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 이벤트 프로젝트
우리 이벤트 프로젝트 '10 out of 10(이하 텐텐)'의 4번째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단상을 정리한다.
이번 멜번 헤리티지 런은 ‘쉽게, 더 쉽게’를 모토로 만든 이벤트다. 행동 없인 아무 것도 없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쉬워야 한다. 텐텐의 비전은 훌륭함이 아닌 꾸준함이다. 열번 고민하는 대신, 열 번 도전한다. 현실에서도 완벽한 한 번 보다 엉성한 열 번이 성공에 가깝다. 사업가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자 한다. 쉽게 가려면 약간의 생각이 필요하다.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최소한의 시간 투자로 이벤트가 구색을 갖추도록 안배했다. 구상 단계에서 가장 큰 산을 넘어뒀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너무 쉬워서 아쉬울 정도. 쉽게 하자란 목적에 부합하는 이벤트였다.
헤리티지 런은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우선 멜번의 젊은층이 즐길 법한 보편적인 아이템을 리스트 업 했다. 그 중 하나가 러닝이다. 대중성이 있으면서 구성 또한 쉽다. 큰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집결지를 정하고, 루트를 짜고, 달리는 속도를 설정하고, 페이스 메이커를 배치한다. 끝. 다른 이벤트의 경우 베뉴와 여러 조율이 필요하다. 따라야 할 것도 있고, 비용 문제도 발생한다. 달리기는 공공 장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치 않다. 우리 템포대로 뛰고 멈추면 그만이다. 10시간 달려도 베뉴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냥 달리면 텐텐이 아니다. 약간이라도 우리의 색이 있어야 한다. 어디서나 할 이벤트라면 멋지지 않다. 멋져야 레퍼런스로 가치 있다. 참가자들에게 이로운 것을 주고 싶다. 그래서 붙인 게 문화재다. 관광과 러닝,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 달리기 이후에 단백질이 풍부한 건강식 제공까지 책임진다.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이롭다.
앞서 말한 '가장 큰 산'은 문화재 전문가 섭외와 식당 섭외다. 산을 넘었다는 말은 섭외가 완료됐다는 말이다. 헤리티지 런엔 문화재를 선정하고 설명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 정도 공신력이 있어야 세상에 이롭다는 명분이 생긴다. 또한 달리기 후 소셜을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 이벤트 특성에 맞는 건강식과 쾌적한 공간을 원했다. 참가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식단가도 맞아야 했다. 구상 단계에서 각 책임자의 동의를 얻었다.
우선 나의 동거인이 문화재 전문가다. 아마도 호주 유일의 한국계 문화재 전문가다. 8년 경력의 시니어로 그간 굵직한 프로젝트를 담당해왔다. 듣기론 괜찮은 평판을 얻고 있다고 한다. 당사자 입에서 나온 말이므로 어느 정도 가려 들을 필요는 있다. 오래된 건물의 덕후로서 덕업일치의 전형이다. 빌딩 하나를 가지고 스크립트 없이 10분 넘게 떠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녀에게 2시간 짜리 달리고, 관광하는 동선을 짜달라고 했다. 스크립트에서 우리가 선정한 문화재가 저마다의 테마를 갖도록 했다. 유기적으로 물리게 제작했다. 이벤트의 핵심인 동선 제작과 스크립트 작성을 동거인에게 외주줬다. 그리고 완벽하게 임무를 달성했다.
