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굴곡(屈曲) — 방향을 트는 용기
도면 위에서 배관을 설계할 때는 자를 쓴다. 직선 파이프가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인공 구조물 안에서, 펌프라는 강제 동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자연 상태의 강을 관측해 보라. 아마존이든, 내가 매일 걷는 이 작은 지류든, 단 1km도 직선으로 흐르는 구간은 없다. 유체역학적으로 자연계에서 완벽한 직선은 가장 불안정한 상태다. 작은 방해물 하나만 있어도 흐름은 깨지고, 바닥은 불규칙하게 깎여 나간다. 이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외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강은 스스로 굽이친다. 이를 사행(Meandering)이라 한다. 이것은 물의 변덕이 아니라,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멀리 가기 위한 물리학적으로 계산된 생존 전략이다. 직선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허상이고, 곡선은 중력이 만든 실재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직선주로를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목표는 분명하고, 방향은 하나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항값이 쌓이기 시작하면, 직선을 고집하는 것은 시스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마찰은 늘고, 진동은 커지며, 어디선가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당신의 삶이 자꾸만 휘어지려 한다면, 그것은 의지가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의 본능이 ‘오래 흐르기 위한 각도’를 찾고 있는 중이다.
물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것을 부수고 지나가려 하지 않는다. 홍수 때를 제외하면, 물은 언제나 장애물 옆, 압력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아 돌아간다. 물리학의 대원칙인 최소 작용의 원리(Principle of Least Action)다. 그런데 사람들은 방향을 트는 일을 부끄러워한다. 하던 일을 멈추거나 직업을 바꾸는 것을 ‘포기’라 부르며 자책한다. 그러나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경로 재설정(Rerouting)이다. 마찰 계수가 지나치게 높아진 수로를 계속 고집하는 것은 미련한 설계다. 진동이 감지되면 밸브를 돌려 유로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도망이 아니라 유지보수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시스템의 수명을 연장하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벽에 머리를 들이받는 소모적인 투쟁을 멈추고, 중력이 이끄는 쪽으로 흐르겠다는 겸허한 선택이다. 꺾이는 것은 부러지는 것이 아니다.
굴곡에 진입하면 속도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자동차가 코너를 돌 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듯, 유체도 급격한 곡률 반경을 고속으로 통과하면 수로를 넘치고 제방을 무너뜨린다. 인생의 방향을 틀 때, 우리는 이 감속을 실패로 오해한다. 수입이 줄고, 성과가 보이지 않는 공백기가 찾아온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직선도로를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멈춰 선 것 같아 조급해진다. 그러나 관측해 보면 이 감속은 지체가 아니다. 새로운 방향에 적응하고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한 물리적 요구다. 이 구간을 건너뛰고 속도만 유지하려 하면 궤도를 이탈한다. 지금 당신이 느리게 걷고 있다면, 그것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다. 당신의 삶이 지금 거대한 굴곡을 통과하고 있다는 가장 정확한 신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설명이다. 현장에서 배관이 터지기 직전, 우리는 본능적으로 밸브를 잠근다. “왜 잠갔나?”라는 질문에 그 순간에는 논리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진동이 평소와 달랐다” 정도가 전부다. 사고 원인 분석 보고서는 사태가 수습된 뒤에야 작성된다. 인생의 방향을 틀 때도 마찬가지다. “왜 그만두나?”, “왜 갑자기 다른 길을 가나?”라는 질문 앞에서 당신은 할 말을 잃는다. 아직 결과값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하려 애쓰지 마라. 방향 전환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다. 기계가 과열되면 냄새와 소리가 먼저 변하듯, 당신의 삶이 보내는 위험 신호는 당신만 감지할 수 있다. 그 미세한 주파수를 남들에게 증명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이유는 나중에 온다. 경로가 안정되고 데이터가 쌓인 뒤에야 비로소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은퇴 후 강변을 걸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직선으로 뻗은 인공 수로보다,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이 홍수에도 강하고 가뭄에도 오래 버틴다는 것이다. 굴곡진 강은 속도를 조절해 바닥이 과도하게 파이는 것을 막고, 굽이마다 퇴적물을 쌓아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을 만든다. 굴곡 없는 삶을 부러워하지 마라.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은 직선의 삶은 빠르지만 취약하다.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고, 한 번 막히면 대안이 없다. 반면 숱한 실패와 경로 수정, ‘포기’라 불렸던 굴곡들을 통과해온 사람은 단단하다. 그들은 멈추는 법을 알고, 돌아가는 법을 알며, 속도를 늦추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여러 번 꺾인 흐름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당신의 이력서에, 당신의 지난 시간에 숱한 굴곡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환경에 적응하며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가장 정확한 기록이다. 강은 바다로 가기 위해 수만 번 굽이친다. 굽이친다는 것은 멈추겠다는 뜻이 아니다. 끝까지 가겠다는, 가장 강렬한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