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신인가수 조정석을 보고 있다. 배우 조정석이 1집 앨범을 내기 위해 고생하는 과정을 담은 예능이다. 친숙한 이미지의 배우가 신인의 자세로 가요계 종사자들에게 배우고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한다.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며 타인의 말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히 응원하게 된다.
응원과 별개로 하나 걸리는 지점이 있다. 바로 조정석의 가사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글쓰기 애호가로서 가사가 조금씩 눈에 밟힌다. 글을 쓰며 의식하는 내용 중 하나가 '멋부리기 않기'다. 다른 말로 하면 '척'하지 않기. 가사도 에세이와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한다. 문맥에 맞지 않은, 평소에 전혀 쓸 일 없는 가사를, 그러니까 입에 붙지 않는 말을 입으로 내뱉는 게 영 어색하다.
조정석의 가사를 보며 느낀 어색함은 내가 랩 가사를 썼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홍대 클럽에서 랩 공연을 해본 기억은 평생의 훈장이다. 공연을 준비하며 매일 가사를 썼다. 진정한 래퍼는 자기 가사를 자기가 써야 한다는 힙합계의 명을 받들었다. 진정한 래퍼 지망생은 무수한 습작을 남겼다. 만족도가 특히 낮은 가사들의 특징을 발견했다. 바로 평소에 잘 안 쓰는, 의미도 잘 모르는 단어를 나열한 가사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선 넘겨짚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 목소리가 뭔지 모르니 어쩔 수 없다. 여기저기서 들어본 말을 내것인 양 입밖에 낸다. 진정한 래퍼 지망생도 마찬가지다. 타블로 빙의해 쓰긴 하는데, 타블로만큼 언어에 대한 이해도, 깊이도 없는 사람이 쓰니 남의 것을 따라 하는 형국이 된다. 척하는 가사는 느끼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고독한 나그네. 심연 속을 난 걷네. 모든 외침은 내 심장의 고동을 따라. 나의 라임은 고통의 발악. 악마들이 내민 손 뿌리쳐, 힙합. 그곳이 내가 속할 천국으로 향하는 신당.'
유니클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다. 심연 보다 잠실역 8호선 환승구를 자주 걸었고, 델리만주 냄새를 맡으며 먹고 싶단 생각을 했다. 기차에서 가사를 적곤 했는데, 라임 맞추기는 고통이 아닌 재미를 줬다. 힙합을 좋아하긴 했는데, 실력이 없었다. 내게 뭘 같이 하자고 손 내민 건 동네 힙합하는 친구 정도였다. 그러니까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을,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단어들을 통해 만들었다. 와 마스터피스다! 대단한 걸 써놓은 만족은 하루 뒤에 그 정도는 아닌가?란 의문으로, 그다음 날엔 어 좀 민망한데?란 자각으로, 와 못 봐주겠는데?란 합리적 비판으로 이어졌다.
의욕은 실재를 부풀린다. 시간이 쌓여야 의욕이 실재로 수렴한다.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선 계속 쓰고,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인데, 의욕이 과할 때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문장이 나오게 된다. 일상적 속상함을 가슴 찢어지는 아픔으로 포장하게 돼버린다. 조정석의 가사가 이런 의욕으로 비쳤다. 끝까지 본 게 아니라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초반 3편까지 나온 곡 중 'I wanna loving'이란 곡이 있다.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영어식 표현과 느끼한 단어가 혼재됐다. 인간 조정석은 담백한데, 가사가 느끼해 괴리가 느껴졌다. 가사 쓰는 게 익숙치 않은 탓이라.
이런 말하는 나는? 별 수 있나. 글쓴이 애호가일 뿐. 솔직 담백한 문장이라 믿고 쓴다. 바로 다음날 현실과 좀 안 맞나?하는 의문이 든다. 내 상태를 집중해서 봐야 한다. 기쁘면 어떻게 기쁜지, 얼마나 기쁜지 감정의 방향과 정도를 계산해야 한다. 오차 범위가 낮은 표현인지 확인한다. 감정의 한 가운데선 현실감을 잃는다. 나의 고통이 가장 악랄한 것으로 보인다. 연옥의 고통으로 포장한다. 한 걸음 떨어지면 현실이 보인다. 연옥까진 아니고, 습식 사우나 정도다. 뭐 버틸만하다는 뜻이다. 내 인생에 못 견딜 고통은 없었다. 유도리 있는 고통이어서 적당히 시간 지나면 툭툭 털 정도였다. 과장하는 인간의 습성을 고려해 영점을 잡으려 한다. 노력은 하지만 잘하진 않는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파악하고 기록하기 위함이다. 솔직하지 않으면 글로 나를 파악할 수도 없다. 기록도 쓸모를 잃는다. 다시 생각한다. 글로 멋 부리지 말자. 나를 꾸미는 것은 오메가 프리본드, 유니클로 JW 앤더슨 블레이저, 라코스테 피케 셔츠. 포장은 이 친구들에게 맡기자. 글에선 내용물을 꺼내놓자. 글은 국밥집 카운터에 있는 박하사탕이다. 박하사탕을 먹어야 식사가 끝났음을 깨닫고, 식사를 돌아본다. 포장지째 입에 넣으면 먹을 수 없다. 포장지를 잘 까서, 사탕만 입에 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