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 "나는 출근이 두렵다" 연속기획을 읽고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이 어디에 있는지 대전 사람들은 알까? 대전 사람들은 잘 몰라도 나 같은 신탄진 출신들은 잘 안다. 대전에서도 손에 꼽는 변두리, 이곳에서 중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서울에서 만난 대전 사람에게 한 번쯤 놀림을 받게 되는, 그 신탄진에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이 있다.
그래서 한국타이어 하면 두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평범한 기억인데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느낌. 우리 중학교에는 아버지가 한국타이어에 다니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울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분 중 하나도 한국타이어에 다녔다. 그리 넉넉하진 않지만 다른 어려운 집들에 비해 꽤 안정적으로, 간단한 취미생활 정도는 누리면서 사는 느낌이 공통적이었던 것 같다. 내 중학교 시절이 무려 IMF 직후... 였기 때문에 그런 안정적인 느낌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도 두 번째 기억은 바로 울아버지의 친구분과 관련된 것. 병국이 아저씨는 울아버지의 삼호국민학교 (지금은 없다) 동창이었고, 아버지들이 부부동반 계를 하며 아이들도 자주 끼워서 모였기 때문에 내게도 친숙한 분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갓집에 닷새 내내 머무르며 일손도 돕고 술도 잔뜩 마시고 했던, 그리고 서글서글한 느낌에 친절한 말씨와 손재주가 많았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아주머니에게도 참 잘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병국이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어느 날 아침 날벼락처럼 들이닥쳤다. 교대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 책상 앞 의자에 앉아서 잠이 들었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일어나지 않아 아주머니가 깨우려고 보니 잠든 채로 숨을 거둔 상태였다. 나중에서야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했지만 원체 건강한 사람이었다. 노조에서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상갓집을 사흘 내내 지키다 온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오늘은 좀 봐줘라. 친구가 저러고 죽었는데 오늘은 술 좀 마셔야 하지 않겠냐"
그 무렵 한국타이어에 아저씨와 비슷하게 자다가 죽어나간 사람들이 꽤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똑같이 심장이 갑자기 멎었다고 했다. '돌연사'라는 용어가 뒤늦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다시 뒤늦게 2008~9년 무렵에 한국타이어의 '집단 돌연사가 직무와 연관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나는 아저씨의 가족이 그 뒤에 보상을 받았는지, 원인 모르고 세상을 뜬 망자가 억울함을 풀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 순전히 일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누구나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뒤엔 모두 뒤늦은 것이 된다는 것. 그게 한국타이어 하면 떠오르는 두 번째, 슬픈 기억이다.
신탄진을 벗어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십수 년이 되었다. 세월에 떠밀려 잊었던 기억이 대전 노컷의 기획기사 덕분에 되살아났다. 이번에 나온 기획연재 중 첫 기사에는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의 중대재해 사고사례들을 다뤘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을 이야기들인데 김미성 기자가 다뤄줘서 감사할 따름. 앞으로 나올 연재가 정말 기대된다. 2000년 초반 대전공장에서의 죽음들은 신탄진 사람들은 알았지만, 대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고, 대한민국은 전혀 몰랐다. 이런 죽음들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하다
노컷뉴스 연속기획 [나는 출근이 두렵다(1)] 멈추지 않는 한국타이어 사고… 기계에 머리 끼고 가스 흡입
https://n.news.naver.com/article/079/0003506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