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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15. 2024

더할 나위 없는


 나는 취미로 언어를 다룬다. 축구하는 사람은 축구공, 야구하는 사람은 배트와 글러브, 당구는 큐, 뜨개질하는 사람은 실과 바늘, 낚시하는 사람은 낚싯대와 미끼, 줄넘기하는 사람은 줄넘기(사물과 행위를 둘 다 지칭한다)를 다룬다. 나는 짬이 나면 책 읽고 글을 쓴다. 두 활동 모두 언어를 다룬다. 독서에선 언어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는 활동을 하고, 글쓰기에선 언어를 효과적으로 꺼내 놓는 활동을 한다. 효과적으로 언어 다듬기를 배운다. 그 결과 언어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진다.


언어를 다루다 보면 언어의 힘에 대해 가산점 주게 된다. 같은 사건과 사물을 지칭해도 표현 방식에 따라 뉘앙스가 크게 달라진다. 표현엔 부정형과 긍정형이 나뉜다. 맥락에 따라 긍정 문장에 부정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런 변주를 통해 흔히 '너스레' '조소' '우회적 비난' 등의 가능하다. 사소한 변수를 넣어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맥락에 따라 같은 표현도 주는 느낌을 달리할 수 있다. 상황에 딱 떨어지는 말이라도 우리가 흔히 입말로 쓰지 않는 표현을 하면 어색하게 들린다. 그 어색함은 유머로, 펀치라인으로, 경고로 사용된다. 나는 의도적으로 입말에 주로 택해지지 않는 표현을 꺼낸다. 의도적 어색함은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적 어색함 라인업이 있다. 다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쓰인다. 구어체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나의 애착 표현 리스트가 있다. 그 표현은 기버로서, 다정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돕는 툴이 된다. 리스트는 이렇다.


-아름답다

-더할 나위 없다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내가 이런 좋은 경험을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구어체에서 주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의아할 수 있다. 그건 주로 쓰는데? 예를 들면 와 아름다워! 아름답더라-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미가 -다로 끝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대상도 중요한 차이다. 일반적 입말에서 아름다움은 외적인 것을 지칭한다. 저 여배우 참 아름답네. 와 이 건물 진짜 아름다워-처럼 말이다. 나는 행위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한다. -너의 그 행동이, 너의 그 마음씀이, 너의 그 배려가 아름답다-같은 맥락이다. 그러니까 상대의 선행을 칭찬하거나 감탄할 때 사용한다. 착하다는 말의 대체어가 된다. 여기서 착함과 아름다움은 다소 차이가 있다. 착함도 주관의 영역에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객관의 영역에서 사용된다. 관념의 아름다움은 착함보다 더 주관의 영역에 있다. 어떤 행위가 내게 와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는 뜻이다. 당신의 행동은 내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감명받았습니다. 이런 의미다. 그러니까 행동을 언급하는데서 추가로 행동이 끼친 결과까지 말하고자 한다.


더할 나위 없다도 어떤 목적을 지니고 쓰인다. 더할 나위 없다는 '최고다' '짱이다' '개좋다' '존나좋아' '시발' '미쳤네'의 대체어다. 좋다는 표현 중 하나다. 엄밀한 뜻은 그 위 없다는 '최고'와 '짱'과 같다. 다만 최고와 짱과는 쓰임의 빈도가 다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과장을 좋아한다. 가상의 스케일을 만든다. 0은 이보다 나쁠 수 없음 100은 이보다 좋을 수 없음이다. 인간은 51에서 최고와 짱을 말한다. 그 남은 49개의 영역을 하나로 축약한다. 관용적으로 최고와 짱이 나오다 보니 51 위에 있는 영역을 설명할 때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낯선 표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더할 나위 없다'다.


글을 쓰며 표현의 의미를 음미한다. 남보다 많은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내 안에 어떤 표현은 일반적 쓰임보다 더 분명한 색채를 지닌다. 이를테면 '짜증 난다'는 말이 있다. 짜증 난다는 표현은 갖고 있는 힘이 너무 강력해서 모든 분위기를 바닥까지 끌고 내려간다. 글자를 보고, 머릿속에 연상시키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차갑게 식는다. 반대의 경우가 아름답다와 더할 나위 없다다. 아름답다는 표현과 더할 나위 없다는 표현은 표현 자체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디아블로 2에서 소서리스가 쓰는 기술 중에 오브란 기술이 있다. 얼음 구체를 앞으로 쏘는 것인데, 그 구체에서 무수히 많은 얼음 화살이 산개해 펼쳐진다. 아름다움과 더할 나위 없음은 그 구체와 같아서 무수히 많은 따뜻함을 세상에 뿌려놓는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됐다. 랩탑을 덮고 약속 장소로 향해야 한다. 콜드 브루를 마시며 글을 한두 자 적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다. 40분 동안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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