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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06. 2023

On track


내가 호주에 사는 이유를 한 단어로 설명하면 '열등감'이다. 열등감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도망쳤다. 처음엔 일본으로, 그다음엔 호주로 도망 왔다. 글방 디아스포라. 여러 이유로 한국을 떠난 이들과 함께 연대하며 치유하며 그리고 회복해서 건강한 상태로 잘 살고 있다.



열등감의 원인은 분명한 사회적 계급도에 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해 유행이 빠르게 퍼진다. 조금 더 등급을 나누기 수월하다. 모두가 그 경쟁에 참여한다. 십 대 시절부터 비교의 문화에 산다. 등급을 매긴다. 넌 수 넌 우 넌 미 넌 양 넌 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1,2,3,4... 등급으로 불린다. 대학에 가면 A, B, C, D, F로 이동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학교 밖에서도 등급을 매기는 우리를 발견한다. 강남, 강북. 서울, 지방. 프리미엄 아파트, LH 아파트. 서울 대학교, 지방대. 독일차, 한국차. 명품 백, 보세 백. 저마다 행동 양식으로 가득하다. 돈 얼마 벌면 이 차 타세요. 연봉이 2억인 당신, 포르쉐 사도 괜찮습니다. 연봉이 1억인 당신은 S클라스. 아 연봉이 5천이라고요? 국산 중형차인 아반떼는 어떠신가요? 예? 3천밖에 못 버신다고요? 버스를 이용하시는 것 어떨지. 주관적 기준이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고, 사유하기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그 환경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밖에서 누군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내 것으로 사용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모든 면에서 최하위 계급에 속한 나는 지독한 열등감에 앓았다.




대학교 졸업증 없고, 기술 없고, 흙수저에, 블루컬러 가정 환경에, 문화 자본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알바 사이트에서 기술, 학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뿐. 콜센터 알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Q처럼 행복회로 돌리며 자기기만으로 그 안에서도 만족하며 살았다. 정신승리라 부른다. 나는 사원증 달고 양복 입고 회사 출퇴근하는 사람이 부럽지만 그들은 몹시 바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야 한다. 편한 내가 승자일지 모른다. 정신승리는 살아갈 기운을 북돋아 주는데, 콜센터 출근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건물 섬유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들과 마주친다. 그들 옆에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나의 꾸민 복장이 치와와의 허세처럼 느껴진다. 내가 맨 넥타이는 패션 아이템, 그들의 넥타이는 전투복. 명분 없는 넥타이가 부끄러워 슬며시 몸을 틀어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향했다.




계급화가 무서운 점은 하위 계층에서 그 계급도를 의식한다는 점이다. 계급의 피해자로 계급을 철폐하자, 가치 매기기 놀이를 멈추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에 중심축이 된다. 내가 아는 가치 체계는 그것뿐이므로. 문화 자본이 많았다면 자아실현과 함께 주관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반면 문화 자본을 얻지 못 하던 나는 사유의 기회가 없었다. 책을 읽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고, 누군가와 밀도 높은 토론을 하지도 않고 세계와 나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를 받는다. 같은 돈을 벌기 위해 밑 계급인 나는 더 오랜 시간을 일해야 했고, 출퇴근에 훨씬 오랜 시간을 써야 했다. 결국 내게 남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가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데 그 기회마저 박탈된다. 여가를 사용하는 건강한 방법을 알려준 이들이 없기 때문에 얼마 없는 여가를 불필요한 일에 투자한다. 주관이 없는 나는 객관적 기준(으로 여겨지는)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졸업증이 없는 내가 서성한 중경외시를 외고 다녔다. 뭐 00 대학교? 인서울 맨 마지막 자리 주제에 저렇게 행동해? 타인을 뭉개면서 위로를 얻는다. 그러다 타인을 뭉개는 그 기준, 그 몽둥이가 향하는 종착지는 자기 자신이다. 00대학교를 욕하는 넌 대학교 졸업증도 없잖아?




이 기준을 벗어난 곳으로 가야만 했다. 열등감과 작별하기 위해, 당분간 나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 그렇게 일본 워홀을 떠났고, 호주까지 오게 됐다. 애초엔 도망의 목적으로 왔지만, 환경 덕에 치유됐다. 여가가 생기고, 나라는 사람과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둘러본다.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우리의 도덕이나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 태어나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게 된다. 나를 옥죄고 있던 기준은 나와 사회의 합작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공모에서 빠지니 몸에 긴장이 풀린다.




호주에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내가 가진 편협했던 기준이 통하지 않는다. 과거에 갖던 계급도의 모든 인간을 만나며 깨닫는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다. 한국이었다면 어울리는 무리가 달라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여기서 공동체를 이루고 삶을 산다. 그 과정에서 계급이 환상임을 깨닫는다. 대학교 이름이 인간 지식의 바로미터가 아님을, 연봉이 일의 가치를 나타내는 게 아님을, 모두 숨 쉬고 밥 먹고 대화하며 사는 사람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그래서 사회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타인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고, 어떤 면에서 잘난 구석이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다. 나는 다정함이 필요하고, 그렇듯 나도 타인에게 다정해야 한다. 돈과 학벌과 사는 집의 타이틀에 차등한 다정함과 존중은 없다.




