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 나의 소녀

54년 말띠 소년, 58년 개띠 소녀.

by 구와하나

54년 말띠 소년, 58년 개띠 소녀. 나의 아부지, 나의 어무이.


종종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곤 한다.

6.25 휴전 직후 태어난 소년, 소녀.

옛 세대, 그러니까 나의 부모 세대에는

태어나고도 1년을 텀을 두어 출생 신고를 했다.

태어나 1년을 채 살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많아

호적이 더럽혀진다는게 이유였다고 한다.

나의 53소년, 57소녀는 그렇게 꽁으로 한 살씩 어려졌다.

꽁이라고 표현 하기에는 좀 그럴까.

태어나 1년을 버텨낸 상이라고 해야할까.


전쟁 이후 먹을게 없어 모두가 허덕이던 그 시절.

둘 다 형제남매 많은 집 안에 태어나 그리 유복한 어린 시절을 못했으리.


나의 소년은 학교를 가는 대신 돈을 벌어야 했다.

위로 형 둘,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둘.

(여동생 한분은 어릴적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큰 형은 맏이라 어찌저찌 학교를 보내고

막내 남 동생은 형들이 벌어 온 돈으로 학교를 보냈다고 했다.


나의 소년은 그렇게 검정 고무신을 신고

부산역, 남포, 자갈치를 걸쳐 토성동을 누비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산항으로 많은 물자가 들어 오던 시절.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고모부를 따라

배에 들어가는 히터 기술을 배우며 그 길을 누벼야 했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조막만한 손으로

동생 간식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는

외가 큰아버지의 말이 있었다.


운동화.jpg 사진출처 - 픽사베이


나의 어린 소년은 온 동네를 누비던 자신의 검정 고무신이 싫다고 했다.

친구들은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에 어쩔 수 없이 신었던 고무신이 싫었다고 한다.

거무튀튀한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나의 소년은 그렇게 커서 새하얀 운동화만 고집했다.

나는 나의 소년이 단 한번도 다른 색의 운동화를 신은 모습을 본적이 없다.


나의 소녀는 어릴적 미싱을 배웠다고 했다.

위로 큰 오빠 하나, 언니 둘, 남동생 하나.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던 시대,

오빠와 남동생이 학교를 가서 연필을 잡을 때면

나의 소녀는 연필 대신 미싱 기계를 잡았다.


미싱.jpg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나는 어릴적 가끔 집안에서 돌아가던 미싱기계가

집 안에 왜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따로 물어보지 않은

나의 탓도 있겠지.


나의 소녀가 나의 소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 탐탁치 않았다고 했다.

지금의 외가 큰아버지의 소개로 둘은 처음 만났다.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나의 소녀가 맞선 자리에서

나의 소년을 퇴짜 놓았다.

그러다 6~7년 시간이 흘러 둘은 무슨 운명인지

다시 만나 나를 낳았다.


오늘로 부터 십여년 전 나의 소년은

5월 봄 맞이 꽃을 따라 먼 길을 떠났다.

살랑 살랑 봄 바람 따라 멀리 멀리 떠났다.


그로부터 몇년 뒤 나의 소녀도 소년을 따라

5월 봄맞이 꽃 구경 하러 멀리 멀리 떠났다.


지금쯤 소년과 소녀는 만나

손 잡고 꽃놀이 하고 있을까.


나는 5월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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