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끼치는 잔악과 마주 보는 것은 게임에서 승리하려는 지독한 욕망.
※ 스포일러 있음.
※ 아래 이미지들의 출처는 왓챠피디아.
파스칼 플랜트 감독의 <레드 룸스>를 작년 가을에 관람한 직후, 제 머리는 커다란 물리적 충격을 받은 듯 상당히 얼얼했습니다. 큰 기대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고 나온 흔치 않은 경우였지요. 특히 감명 깊게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집중하여 다루는 내용이 악이나 선 또는 정의가 아닌, 불가해하고도 뒤틀린 욕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악무도한 범죄의 용의자로 법정에 선 슈발리에는 어딘가 섬뜩합니다.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악행을 실제로 그가 저질렀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서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관객 역시 그의 실체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고요. 물론 그 진실은 도중에 또렷하게 밝혀지므로, 보는 이들은 그 순간부터 마음 놓고 이 남자를 경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인간을 갈망하는 기이한 여인들이 있다는 점은, 이 서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클레망틴은 슈발리에가 악인이 아니라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용의자에게서 매력을 느낀 나머지 그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 온 힘을 다하는 그녀를 응시하며, 우리는 어쩐지 조소를 짓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모두에게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면이 조금씩은 자리하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애정할 수 없는 자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동경의 감정을 희미하게나마 품어 본 경험을, 여러분 역시 짧게라도 한 번쯤 겪으셨으리라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끝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켈리앤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고도 소름 끼치는 인물입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선과 악의 이분법 따위는, 냉정하고도 아름다운 그녀 앞에선 아무 짝에도 의미 없습니다. 게임에 참여하고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철녀이자 마녀인 켈리앤이 법정에서 저지른 어떤 돌발행동을 보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절로 오싹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 그랬고요. 서사의 후반부에서 마침내 간절히 원하던 것을 쟁취한 그녀의 표정은, 정말이지 서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예측하지만, 적어도 전 <레드 룸스>가 걸작이라고 판단합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이야기와 마주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이상한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25. 0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