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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Nov 02. 2023

ep.3 날 풀린 봄에 가볍게 또 가고 싶은 담양

잔잔하고 조용한 담양에서 맞이한 두 번째 여행



1박 2일 여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겨우 이틀이지만 2023년이 되어 2022년 2월의 기록을 남기는 나에게, 이 이틀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부터 우린 뭘 그렇게 부산스러웠나 싶다. 인스타그램 감성 따라잡자며 굳이 선반 아래에 있는 나무 쟁반, 접시를 챙기고, 미리 냉장고에 채워주신 샐러드를 굳이 또 유리볼에 담아서 세팅했달까.(상을 차리면서도 우리 이거 왜 하냐며 어이없어하다가도 또 예쁘다 깔깔거리고 있었다.)



감성을 차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예쁜 곳에서 잠을 자고 예쁘게 음식을 세팅하는 것부터 하나하나가 내 마음가짐이었다. 보여주기보다 중요한 건 예쁘게 둔 걸로 행복해하고 또 그걸로 웃는 그 마음이었고, 그 추억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더 예쁘게 만든 것 같다. 



친구랑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인스타그램 감성 잡자며, 굳이 아침상을 차려보았다.



이어서 말하자면, 이전까지는 굳이 예쁜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하나 싶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더 좋다 생각했다.(물론 그 또한 다 지나면 추억지만...!) 그래도 담양 여행에서 만큼은 '힐링'을 주제로 잡았으니 숙소에서 제대로 요양해 보자며 감성 숙소로 예약을 했다. 도착과 동시에 우리는 사람들이 왜 이런 곳을 굳이 찾아서 오는지 알겠다며 동시에 끄덕였다. 기분 좋은 숙소와 따뜻한 감성을 가진 숙소는 여행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 해줬고, 다음 날의 일정에 행복회로를 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던 설렘을 뒤로하고 다음 우리의 일정을 위해 뚜벅이들은 택시를 탔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의 첫 도착지는 메타프로방스였다. 도착한 동시에 우리는



"와...!"



"정말 아무것도 없다..!"



놀랄 만큼 조용했고 우리를 제외하고는 한 커플과 4인 가족뿐이었다. 그래도 천천히 둘러보자며 걷기 시작했다. 작은 유럽마을로 꾸며진 메타프로방스는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온 김에 사진이나 찍자며 열심히 우리를 담았다. 구석에 작은 벽화 찾기 들을 발견하면서 다 담아보겠다고 열심히 찍었다. 돌아보면서 가장 많이 본 문구는 '임대/전세'의 문구였고, 코로나로 발길이 끊겨 이곳 또한 많은 타격을 입었구나 싶으면서 너무 슬픈 현실을 마주한 기분에 씁쓸해졌다.



22살 하고도 만 나이로 겨우 20세였던 나, 지금과 많이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사진이나 남겨달라 이곳저곳을 아니, 이곳저곳에 있는 서로를 찍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는 여행을 더 추억거리로 바꿔주고, ‘여행하는 방랑자입니다.‘를 표시하는 나만의 표식이었다. (사실 땋은 머리를 좋아하는 나는 다 늙어서도 땋은 머리를 하고 다니고 싶다 최근에 생각했다.) 배낭 하나에 짐을 다 넣어 돌아다녔고, 좋아하는 오렌지색 반스를 신고 메타프로방스 바로 앞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나와 우리를 남겼다.




 눈만 마주쳐도 장난치고 싶은 친구랑 담양에서 기록 남기기






사실 친구는 내가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몰래 너를 남겨서 미안하지만, 남들 다 보는 추억일기지만, 그만큼 남겨두고 싶고 또 앞으로의 여행까지 나 너무 재밌었다고 다 자랑하고 싶었어 ‘ 텔레파시라도 보낸다. 사실 친구는 초등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중이라 올해는 전처럼 만나지 못했다. 곧 있을 임용고시에 어떤 결과든 응원한다며 며칠 전 네잎클로버를 선물했다. 여행메이트인 친구 말고도 내가 아니 서로가 아끼는 우리들 모두 슬슬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참 잘 컸다고 느낀다.










