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한 자들의 과시적 폭력에 대한 고찰
어렸을 때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맞아본 기억이 있다. 중2 무렵이었던가 운동장에서 자율체육을 하던 중인 것 같은데 갑자기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던 친구가 "눈깔 똑바로 뜨라"며 별안간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날린 거다. 같이 맞잡고 투닥거리를 하려니 반 친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시절 남중생들에게 싸움구경만큼 재밌는 일은 없었으니... 체육선생님이 볼까 무서웠던 몇몇이 말려서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고, 불과 바로 이어진 쉬는 시간에 그 친구가 와서 사과를 해서 싱겁게 일단락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지만 이제 무려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고, 질풍노도의 중2 정도의 수준이라면 그럴 법한 일이었다 싶다.
어른이 되어 그때의 일을 생각해보면, 그 무렵 짧은 머리를 젤로 세우고 바지를 줄여 입기 시작했던 그 친구에게는 고사리손으로 겨우 쥐게 된 한 줌 운동장 모래알 같은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피차 아무것도 아닌 동급생 아이들의 사이에서 권력은 그런 작은 투닥거림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단순히 체격이 크고 근력이 세다고 다가 아니다. 호전성/ 과감성/ 저돌성과 같은 고대 스파르타스러운 성품상의 미덕(?)도 중요한데, 거친 아이들은 폭력을 수행함으로써 동급생의 '인정(recognition)'을 받게 되기 때문에 나서서 싸움을 하고자 하는 태도 자체가 일종의 미덕(virtus)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정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바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다른 학교와의 패거리 대치신에서 제일 앞장선 3학년 선배가 "멋진 놈"의 칭호를 갖게 된 것처럼. ('멋지다'는 것은 일종의 미학적인 감각일 것이다. 동년배 사이에서 어떤 것이 멋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그때 나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바지를 줄이고 멋을 부리기 시작한 그 친구의 '인정투쟁' 가도에 있어서 필수적인 통과의례의 제물이 될 뻔했는지도 모른다.
거친 아이들이 폭력을 통해 얻게 된 것을 '멋짐-권력'(cool-power)이라고 명명해본다. 그런데 이 멋짐-권력은 사실은 근본적으로 허구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기도 하다. 허구적 권력은 현실에서 확인될 때에만 있는 것이 되고, 확인할 수 없을 때에는 더 이상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나가던 눈빛끼리 마주쳤을 뿐인데도 상대방의 눈빛에 충분한 공손함이 없었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별문제 없이 넘어갈 상대방의 의도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까지 꼬투리를 잡아 폭력으로 단죄하는 것이 멋짐-권력의 핵심이다. 의미 없는 폭력을 통해서만 이 멋짐-권력이 확인되고, 어느 정도의 멋짐-권력이 있는 녀석이라야 그의 폭력이 동급생 아이들에게 설득력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거친 아이들의 멋짐-권력은 정말이지 무상하다. 법적인 관점에서 폭력은 어디까지나 형사처벌의 대상일 뿐이며, 어린 시절보다 훨씬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다 큰 어른의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로 성공해봐야 비행청소년에 불과하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군대나 문화가 많이 낙후된 일부 직장 등에서 똥군기를 잡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후임 앞에서 큰소리치는 순간에는 멋짐-권력을 획득했다는 쾌감을 갖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이고 결국 동료들의 뒷담화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나아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도 부끄럽게 느끼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라떼는 말이야..."라며 병장 시절 무용담을 시전했다가는 되려 면박을 당하기 쉽다. 제발 자신의 인격을 위해서라도 과거의 과오는 참회하고 함구하기를.) 이제 막 바지를 줄여 입기 시작한 중2 정도라면 그나마 따끔하게 혼내고 그 병든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의 '손가락 논쟁'에 대한 기사며 글들을 살펴보다 보니 '눈 마주쳤다'고 몇 대 맞았던 옛날의 일이 떠올라 씁쓸하다. 청와대가 말리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논란이 된 기자는 이미 흠씬 맞았고, 여전히 기자를 향해 눈을 흘기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이번 회견에서 문 대통령께서는 소모적인 논쟁은 정리하고 갈등 요소를 줄여보려는 의중을 드러낸 듯한데, 대통령 지지를 내세우며 불필요한 설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름도 가물가물한 중2 때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근데 그날 나는 왜 때린 거니?) 이런저런 생각이 겹쳐 머리가 복잡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