사회에서 모범으로 삼는 기준이 있다. 한국에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서울 4년제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30대에 억대 연봉을 받는 루트다. 영어식 표현으론 On track이라고 한다. You are on the right track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어. 한국에서 나는 그 트랙 위를 달릴 수 없는 낙오 선수였다.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충당할 학비가 없었다. 그러다 외국의 삶이 다시 트랙 위로 돌아갈 환경을 제시해 줬다. 호주 버전으로 바꾸니 그 트랙은 호주 대학 출신으로 호주 대기업에 다니는 것이다. 호주 대학을 다니기 위해 멜번으로 향했다. 대학교 학비를 충당하며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선 개인 사업을 해야 했고, 그렇게 청소 비지니스를 시작했다. 청소로 번 돈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직으로서 호주 대기업에 다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년 살다 보니 호주엔 On track이란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보여주기 위함인지 내 삶이 그것을 원하는지도 구분했다. 그렇게 대학교 진학과 호주 회사 취직이란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같은 이민자 출신으로 호주에 정착해 사는 사람을 본다.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트랙 위로 달리고 있다. 호주 대학에 입학해 호주 회사에 취직해서 일반 호주 사람들과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하고, 전시회에 다니고, 교외로 여행을 떠난다. 멋진 사진이 가득하니 괜히 울적해진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SNS의 폐해다. 모두가 가장 행복한 한때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것을 그들의 일상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모두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오류를 수정하니 다시 평화로워진다. 생각해 보니 나도 지난 몇 주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하고, 문화생활 누리고, 다른 주로 여행을 갔잖아? 단지 모아서 전시하니 대단해 보였던 것일 뿐. 이런 이벤트 아래 내 일상엔 먹고 자고 일하는 모두와 같은 메커니즘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질투한다. 일본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와의 사례가 떠오른다. 친구는 한국에서 명문 대학교 공대 출신이다. 일본인 여자친구(현재는 와이프)와 충실히 교제했고, 일본 대학으로 편입해 그쪽의 on track을 밟았다. 아르바이트하는 장소가 같았던 것일 뿐 트랙 안팎의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다. 평소 밝고 친절했던 친구가 주사로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만취를 이유로 감형해 줬다. 다음날이 돼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너를 질투했었어 그게 술 마시니까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왔나 봐" 부족할 게 하나 없던 친구가 나의 어떤 점을?이라는 의문이 따랐다. 당시 주변 가게에서 일하는 몇몇 일본 여자들이 내게 관심을 표했었다. 그리고 호주 생활을 결심할 무렵이었는데, 이 상태로 호주 가면 객사하겠다 싶었다. 위기감에 일하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점심시간에 문법을 공부했다. 친구 눈엔 자율 학습과 몇몇 사람의 관심 표시가 대단해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친구의 안정적 환경과 가족의 서포트, 창창한 미래가 부러웠던 터라 그의 진심 토크에 당황했다. 이 얽히고 얽히는 욕망의 고리를 분명히 인식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런 욕망의 연결고리는 매번 있다. 내 본업은 청소다. 나가서 청소기 돌리고 오후엔 카페 가서 커피 마신다. 특별할 게 없는 삶이다. 이렇게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살아도 되는지 의심이 든다. 10년째 내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행착오 없이 순탄하게만 살아와서 내 인생에 송구스럽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내 노력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예? 무슨 노력이요? 나처럼 대충 사는 사람도 없는데요. 내 성취가 부럽다고 한다. 예? 성취요? 10년 전에 프랜차이즈 시작한 이후로 커리어 적으로 아무것도 성취한 게 없는데. 게다가 청소는 아무리 호주라도 인식이 긍정적인 것은 아닌데. 내가 보기에 대단한 사람이 나를 대단하다고 하니 의아할 따름이다. 그들의 설명을 통해 내 어떤 요소에 대단함을, 때로는 부러움을 느끼는지 듣는다. 그들이 말한 그 요소는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어서 들을수록 수렁에 빠지게 된다. 되려 그들의 성취나 노력에 내가 박수를 치면 쳤지. 이런 어긋난 연결고리가 삶의 재미인가 싶다마는.





열등감에 쫓겨 여기까지 왔다.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사회에 있다 보니 열등감은 자연 치유됐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인간의 능력이란 대단하지 않으며, 환경의 역할이 중요하고, 모두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여가 시간이 생기고, 여가를 내키는 대로 사용하며 자아를 갖게 됐다. 그때 열등감은 실재했고, 지금은 신기루가 됐다. 그냥 타인에 다정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어떤 틀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트랙은 없다. 있어도 내 트랙 만들며 살면 그만이다. 그러기 위해 경기장 아예 밖으로 나가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렇게 사회는 구성되고 돌아간다. 한때의 나 같은 무수한 사람이 트랙 밖에서 안을 쳐다보고 있다. 언젠가 경기장 밖으로 나설 수 있길 바란다. 멀리서 보면 트랙의 줄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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