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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Dec 07. 2023

서울은 여행이라는 말이 낯설지만, 그래도

친구 덕분에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습니다.



2022년 12월, 또 한 번 우리는 만났다. 이번엔 서울이었다. 졸업작품과 관련하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원단 떼오기, 부자재 알아보기 등 부산에서 다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일정을 맞춰서 올라갔기에 전 날 나는 미리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


친구는 기숙사에만 살다가 자취를 처음 했었는데, 나는 늘 놀러 갈게 말만 건넸다. 친구집은 청주에 있지만 그래도 서울 올라간 김에 청주까지 가본다며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친구의 첫 자취방, 방 빼기 한 달 전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아침이 밝았다. 사실 친구집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가 바로 나에게 건넨 제안이었다.


"나 서울에서 보고 싶은 전시가 있는데, 같이 보러 갈 거지?"

"무슨 전시야?"

"사진전인데, 가고 싶어서."

"그래. 가자. 좋을 것 같다."


미리 예약을 해둔 상태여서 우리는 전시를 위해 시간 맞춰 다시 청주에서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예쁜 양말 신기를 좋아한다. 예쁘게 입은 옷차림에 세심한 양말 포인트는 날 하루종일 기분 좋게 만든다.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심심할 틈도 없이 우리는 장난을 쳤다. 이 날의 양말이 맘에 들어서 사진을 찍으려니까 갑자기 자기 발을 들이밀었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도 사진으로 남겨두면 더 소소하게 남는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갈 장난 중에 하나였지만, 남겨둔 사진 한 장이 이 장난마저 기억하게 만든다.


물건 정리는 잘만 하면서 클라우드는 꽉 찼다. 내가 대충 찍은 사진 한 장도 제대로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심심하다 싶으면 사진을 다시 돌려보는 일이 잦아서 그런 것 같다.






전시는 저녁 6시 전에 입장만 하면 되기에 남은 시간을 뭘 할지 고민하다 성수동을 가기로 했다. 성수동이 핫하니까. 친구도 나도 옷에 관심이 많아서 팝업 이벤트나 편집샵 구경을 좋아하기에 딱 맞는 데이트 장소였다. 성수동에 도착하자마자 아기자기한 플리마켓들과 겨울이벤트 행사 때문인지 반짝이는 조명들이 우릴 들뜨게 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성수동에 도착했기에 우린 뭘 먹을지 골라야 했다. 사실 원래 가려던 곳이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그나마 줄이 많이 없는 쌀국수를 선택했다.(그리고 일단 돌아다니기에는 꽤나 추웠다.)


식당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밥을 먹으면서 꽤나 민망했었던 건 기억이 난다. 식당 내부에 우리를 포함해서 2팀이 있었는데, 통유리로 된 가게 너머 사람들이 모두 줄을 서고 있었다. 옆옆 건물에서 남성 브랜드 팝업을 새로 오픈한다고 모두들 아침 일찍부터 줄 서 있었다. 줄이 너무 길어진 나머지 우리가 밥을 먹는 식당까지 줄이 있었고, 식사를 할 때마다 유리창 너머 사람들과 아이컨택을 하는 묘한 상황이 기억난다. 동시에 서울은 평소에도 이런 일이 잦는구나 싶었다.





"OO아, 유리컵 좀 들어봐."

"이렇게?"

"아니 잔든건 포즈"


한참을 웃다가 식사를 마치고 무거워진 엉덩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우리다.



온도가 매우 다른 왼쪽의 너, 오른쪽의 나.



이때 지하철역을 따라 걸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상황극에 빠져서 5분에 한 번씩 각자 대사 치기 바빴는데, 너무 웃어서 길 가다 쓰러질 뻔했다. 사실 위에 사진을 찍을 때도 다시 되돌아가서 찍고, 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어달라며 연출했다. 그 상황도 너무 웃겨서 얼마나 웃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지나가는 아저씨가 쳐다봤고, 우린 그 순간 낙엽만 떨어져도 웃는 중학생이 되었다.





간혹 이런 팝업 스토어나 편집샵에 들리면 뭘 하러 그런 곳에 가냐는 질문을 한다. 심지어 성수동에 있는 29CM 스토어는 큐레이션 공간이다. 즉,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여러 브랜드의 물건을 직접 보고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저곳에서 바로 구매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공간을 직접 갔을까?


