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기업PR 인쇄광고라는 첫 과제를 받았다. 광고주가 요청한 인쇄광고 소재는 차량으로 운영하는 무빙 뱅크 서비스였다. 무빙뱅크는 고령인구가 많은 서울시 5개 구 복지관을 차량으로 매주 방문하는, 찾아가는 은행이다.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위주로 금융소외계층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CSR 목적으로 시행한 서비스다.
우리팀은 먼저 간단하게 광고의 방향성을 정리했다. 광고를 통해 단편적인 서비스 편의성 소구를 넘어, 세상을 바꾸는 금융의 실체를 통한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돈의 가치만 키우는 금융 기관이 아닌, 다수만을 위해 존재하는 점포가 아닌 사회적 은행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김밥 한 줄 사 먹기도 어려워요"
"밤 기차 타고 올라와서 대중교통이 끊기면 집에 갈 수가 없어요"
디지털 키오스크가 누군가에게는 편리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시간 절약의 기회가 될 수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은행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공존과 공평이다. 이동 점포를 통해, 국민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금융 사각지대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 서비스의 핵심 가치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방향성에 따라, 제작팀에서 다양한 시안과 카피를 제안해주셨다. 일정 여건 상 시니어모델을 촬영해 인쇄광고물에 반영할 수 없었고, 광고주측에서도 시니어모델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쾌청하면서도 희망찬 느낌을 줄 수 있는 시안 위주로 제안했다. A부터 D안까지 카피, 일러스트를 활용해 광고주 니즈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옵션을 제안했다.
A안. 찾아가는 어르신 은행 편
배경과 차량은 실사로, 어르신들의 이미지는 정감 어린 일러스트로 표현해주셨다. 이런 게 요즘 트렌드라고도 했다.
B안. 세상 가장 반가운 은행 편
은행이 제 발로 찾아 온다면, 타겟인 어르신들의 감정이 어떨 지 상상해보았다.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싹틀 것이라고 생각했고, 명절 날 손주처럼 찾아오는 이동 차량 점포의 존재감을 사람의 감정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광고주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C안. 한 발 더 다가가는 은행 편
기업PR적인 관점에서, 고객을 향한 기술이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지 않을까?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찾아뵙고 도움을 드리는 새로운 은행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두어 제안했다.
D안. 은행이 달려갑니다 편
금융의 역할을 능동적, 적극적으로 담아낸 카피도 제안했다. 시안 이미지는 주택가 사이 힘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이동 차량 점포의 모습을 담았다.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차량이 시안에서도 잘 느껴졌고, 얼터안 개념이기는 했으나 해당시안 역시 광고주의 선호가 높았다.
이렇게 인쇄광고를 1차 제안 드렸고, 시안 이미지는 맑은 하늘과 계절감을 담아낸 단풍나무를 반영한 A안이 셀렉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광고주가 원했던 방향은 한 편의 인쇄광고로 시니어 타겟들이 감명(?)을 얻고 또 서비스의 가치를 절감해야 했기에, 카피에서 수 많은 수정이 있었다. 수정에 수정이 이어져, 릴리즈 날짜는 계속해서 미뤄졌다. 피드백이 오지 않는 날에는 애가 탔지만, 수정사항은 받는대로 제작팀에 즉시 공유했다.
결국 카피는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확정되었다.
1. 메인카피
2. 바디카피
3. 슬로건 + 서비스명
4. 서비스명에 대한 간략한 설명 문구 (작게)
바디카피는 4줄로 간략하게 줄이고, 그 아래 설명문구를 추가한 것이 피드백의 핵심이었다. 또한 서비스를 상징하는 아이콘 소스도 광고주측에 따로 요청하지 않고, 심플하게 차량 픽토그램을 서비스명 옆에 심어 제안 드렸던 부분이 만족도가 컸던 것 같다. 이제 몇백개의 매체를 출고할 일이 남았지만... 이 인쇄광고 기획부터 출고까지의 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다음부터는 기업PR 광고에선 감명을 줄 수 있는, 타겟 지향적인 따뜻한 메시지를 개발하는 데 힘을 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카피 수정 요청이 있을 때는 이제까지 제안했던 카피들을 한 번 되짚어 보면서, 재차 활용해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다시 제안해보는 순발력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어쨌거나 제작팀이 제일 고생했다. 카피를 함께 계발하고 고민하며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