다음으론 식당. 시티에 친구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오너 셋이 친구다. 그중 한 명은 필드에서 뛰는 오너 쉐프다. 해병대를 전역한, 디자인 엘리트 출신인데, 요리를 하고 있다. 그 특수한 배경이 흥미롭다. 그는 하는 일에 열정이 있고, 따뜻하고, 겸손하다. 앞선 이벤트에서 음식 관련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건강식 포케볼을 제공하고 싶다고. 그는 직접 이벤트를 위한 메뉴를 만들겠다 했다. 그의 도움 덕에 재료비만 내고 식음료를 구매했다. 식당도 영업 시간 이전에 개방했다. 친분이 없다면 불가능한 조건이다. 그 덕에 달리기 후에 눈치 안 보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벤트 실행을 위한 삼각 편대가 준비됐다. 달리기 동선과 스크립트는 동거인이, 모든 식사 메뉴와 뒷풀이 장소 제공은 식당 오너 쉐프가 담당한다. 나는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게 무슨 이벤트 제작인가 싶다만 대부분의 이벤트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적합한 사람을 찾아서 일을 하도록 요청을 한다. 나는 선심 쓰듯 결심 이후에 사람들에게 알리는 '선언'까지 한다. 캔바에서 우리 이벤트 색에 어울리는 레퍼런스를 찾았다. 메세지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요소 몇 가지를 추가해서 포스터를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려 참가자 모집을 시작했다.
우리 텐텐 팀은 총 4명이다. 나, 친한 동생 한규, 건축가인 우성이, 회계사인 시윤이다. 초기 텐텐의 목적은 개인적 용돈벌이였다. 그 목적이 실행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면서 사업 역량 강화로 변했다. 이때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친한 동생을 끌어들였다. 그와 이벤트를 구성하며 함께 성장하고자 했다. 미래에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을 함께 했을 때, 그의 역량에 따라 수익이 달라진다. 그의 성장은 내게도 중요하다. 여기에 그를 향한 내 인간적 호의가 있다. 그는 정이 많다. 그가 잘 되길 바란다. 그렇게 첫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건축가 우성이다. 오며가며 알게 된 동생인데, 같이 손발을 맞춰 보고 그를 인정하게 됐다. 뭘 해도 될 놈이다. 능력 있고, 열정 있고, 멀리 볼 줄 알고, 성격도 좋다. 나는 건축가 동생에게 '난 놈' 타이틀을 줬다. 내가 주는 최고의 찬사다. 돈 하나 안 되는 이런 이벤트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같이 성장하고자 한다. 마지막이 회계사 친구다. 이 친구도 '난 놈'이다. 회계사 친구는 세상의 억까를 당하며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번 일어나 목적을 달성한 케이스다. 똑똑한데, 강단 있고 겸손하다. 홍일점이다. 호주 스폰서 법이 바뀌면서 몇 번 영주권 문턱에서 넘어졌다. 잠시 귀국 했을 때, 생전 해보지도 않은 족발집을 운영해 궤도에 올려놓았다. 공부와 사업은 다른 영역인데, 첫 도전에 사업을 일으켰다는 데서 아연한다. 불굴의 의지 없인 되지 않는다. 그녀의 성인기를 의지로 고쳐써도 좋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공통점은 딱 하나다. 성격이다. 나는 겸손하고 둥근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이 모였다. 함께 한 시간은 다르지만, 모두 소중하다. 이벤트를 떠나서도 미래를 함께 도모할 생각이다.
텐텐의 호스트 4인 중, 이번 모임의 슈퍼스타는 우성이었다. 그는 올해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 중이다. 그는 건축가로서 지식도 풍부하고 다소 터프한 건축회사 오너 밑에서 혹독하게 업계 경력도 쌓고 있다. 그의 모교인 멜번대학교에서 강사 자리를 오퍼 받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 나는 스크립트에 문화재적 관점과 건축적 관점 두 개가 동시에 들어가길 바랐다. 참여하는 사람이 러닝은 물론이고 관광도 충실히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재 전문가가 쓴 스크립트를 기준으로 건축가 동생이 첨삭을 했다. 여러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를 쉽게 풀어 썼다.