담양은 참 따스했고, 겨울임에도 온기가 느껴졌다.



담양을 대표하는 죽녹원을 갔다. 대나무는 뿌리 번식력도 강하고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이다. 쭉쭉 자라면서 나한테 키 좀 나눠주지 왜 혼자 컸냐고 심술도 냈다. 대나무 꽃을 보기는 그렇게 어렵다 한다. 생명력도 강하면서 왜 꽃을 그렇게 보여주지 않는지, 오죽하면 마을에 대나무가 꽃을 피우면 희망과 행운의 가득하다고 믿었다 했다. 대나무가 얼마나 멋지면 옛날 사람들은 인격까지 붙여 사군자라며 고결함까지 더했는지 유난스럽다 싶기도 또 막상 보면 이해한다 싶기도 한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얘네가 우리 판다 친구들 먹여 살리는데 쭉쭉 무럭무럭 자라라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나는 베이지, 아이보리, 브라운, 카키, 네이비처럼 자연스러운 색상들을 좋아한다. 담양이 딱 그랬다. 자연스럽고, 여유롭고, 보기만 해도 평온했다. 내가 자연스러운 색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우리 집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내 색상 취향까지 담고 있었다. 


자연물을 담는 사진을 자주 찍었던 건 내가 그런 곳에서 살아서일지도 모른다. 어떤 어른들은 어릴 적 시골에 살았는데, 모든 것이 편리한 더 도시가 좋다고 다시 시골 들어가기 힘들다고 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이고 싶다. 탁 트인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사시사철 집을 둘러싼 벚나무와 개나리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나는 매년 오는 봄/여름/가을/겨울을 매년 사진에 담는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시간대로 바뀌는 모습까지 찍고 있는 나를 보면 '집'이라는 공간에 내 생각보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 집과 닮아있는 담양이 정겨웠고, 시골을 사는 내가 시골로 여행을 간 이유였나 싶었다.






익숙한 공간에서도 작고 사소한 것 하나 새로움을 발견한다면 그 또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 만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늘 같이 공부를 하고 밤새 통화를 하면서 서로 고민거리를 나누기도 했던 우리가 벌써 대학교를 졸업을 한다. 특이하게도 휴학 한 번 하지 않은 우리는 뭘 그렇게 급하게 달렸나 싶기도 하면서, 각자의 길을 또 찾아 나서는 걸 보면 시원섭섭하기도 한다. 우리가 다른 대학을 왔던 것처럼 다른 지역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면 예전처럼 시시콜콜하게 만나기 어렵겠구나 싶어 슬퍼질 때도 있다. 그래서 더 추억하려 하고 더 응원하려 한다. 추억회상이 잦은 사람들은 나아가기 힘들다던데, 오히려 추억회상이 잦아서 나아갈 의지를 만들기도 한다. '또 한 번 만나야지, 또 새로운 얘기들로 만나야지, 너도 열심히 사는 만큼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이런 암묵적인 관계가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스쿠터도 타고 담양을 누볐다. 멀리서 보기에는 너무 좋아보이는 여행객이었지만 사실 너무 추웠다. 면허가 나뿐이라서 내가 운전을 했지만 한겨울에 멋도 모르고 탔다. 그래서 우리는 타고 다니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너무 추워!!!!"






명색이 10년을 '악어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았는데, 악어랑 기록 한 번 남겨야하지 않겠냐며 길을 가다가 찍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저 담양 자체가 좋아서 담양 여행을 또 가고 싶은 건 아니다. 그때의 우리가 너무 어려서, 사소한 것 하나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의 내가 너무 재미있어서, 담양이 우리 집과 닮아있어서 담양을 다시 가고 싶다. 그때와는 또 달라질 내 마음가짐은 어떤지 궁금하다. 



"너랑 함께여서 더 즐거웠어! 우리 또 여행 가자!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래?"



서로 여운을 남기고 각자의 학교로 우린 담양에서 헤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ep.2 결론은 항상 다큐보다는 코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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