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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치들>(라스 폰 트리에) 리뷰/감상문

우스꽝스럽고도 자극적이며 섬뜩하면서도 서글픈, 라스 폰 트리에의 최고작.

by 우언타이

※ 스포일러 있음.


주어진 인생을 살다 보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슬픔과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백치들>은 그러한 수렁에 빠진 자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무언가를 잠시나마 벗을 수 있도록 한 어떤 불쾌한 일탈들과 조우한 모습들을 이른바 순결의 방식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스스로를 완전히 놓아버린 후 순수라는 모습의 가면 그리고 갑옷을 착용한 채 내면의 악과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행위로부터 마음속 깊이 자리한 아픔을 간신히 어루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순간들은 그들이 추구하던 것의 거짓 없는 원형을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이나 지켜내야 할 사회적 지위 앞에서의 두려움을 온전히 덮어주는 데는 실패하였다.


작품의 표현에 대해 말하자면, 실제의 다운증후군 환자들 앞에서 술병을 던지거나, 방탕하기 그지없는 난교의 현장을 여과 없이 등장시키는 경악스러운 장면들은 분명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충격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도그마 95] 선언이 훗날 어떻게 흐지부지 되었는 가를 떠올리면 마치 감독이 미래를 내다본 듯한 느낌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우스꽝스럽고도 자극적이며, 섬뜩하면서도 서글프기까지 한 <백치들>이 무시무시한 걸작이라는 의견에 꽤나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감독이 대체 어떻게 이처럼 미친 예술을 상상할 수 있었는 지를, 도저히 상상해 낼 수가 없다.


2025.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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