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피자집 지분 인수가 완료됐다. 판매자가 보유하던 10% 지분의 이전이 끝났다. 잔금은 아직 남았지만 법적 효력은 이미 넘어왔다. 서류가 먼저, 돈은 나중이다. 순서가 뒤집힌 구조였다. 회계는 알면 알 수록 신기하다.
이번 이전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내가 요청한 매도였기에 초반의 위치는 을이었다. 판매자는 계산을 지연했고, 내가 모르는 지점에서 금전적 손실을 만들려 했다. 굳이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는 사안을 늘어뜨렸다. 배당금을 포함해 금액을 측정했는데, 계약 이전에 배당금을 빼가려 시도했다. 이것은 단순히 말하면 사기다. 만일 그가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면 긴 법적 공방과 시간, 에너지 소모가 발생할 수 있었다. 다만 배당 결정권자가 나와 절친한 사람들이다. 그들 덕에 불필요한 문제를 피했다. 그래도 지난 며칠은 피로가 쌓였다. 누군가의 상식은 내 상식과 다르단 사실을 배웠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서류상 권한은 모두 내게 있다. 잔금을 유예하며 상대를 압박할 수도 있었다. 법적으로는 내가 쥐고 있는 카드가 더 많았다. 그동안의 불편함을 되돌려줄 선택지도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돌아온다는 교훈을 한 번 느끼게 해 줄까. 하지만 그런 선택은 옳지 않다. 순간의 통쾌함은 남을 수 있어도, 관계는 남지 않는다. 또한 자존감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업에서 감정을 전면에 세우는 건 대체로 비싼 선택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남는 게 없다.
이전이 완료되자마자 이체 한도를 채워 송금했다. 보낼 수 있는 만큼 먼저 보냈고, 내일 마지막 잔액을 보내면 모든 정산이 끝난다. 일부러 미루지 않았다.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결국 내 기준이 된다. 기준은 한 번 정해지면 다음 선택을 쉽게 만든다. 이번에도 빠르게 보내는 쪽을 택했다. 불필요한 정의구현 욕심도 함께. 내가 정의가 아닌데 누굴 벌하리.
과정에 잡음은 있었지만 크게 번지지 않았다. 필요한 조치만 취했고, 불필요한 말은 줄였다. 속상한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오래 머물 이유는 없었다. 미워하는 시간은 비용이다. 그로 인해 손실이 생긴다. 남는 건 피로뿐이다. 해코지는 미수에 그쳤고, 구조는 유지됐다. 하룻밤 자고 나니 감정도 정리됐다. 회계사 형에게 이전 완료 연락을 받았을 때, 안도했다.
기존 주주인 친구들은 이미 새로운 단톡방을 만들었다. 오너와 매니저가 함께 있는 방이다. 아주 일부지만 가게의 주인이 됐다. 내가 처음부터 만들어온 사업은 아니다. 누군가 오랜 시간 운영하며 쌓아 올린 매출과 손님, 동선과 레시피 위에 올라탔다.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시작하려 한다. 오너가 됐다고 큰소리 낼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이미 돌아가는 시스템에는 이유가 있다.
소속감은 지분율로 생기지 않는다. 10%를 가졌다고 바로 ‘우리 가게’가 되는 건 아니다. 함께 문제를 풀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같이 겪고, 매출이 오를 때도 내려갈 때도 같은 방에서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이미 굴러가고 있는 시스템을 억지로 바꿀 이유도 없다. 내가 할 일은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동업에서 내 포지션은 비교적 명확하다. 예스맨에 가깝다. 무조건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시도에 대해 열려 있다는 의미다. 현상유지만 목표로 삼으면 조직은 서서히 굳는다. 새로운 시도 앞에서 망설일 때 “일단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무리한 확장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실험을 빠르게 붙여보는 태도. 작은 변화라도 일단 움직여보는 쪽을 선호한다.
사업가로서 내가 가장 많이 훈련한 건 행동력이다. 아이디어는 회의 몇 번이면 쏟아진다. 실행은 귀찮고 시간이 든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포스터 하나 바꾸는 것, 이벤트 한 번 붙여보는 것, 동선 조금 수정해보는 것. 대단한 전략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실행. 다만 나서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부담이 된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필요할 때 힘을 보태는 방식이 더 길게 간다.
이번 인수는 배당 수익을 위한 선택은 아니다. 현금 흐름을 안정시키고, 다음 매장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올해는 매장을 하나 더 열 계획이다. 기존 사업에서 나오는 유예현금을 재투자하는 구조다. 전에 없던 가게를 설계하는 일은 매번 재미있다. 다만 그 재미가 누군가의 수고 위에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일 잔금을 보내고 영수증을 회계사 형에게 전달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공식적으로 피자집에 합류한다. 을의 자리에서 계약을 경험했고, 갑의 자리에서 선택을 경험했다. 살다 보면 갑도 되고 을도 된다. 한쪽만으로 남을 순 없다. 결국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태도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같은 쪽을 택할 것이다. 그 편이 멋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