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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텀 스레드>(폴 토머스 앤더슨) 리뷰/감상문

이 위험한 여자, 알마는 소망한다 그녀에게 금지된 것을.

by 우언타이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아는 것은 더, 더 어렵다. <팬텀 스레드>의 주인공인 레이놀즈에게 깊이 박힌 삶의 한계 역시 이러한 성질의 것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통 빛나면서도 그 속은 완전하게 텅 빈 채로 살아가는, 미중년 새침데기 디자이너.



단언하건대 그의 연애들은 내내 분명한 갑을관계의 양태(樣態)로서 위태로이 버텨왔을 것이다. 물론, 갑의 왕좌는 항상 우월한 레이놀즈의 차지, 을의 자리는 불쌍한 뮤즈들의 몫. 그러나 그의 인생에 새롭게 등장한 알마는 지나간 여인들의 모습과 어쩐지 겹치지 않는 존재이다. 을로서라도 그의 곁에 있으려 기꺼이 병(丙)이 되려 했던 수많은 이들과 달리, 그녀는 을 주제에 감히 갑과 맞먹으려 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러한 레이놀즈가 이러한 알마에게 점차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은 능히 예상할 만한 줄거리의 흐름이다. 그러니 아마도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서사의 방향이 아니라 그 충격의 크기일 것이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지독(毒)하다. 이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조심히 없고 미래가 없으며, 윤리가 없고 배려가 없다. 결정적으로, 정도(正道)가 없다. 이 위험한 여자, 알마는 소망한다 그녀에게 금지된 것을. 모순적이게도, 레이놀즈는 그녀가 파놓은 함정에서 간신히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한다. 몸이 끔찍이 아파야 겨우 나을 수 있는 마음의 병(病)도 있다는, 이 이상한 사실을 간신히 깨달은 후에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영화의 진행에 따라 부부 사이의 좌충우돌과 우당탕탕이 한바탕 지나가고 마침내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 알마 역시도 참으로 뻔뻔하고도 단호하면서 정직하게 자신의 애정을 레이놀즈에게 털어놓는다.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몇 개 포함되었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자의 머릿속에는 어떤 판단이 이루어졌을까. 추측하건대, 자신이 얼마나 쉬고 싶은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얼마나 약한지를 처음 인지시킨 그 옛날의 그리운 어머니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이제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겠다고 확신하지 않았을까. 내가 누구인지를 그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존재의 품에 안기고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기에, 결국 둘은 서로를 껴안고는 웃으며 입을 맞춘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남녀, 부디 백년해로(百年偕老)하기를.



실제의 것이든 허구의 것이든, 타인의 연애사를 먼발치에서 보고 듣는 것은 정말로 재미있다. 당연히, 내가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만한 이야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바로 그렇기에, 애정하는 이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따스함으로 외투를 벗기는 대신 불사름으로 그 옷을 태워버린 무시무시하고도 기이한 사랑을 내게 알려준 이 걸작에 감탄을 표한다.


2025.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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