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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Feb 03. 2017

진부, 직설, 멋

 너의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기타 등등 그립다. 너의 눈 코 입 아직도 생각난다. 몇 해 전, 크게 히트한 대중가요 '눈 코 입'의 가사다. 기억에 남는 상대 이목구비를 나열한 제목이다. 중요도로 배치한 것이라면, 비슷한 방식으로 몇 가지 요소를 나열할까 한다. 진부 직설 멋. 개인적으로 글 쓸 때 가장 피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진부한 표현이 싫다. 은유 직유, 그냥 형용사도 상황에 정답처럼 있는 것들이 싫다. 여자 연예인을 소개하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정치인들의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라는 식의 닳고 닳은 표현. 이 상황에는 이렇게 쓰던데 등의 학습이 만든 자리 배치다. 올여름, 당신의 심장을 짜릿하게 할 단 하나의 ~ 같은 수식의 영화가 보기 싫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글이든 재미를 찾는데,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글이 진행되면 핵노잼이 된다. 핵노잼 글에 귀한 시간 투자하고 싶지 않다. 


 직설적인 표현도 재미없다. 여기서 직설적이라는 말은, 화자의 감정에 한정된다. 황진이가 스님 꼬시려 몇 차례인가 나체로 스님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실패 끝에 비에 젖어 비치는 옷 입고 가서 성공했다는 일화가 있다. 다 까서 먹여주는 것보다 포장지째로 주는 게 좋다. 오, 안에 뭐가 들었을까? 생각할 여지를 주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벗기는 걸 좋아하는 탓에 벗길만한 껍데기가 같이 왔으면 좋겠다. 야구 중계에서도 직구보다 변화구 구경하는 게 재밌다. 오오타니처럼 160 던지지 못할 거면 변화구 좀 던져줬음 한다. 소크라테스 뺨치는 통찰이 있어서 해석 여지없이 진리를 딱 하고 놓을 수 있다면야 상관없다. 그러나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능력이다. 슬플 때 슬프다, 좋을 때 좋다 말하면 김이 빠진다. 대신 슬픔으로 인해 보이는 행동을 서술한다. 


 'A라는 여자가 카페 문으로 들어왔다. 얼굴 엄청 예쁘고 몸매 개쩌는 내 스타일이다.'  보다

 'A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이 커졌다.' 정도로 말한다. 글이 영화라고 치면, 직설적인 글은 치밀한 심리묘사가 없다는 느낌이다. 아! 무서워! 하고 소리 지르는 장면보다 팔뚝에 돋은 닭살 클로즈업하는 편이 설득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이런저런 장치를 해놓고 해석을 독자에게 넘겨주는 게 더 세련됐다. 


 멋 부리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 억지로 짜낸 교훈을 피한다. 글에 의미부여하는 연습은 필요하지만, 작위적이면 감동이 떨어진다. 개연성 배제하고 급하게 교훈으로 마무리. 십 년쯤 전에 진중권이 디워를 혹평했다. 아무 공감 안 되는 내용 끝에 아리랑 나오며 용이 승천하는 장면으로써 애국심 고취시킨다고. 마찬가지로 제대로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핵심으로 인도하지 않은 상태로 있어 보이는 결론을 도출하는 글이 나한테 나오지 않길 바란다. 수식이나 기교로 임팩트 주기보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시켜 각자 판단하게 하고 싶다. 결국 직설적 표현을 악으로 규정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세부 요소도 마찬가지다. 

'A에게선 창천을 유유히 비행하는 독수리의 고매한 기백이 느껴졌다.' 보다 'A는 기백이 있다'라고 쓰는 편이다. 힘 빡 들어간 부분은 나중에 꼭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여기야 여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들어봐!라고 호객하는 느낌이다. 주제의식이 확실하면 힘을 빼도 전해질 건 전해진다 믿는다. 


 여자 앞에서 좋은 인상받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야 내가 인서울 4년제 나왔어. 1등급 3개는 받아야 갈 수 있는 과야. 재력은 또 어떻고. 나 빨리 사업해서 돈 많이 벌어. 한 달에 천만 원 가까이 벌어. 내 나이 또래에 이 정도 버는 사람 몇 없는 거 알지?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 나 여자한테 인기도 엄청 많아. 작년에 5명이 나한테 고백했어. 내 얼굴 서강준 닮았잖아. 외모 학벌 재벌 빠지는 게 없다.' 상대 피 빨릴지 모른다. 입 말고, 긴 시간에 걸쳐 하나 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에세이를 쓸 때마다 코어를 숨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갈수록 꽁꽁 숨긴다. 글 위에서 10은 10에서 5+5로, 9+6-5로, 2x(30/3)/2가 된다. 어떨 땐  346923x0+10으로 읽는 사람에게 장난을 건다. 눈코입은 자주 불려서 발매한 해의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반대로 내 글에서 클리쉐에 허세가 덜 사용되다 결국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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