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생활과 효율에 대해 곱씹게 된 아침이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풀기 전에 상황부터 정리해본다.
오전 9시
오늘 미팅 스케쥴이 2개 잡혔다. 낮 12시에 사우스 멜번 건축 사무소에서 하나, 3시에 시티 오피스에서 하나. 어제는 볼더링을 쉬었고, 손가락도 회복됐다. 첫 번째 미팅 전이 볼더링 최적의 타이밍이다. 9시 20분쯤 출발해 40분 도착, 운동한 뒤 12시까지 건축 사무소로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다. 샤워를 마치려던 순간, 파트너가 욕실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초 화장품을 바르지 못하고,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욕실에서 나와 짐을 챙겼다. 아 참에 고장 나 있던 전자 키를 정리하는 중, 파트너가 다시 나타나 회사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볼더링은 준비 과정이 길다. 환복과 세족, 준비운동을 포함하면 실제 운동 시간은 줄어든다. 오늘은 최대 1시간 45분이 가능했는데, 회사를 경유하면 20분이 더 줄어든다. 나는 상황이 빠듯하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택시를 타겠다고 했다. 트램은 5달러, 택시는 25달러. 시간 절약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평소 출근 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20분의 운동을 포기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
오전 9시 20분
주차장에 들어서자 며칠 전 상황이 떠올랐다. 시티에서 열린 독서 모임에 함께 가기 위해, 내 차를 주차장에 두고 파트너의 차를 타고 이동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문제는 장비였다. 볼더링 신발과 초크, 운동복이 모두 시티에 있었다. 택시를 탄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파트너는 집에 있는 다른 차로 회사까지 태워주기를 원했다.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빠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선택은 내게 왕복 1시간의 운전을 의미했다. 설령 시티까지 가서 차를 바꿔도 운동 시간은 채 1시간이 되지 않는다. 준비운동을 포함하면 실제 벽을 탈 수 있는 시간은 30분 남짓. 무리해서 다녀올 만한 일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티 주차장은 차량 1대 등록제로 운영되었다. 규정을 어기면 이후 동선도 모두 꼬였다.
결국 나는 그녀를 회사까지 태워주고, 운동은 포기했다. 시티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단골 카페에 들렀다. 차 키 두 개가 내 가방에 있었다.
결혼 생활의 태도
돌아보면, 이 모든 수고는 파트너의 5분을 절약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함께 감행했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그럴 수도 있어”라는 한마디인지 모른다. 효율과 합리만 따지면 매번 갈등이 생긴다. 차라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반성
다만 여기에는 반론이 가능하다. 나의 기준에서 비효율일 뿐, 그녀에게는 5분이 실제로 중요할 수도 있다. 어떤 날에는 그 5분이 하루의 균형을 바꿀지 모른다. 나는 종종 내 효율을 절대적인 척도로 삼아왔지만, 되돌아보면 그 판단이 빗나간 경우가 수두룩하다. 결국 내 시각이 늘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마음가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인정하는 태도여야 한다.
개미의 교훈
행동경제학의 한 실험이 떠올랐다. 우수한 개미만으로 구성된 집단 A와, 어수룩한 개미가 섞인 집단 B를 비교한 연구다. 결과는 B가 더 번성했다. 시행착오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효율만 추구하면 실수는 줄지만, 동시에 길도 닫힌다. 반대로 작은 시행착오 속에서는 예기치 못한 길이 생긴다.
결혼 생활도 이와 닮았다. 누가 우수하고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상의 동선이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이 태어난다. 효율이 없는 게 효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