건축가 동생이 가이드를 맡았다. 애초에 스크립트가 있으니 내가 직접 보며 읽을 생각이었다. 마지막 이벤트에서 내가 사회를 봤던 것처럼. 그러다 문득 건축가가 직접 가이드를 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 다른 호스트들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내가 맡아서 하려고 한다. 문화재 관련 스크립트 짜고, 음식 만드는 일처럼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예외로 하지만. 모두 호스트지만 사실상 내가 90% 끌고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벤트를 운영하고 있다. 가이드 맡기는 것은 10%를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건축가 동생의 열정과 능력을 믿고 부탁했다. 그는 가이드 역할을 수락했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가 잘한 이유는 단순하다. 엄선한 정보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크립트를 읽지 않았다. 키워드를 기준으로 외우고 그 자리에서 즉흥으로 말했다. 현장성이 살았고, 사람들 반응을 살피는 여유가 있었다. 함께 호흡하도록 만들었다. 저마다가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고 템포를 조절했다. 또한 선두 그룹 러닝 리더로서 사람들을 잘 이끌었다.
다소 빠르게 달리기가 끝났지만, 식당에서 커피를 제공해준 덕에 커피타임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한 번 깨달은 것은 러닝 경력이 없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훨씬- 못 달린다는 점이었다. 참여자들의 달리기 능력을 고려했을 때 다소 빠른 마무리가 더 괜찮은 선택이었다. 마지막에 여유롭게 커피 마시며 일정이 끝나 편한 이미지로 기억 자아를 남길 수 있었다.
음식은 걱정 없었다. 유능한 쉐프여서 이미 훌륭할 것을 알았다. 기대를 뛰어넘었다. 양도 푸짐했고, 맛있었고, 무엇보다 보기에 예뻤다. 저마다 이벤트와 음식에 대해 칭찬의 말을 나눴다. 그간 해왔던 4번의 이벤트를 통틀어 가장 참여자의 만족도가 높은 이벤트였다. 재참여 의사도 높았다. 달리기 이벤트는 한 번 더 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시티 위쪽을 달렸으니, 다음번엔 시티 아래쪽 야라강변을 훑는 모임이면 괜찮을 듯하다.
다른 호스트가 거의 신경쓸 일 없게 만들고자 한다. 첫 이벤트 때에 한규가 힘들어서 나가떨어진 경험이 있다. 너무 많은 짐을 준 것을 원인으로 판명했다. 그 이후로 내가 90%를 하려고 생각한다. 한규에게 말했다. 힘들면 일단 발만 담그고, 이름만 올리고 있으면서 차려진 밥상에서 밥 먹으라고. 정도는 덜하겠지만 그래도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회유했다. 최근에 참여한 시윤이도 같은 기준으로 다뤘다. 터프한 스케줄과 책임감에 나가 떨어질 수 있다. 우선 가볍게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상대의 역량에 부합하는 일감을 줄 계획이었다. 이번 이벤트에서 두 사람이 활약할 공간은 적었다. 다행히 그들이 더 많은 롤을 원한다. 다음 이벤트에서는 어려운 일을 분담할까 한다. 우성이는 별개다. 터프한 일정에 익숙한 친구로 일감을 더 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행사 당일엔 우성이가 행사를 이끌기까지 했다.
문제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우리가 너무 방심했다. 어려운 작업 다 끝내놨기에 할 일 없다-고 생각한 탓. 직전까지 손 놓고 있었다. 행사가 무너질 뻔 했다. 나는 결심-이라는 단순한 역할을 맡지만, 무게는 가볍지 않다. 내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내 임무는 어떻게든 실행하는 것이다. 행사 일주일 전에 정신 차리고 리허설 날을 잡고 스크립트 데드라인을 만들었다. 참가 현황을 보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인원수를 채웠다. 결심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한다. 텐텐은 일단 하는 훈련이다. 누군가 중심 잡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누군가의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하고자 한다.
다음엔 조금 더 난이도를 올릴 계획이다. 모두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할 계획이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멋지고 재밌을 것 같다.
멜번 10 out of 10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10outof10m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