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축적의 방식

by 띤떵훈



꾸준함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 많은 이들이 지속하는 힘을 성실함이나 의지의 산물로 본다. 착각이다. 의지는 나약하고 환경은 가변적이다. 결국 남는 것은 구조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반복할 것인지 설계해야 꾸준함이 유지된다.



백일 글쓰기 모임에서 이 사실을 체감했다. 매일 글을 써서 올리는 강제적 환경이다. 약속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구조 덕분에 글쓰기를 일상에 밀어 넣을 수 있었다. 한 시즌 100일씩 열 시즌을 채웠다. 어제 1000번째 글을 올렸다. 3년의 세월이 숫자로 환산되자 비로소 무게가 실감 났다.



본래 글쓰기가 습관이었다. 10년 넘게 써왔지만, 매일 업로드하는 규칙은 없었다. 컨디션에 따라 2주씩 손을 놓기도 했다. 챌린지를 시작하며 더 의식적으로 썼다. 시간에 쫓겨 형편없는 글을 올릴 때도 있었다. 오로지 마감을 위한 쓰기였다. 의미 없는 문장을 이어 붙이며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날엔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전략을 바꿨다. 매일 쓰는 대신 쓸 수 있을 때 몰아서 썼다. 여러 편을 미리 써두고 나눠서 올렸다. 카페에 앉아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집필에 몰입했다. 글의 밀도가 살아났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매일 쓴 것이 아니라, 매일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어떤 구조 안에 있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꾸준한 사람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게 만드는 구조 안에 있기에 쓰게 된다. 정체성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나는 본래 꾸준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꾸준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나를 던져두었을 뿐이다.



이는 《더 빠르게 실패하기》에서 소개된 도자 공예 수업의 원리와 같다. 교수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단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했고, 다른 그룹은 작품의 총량으로 평가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양을 채우기 위해 수십 개를 만든 그룹에서 나왔다. 완벽에 집착한 이들이 이론에 머무는 동안, 많이 만든 이들은 손으로 감각을 익혔다. 시행착오 자체가 실력이 된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 편을 잘 쓰려 애쓰기보다 여러 편을 쌓아두는 편이 나았다. 반복 속에서 감각이 만들어진다. 물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전략은 달라진다. 마이클 모부신의 지적처럼 높은 단계에 진입하려면 의도적인 훈련과 피드백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지속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1000이라는 숫자는 경이롭지만, 본질은 그 숫자를 가능케 한 시스템에 있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구조 안에 나를 두었을 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재밌는 점은, 이 글이 실제 1000번째 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약 발행 과정에서 순서가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아쉬웠겠지만 지금은 무관하다. 번호는 껍데기일 뿐이다. 이 글 역시 구조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꾸준함은 결심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넣어두면 성취는 저절로 쌓인다. 1000번의 기록은 그렇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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