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어린 시절 부터 고모부 밑에서 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거나, 부품 수리하는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만들었던 건 냉난방 히터였는데, 이게 꽤 돈이 되었다고 한다. 부산항으로 들어오던 외국 대형어선의 냉난방 히터가 고장이 나면, 기껏 잡은 생선을 얼릴 수가 없어 버려야 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결제는 달러로 받았다고. 그러다 보니, 나름 당시 부산에서는 이런 기술들이 알아주는 기술 중 하나라고 했다.
그때는 이런 기계 부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고 기름쟁이라 부르곤 했다. 지금의 사전적 정의와 다르게 기계를 만지면서 기름을 매일 만지는 일이라, 그렇게 불리웠던 듯 하다. 항상 기름을 만지다 보니, 손톱 사이, 사이 기름때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고 들었다.
외사촌 형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디 회사에 다녔다고 했다. 오래되어 정확히 무슨 회사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시에 월급을 꽤나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는 항상 두 손 가득 카라멜과 각종 사탕을 사와 줬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오는 간식을 기다리는게 그렇게 즐거웠다고.
외사촌 형의 기억 속 울 어머니는 지금으로 따지면 차도녀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잘 벌겠다, 2남 3녀 중 셋째 딸에 인물도 동네에서 알아줬다고 하니, 어머니의 콧대가 그렇게 높았다고 했다.
1970년대 후반 평소 아버지와 같은 일터에서 알고 지내던 큰 외삼촌의 주선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처음으로 맞선을 봤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름 멋을 낸다고 2 : 8 가르마를 타고 나타났지만, 도도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작은 키에 그리 잘생기지 않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처음 맞선을 보는 곳이 중국집인 것도.
어머니의 누나, 그러니까 내게는 둘째 이모가 당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런 말을 했다.
“여자들은 그른거 싫어 하거든, 처음 보는데 그 중국집이 뭐꼬, 그기다 너거 어마이가 콧대가 얼마나 높았는데, 깔꼼하지 못하그로 첫 만남에 중국집이 뭐꼬”
(여자들은 그런거 싫어 한다. 처음 보는데, 중국집은 아니지 않냐, 거기다가 너희 엄마가 콧대가 얼마나 높았는데, 깔끔하지 못하게, 첫 만남이 중국집이 뭐니)
게다가 처음 만난 중국집에서 아버지가 허겁지겁 짜장면을 입에 묻히고 먹는 모습에 어머니는 기겁을 했다고 한다. 미쳐 지우지 못한 손에 낀 기름때도 싫었다고.
둘째 이모가 말을 덧붙였다.
“너거 엄마, 맞선 갔다 와서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아나. 식겁을 하더라 아주”
(너희 엄마가, 맞선을 보고 와서 아주 싫어하더라.)
그렇게 맞선이 끝나고, 어머니는 바로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지금 나의 관점으로 아버지의 성향을 보면 당시 아버지는 맞선보다 중국집에 자장면 먹으러 간다는 것에 더 신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첫 만남에 그러지 않았을까. 울 아버지는 그런 분이니까...
그로부터 시간이 훌쩍 지나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둘은 맞선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다시 만난 아버지가 어머니 눈에 그렇게 괜찮았다고 한다. 맞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어째서 다시 만났을 때는 괜찮아 보였던 것일까. 두 번째 맞선은 중국집이 아니었나 보다.
추억 이야기 속, 둘째 이모의 맺음말이 기억이 난다.
“그쟈, 둘이 인연이였던 기라.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있는기라”
(맞다, 둘은 인연이었던 거지.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