 표기용 전광판을 보여줬다. 메뉴판 자체가 매장 인테리어와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그것을 띄워놓으니 전체 분위기가 살았다. 무엇을 파는 곳인지도 직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업자를 부른 것과 차이 없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나와 헤어진 이후로도 고생길이었다. 4 in 1 HDMI 허브는 다른 송출 매체의 영상을 컴퓨터로 전송하는 역할이었다. 결국 HDMI 포트가 4개 달린 그래픽 카드가 필요했다. 친구는 본인 컴퓨터 하나를 가져와 각기 다른 모니터와 연결했다. 매장 영업이 끝난 자정에 작업을 시작해 새벽 6시 30분에 작업을 완료했다. 고생이 눈에 훤하다. 





사서 고생의 결과는 이렇다. 우선 만 불이 들어야 했던 작업을 천 불로 해치웠다. 1/10 가격에 소기의 목적을 꽤나 훌륭하게 달성했다. 여기에 카운터 영상 송출 전광판 설치법을 배웠다. 이 기술을 통해 다음에 비슷한 일을 할 때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시행착오 없이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이 수월하다. 업자를 불렀을 경우, 수리에 대기 시간과 추가 비용이 생긴다. 여러모로 이득이다. 발로 뛴 결과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 





정신을 개조하는 중이다. 효율을 따지는 버릇을 버리려 한다. 사업에선 일단 많이 움직이는 게 좋다. 시간 대비 결과가 안 나올 것 같으면 애초에 하지 않는다. 금전 사용도 마찬가지다. 큰 효과가 없을 거라 예상하면 돈을 안 쓴다. 사업과 적합하지 않는 방식이다. 일단 뭔가를 하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 실패 도중에 대안을 발견한다. 아무 결과를 만들지 못 했을지언정 경험치는 남는다. 분투했던 시간이 몸에 새겨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러니까 자기 신뢰가 생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형편없더라도 뭔가를 하는 게 낫다. 인생 많은 영역에 이 교훈이 적용되겠지만, 사업이 유독 그렇다. 사업엔 시행착오 횟수가 성공과 비례한다. 친구가 이 원칙을 한 번 더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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