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필사적인 생존이 타인의 절박한 이익과 충돌할 때의 아픔.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드물지만 설정만으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영화들이 있다. 그러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관객이 대답을 쉽게 내뱉기 힘든 질문들을 품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만든다. <내일을 위한 시간> 역시 이를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딜레마를 선사하는 이야기이다. 나를 위할 것인가, 우리를 지킬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16명의 직원 중 14명은, 첫 투표에서 주인공의 복직 대신 본인의 금전적 수익을 (1000유로, 현재 기준 약 1,500,000원) 선택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녀는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지, 이 회사의 급여는 어느 정도 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물론, 주인공의 퇴사를 바라는 사측(社側)에 반기(反旗)를 든 최초의 2명에 대한 존경심 역시 저절로 피어오른다.
주말 동안 동료들을 전부 만나 이들을 설득시키려 눈물겹게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대응들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하여 감사를 말하는 이, 어떻게든 만남을 피하려는 자, 그녀의 복직을 찬성하는 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놈 등. 그도 그럴 것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내내 괴로워하던 이들, 이미 획득한 보너스를 허무하게 망실할 위기에 놓인 자들, 다수의 새로운 결정에 의해 자신의 뜻과 반대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될 상황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들이 주인공에게 그녀를 지지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되묻는 점 또한 인상 깊게 다가온다. 아무리 고결한 결단을 내린대도, 그것이 다수의 선택에 속하지 않는다면 허탈감만을 지닌 채 직장생활에 악영향을 받을 것이 뻔하기에 이를 그토록 알고 싶어 하리라 추측해 본다. 어쩌면, 패배를 짐작했음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윤리의식에 대하여 함께 논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싶은 마음에 이를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주인공 역시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편에 선 이들이 누구인가를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이 고통스러운 싸움에 끝내 떳떳하기 위해선 더 이상 타인의 선의를 이용하지 않아야 함을 그녀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재투표의 결과는 무승부이다. 이는 아마도 영화가 직원들 모두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규칙은 몹시 불합리하며 불공평하게 여겨진다. 그녀에게 선물된 은밀하고도 비열한 제안을 듣고 나면, 더욱 그러하다. 흥미롭게도 퇴사자의 단호한 거절은 너무나 마땅한 판단임과 동시에 숨 막히도록 숭고한 선언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패러독스가 주는 기묘한 감동이, 이 이야기의 탁월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점이 아닐까.
자신의 필사적인 생존이 타인의 절박한 이익과 충돌할 때의 아픔을 영화 안팎의 모두가 통감한 이 작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를 단언하기는 꽤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떠난 직장에 남겨진 이들의 미래가 무척 걱정되기도 하기에. 하지만 자상한 남편이 오래도록 동행할 주인공의 앞날이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아,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2025. 02.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