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급류(急流) — 무너짐은 부서짐이 아니다
수력발전소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값은 수량(Q)이 아니라 낙차(H)다. 물은 평지에서 평화롭지만, 고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에서는 흉포해진다. 이것은 물의 성격이 변해서가 아니다. 위치 에너지(Potential Energy)가 운동 에너지(Kinetic Energy)로 급격히 전환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이 평탄한 수로를 따라 흐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관측한 모든 강에는 반드시 급류 구간이 존재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고, 계획했던 제어 장치들이 먹통이 되는 때가 온다. 사람들은 이를 ‘불행’이라 부르지만, 엔지니어의 눈에는 그저 ‘지형의 변화’로 보인다.
경사가 급해지면 유속은 빨라진다. 이것은 자연의 물리 법칙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홍수위 조절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수문(Sluice gate)을 닫으려 애썼지만, 이미 임계 유속을 넘어선 물은 닫히는 문을 부수고 나갔다. 그때 알았다. 경사면에서는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에 올라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은 오류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 가파른 경사면에 진입했다는 가장 정확한 계측값이다.
급류 구간의 특징은 바위가 많다는 것이다. 유속이 느릴 때 물은 바위를 피해 부드럽게 돌아간다. 하지만 급류에서는 피할 시간이 없다. 정면으로 충돌한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물줄기는 산산조각이 난다. 하얀 거품이 일고 파편이 튄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부서졌다”고 하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파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체역학적으로 이 현상은 조금 다르다. 덩어리진 유체는 좁은 틈을 통과할 수 없다. 바위와 바위 사이, 그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물은 스스로를 쪼갠다. 수천, 수만 개의 물방울로 미립자화(Atomization)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멸이 아니라 해체다. 그리고 해체는 생존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다.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자존심, 오래 고수해온 나의 형체, 단단한 고집들을 유지한 채로는 저 좁은 급류를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충돌은 필연적이다. 당신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사라지는 중이 아니라, 좁은 틈을 빠져나가기 위해 형태를 바꾸는 중이다. 강한 것은 부러지지만, 부서진 물방울은 어디든 통과한다.
실험실에서 유체의 저항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체의 점성을 낮추거나, 흐름의 방향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반대로 행동한다. 삶이 급류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더 단단해지려 노력한다. 예전의 방식, 예전의 지위, 예전의 안정감을 복구하려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나는 그런 시도들이 어떻게 실패하는지 숱하게 목격했다. 급류 속에서 거슬러 오르는 물은 없다. 바위를 붙잡고 버티는 나뭇가지는 결국 껍질이 벗겨지고 부러진다. 이 구간에서 필요한 데이터는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흩어지는 능력’이다.
내가 아는 가장 지혜로운 자들은 급류에서 힘을 뺀다. 통제권을 잃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형태가 해체되는 것을 허락한다. 설명하려 하지 않고, 변명하려 하지 않고, 그저 휩쓸린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이것이 유체가 경사면을 대하는 방식이다. 저항 계수가 0에 수렴할 때, 역설적으로 생존 확률은 100에 가까워진다. 급류의 물리학은 잔인하지만 단순하다.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더 크게 다치고, 힘을 빼는 순간 통과한다.
급류를 지나면 속도는 다시 줄어든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급류가 단지 파괴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다. 환경 공학에는 폭기(Aeration)라는 과정이 있다. 물을 강제로 휘저어 공기 중의 산소를 물속에 녹여 넣는 작업이다. 미생물이 숨 쉴 산소를 공급하여 물을 정화하기 위함이다. 자연 상태의 강에서 이 폭기 작용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바로 급류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고, 하얗게 거품이 이는 그 순간, 물은 대기와 가장 넓은 면적으로 접촉한다. 급류를 통과하기 전의 물과 통과한 후의 물은 화학적으로 다르다. 겪어낸 물은 용존 산소량(DO)이 훨씬 높다. 더 맑고, 더 생명력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무너짐과 부서짐을 겪지 않은 삶은 고요하지만, 탁하다. 그 안에는 산소가 부족하다. 반면 급류를 통과하며 처절하게 부서져 본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공명한다. 자신을 둘러싼 껍질이 깨지면서 세상과 닿는 면적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모인 물은 이전보다 투명하다. 흙탕물은 가라앉고 거품은 사라진다. 삶은 다시 조용해지지만, 이전의 조용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던 예민함은 사라진다. 이미 바위와 부딪혀 본 물은, 자갈 따위에는 흐름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 후 매일 강을 보며 기록한다. 급류는 강의 전체 구간 중 아주 짧은 부분이다. 그러나 그 짧은 구간이 강의 수질을 결정한다. 지금 당신의 삶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다면, 기억하라. 당신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필수적인 ‘산소 공급 구간’을 지나고 있다.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자신을 가여워하지 마라. 그 충돌 덕분에 당신은 썩지 않는 물이 되고 있다.흐름이 유지되는 한, 무너짐은 실패가 아니다. 형태는 사라졌어도 본질인 물(H₂O)은 그대로다. 급류는 당신을 멈추게 하려 온 것이 아니다. 정체된 웅덩이에서 꺼내, 더 넓고 깊은 다음 수조로 당신을 보내기 위해 밀어붙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부서져라.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