많은 콘텐츠들이 있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다 보면 많은 설명이 오히려 호기심을 낮추기도 한다. 그냥 직접 그 느낌을 보여주는 것. 단순히 물건만을 보러 가기 위한 것보다는 그 공간 전체를 보고 다양함을 직접 내 눈에 담는 것이랄까. 요즘 세대들은 정말 필요에 의한 소비보다는 감성소비를 즐기기에, 이런 행동조차도 우린 자연스럽게 익혔다. 물론 바로 구매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조차도 호기심이 들기에 마치 전시를 보러 간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들렀다. (물론 모든 젊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성수에서 느긋하게 돌아보고는 서촌으로 넘어왔다. 꽤나 귀찮은 동선이지만 우린 시간이 많았고 날은 여유로우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전시를 보기 전에 걷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인지 자연스럽게 내 몸은 당을 찾았고 친구랑 서촌 어라운드시소에서 아이스크림 크로플을 먹었다.


맛없을 수 없는 맛에 행복했고, 추운 날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더 달게만 느껴졌다.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 했던 사진전이었다.


"THE ANONYMOUS PROJECT : 우리가 멈춰 섰던 순간들"

'디렉터 리 슐만이 수집한 80만 장의 컬러 필름 슬라이드 컬렉션으로, 가장 독특한 아마추어 사진 컬렉션이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이름 모를 이들이 각자의 필름 속에 담은 일상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사진들은 가족, 친구 또는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촬영했기에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애정이 사진에 온전히 드러난다.'




사진전은 처음이었고, 늘 회화나 공예와 관련된 미술전시만 구경했던 나는 사진전에 큰 흥미가 없을 줄 알았다. 가서 본 사진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이었고, 심지어 '어노니머스 프로젝트'라는 것 자체도 일상에서 모은 컬러 필름 사진전이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도 아니지만 꽤나 큰 감동을 불러왔다.


사진의 속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찍은 사진이었다.

그들의 시선에서 그 주인공이 어떻게 담겼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사진 필름을 다시 찍은 나처럼 사진은 찍는 사람마다 달리 보이는 것일지도.



대단히 잘 찍힌 사진이 있거나 특출 나게 화려한 사진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했다. 내가 일상 속 작은 부분들을 찍어서 남겨두는 이유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전시라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작은 부분도 내 시선으로 담아두고 싶어서. 기억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내 시각으로 담은 사진전 후기와 다른 사람들이 담은 사진전 후기도 또 다르듯이 신기하다.



공간마다 테마가 있었다. 연인의 사랑. 가족의 사랑. 어린 시절. 여름철 등 다양한 공간들이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점점 고조되는 따스한 감정에 마지막은 어떤 것들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마지막엔 그 모든 필름들을 인화한 사진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으로 보여주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노래 역시 그 현장과 매우 잘 어울려서 보는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자마자 "와~" 하고 감탄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도 함께 들어갈 수 있어서 기뻤다. (친구는 휴대폰 케이스 굿즈까지 구매했다.)


여운을 가지고 나온 우리는 따듯한 밥..이 아닌 어김없는 웨이팅으로 저녁을 맞이했다. (저녁을 찍지 못해서 지금 생각하니 아쉽다...!) 기차 시간이 그러고도 남아서 우린 서둘러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그냥 서울 한 바퀴 돌았다...그래도 서울 왔는데 겨울맞이는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신세계 명동 야외스크린 꼭 보고 싶었다고..!



인스타로만 보던 신세계 명동점 크리스마스 영상을 꼭 보고 싶었던 나는 소원성취를 함과 동시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절머리를 느끼고 앞으론 버스 타고 오고 가다 보는 걸로도 충분하다고 느끼며 친구와 서울역으로 향했다. 화려한 그래픽이 진짜 예쁘긴 했다...


당일치기 짧은 서울여행 아닌 여행이었지만, 친구 따라 우연히 보게 된 사진 전시의 여운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부산에서도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사진전도 꽤나 매력 있는 전시니 아직 본 적이 없다면 다들 꼭 한 번쯤은 보러 가보시길!


완벽한 하루로 기억할 수 있게 함께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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