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지 말랬잖아
귀에서 웅 하고 소리가 난다.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오랫동안 온 가족이 한국에 놀러 갈 수 있는 건 아마 내년이 마지막일 것이다. 여름방학 때는 길게 휴가를 내기가 어렵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학기 중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원래 계획 대로라면 내년 봄에 또 한국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12월 3일 이후 세상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한국 대통령이 국회에 군인을 보냈고, 계엄을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한국이 정~말 안전하고 아~무 변화가 없다"라고 말한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가족들이 겪는 갈등에 대해 해준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좀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친구들 말로는 가족들끼리 난리가 났다고 한다. “쟤네가 오면 우리는 안 간다”는 정도는 기본이고, 이제는 서로 말을 섞지도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건 전 세계 트렌드인가 보다. 내 가족 중 하나는 안부를 묻는 전화에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 거야. 그래서 나라가 이 모양이지"라고 단언했다. 이 분이 보는 뉴스들은 핸드폰으로 배달 온다. 제목에 "경악! XX 큰일 났다" 같은 문구가 빨간색으로 적혀있다. 내가 "그런 것 좀 보지 마시라"라고 하자, 나의 가족은 내 말을 단박에 잘랐다. "그럼 뭘 봐, 그럼 내가 MBC 같은 걸 보냐?"
이미 나는 대화 상대가 아니다. 내 가족은 나 대신, 머릿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허수아비—"진실을 부정하는 종북 세력"—와 싸우기 시작했다.
한국 갈 비행기는 아직 안 샀는데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서로를 소진시킨다. 가족의 허수아비 공격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한 적을 만들어 끝없이 공격한다. 상대방이 말한 내용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머릿속에서 구성한 상대방의 왜곡된 모습이다. 듣는 사람은 힘이 다 빠져 버린다. 이게 바로 주술의 힘인가.
게다가 내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는 지금의 이 정권과는 정반대의 가치를 다루고 있다. 내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잘 알고 있는 가족의 현실 부정은 정말 뼈 아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지친다. 이해 시도는커녕, 대화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또 종북 세력 얘기를 꺼냈다. 당신의 논증에서는 나라를 팔아 북한에 바치는 존재는 사실일 필요가 없는 당위이다.
나와 정반대의 신념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가족이라면, 가족이란 이름은 이제 무엇을 의미할까? 멀어져 버린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이 과연 남아 있을까?
“아. 야야, 그만하자. 끊어야 돼. 반포 아줌마한테 전화 온다.”
그 한마디에 대화는 끝났다. 카톡이 끊어졌다. 핸드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며 내 가족과 반포 아줌마가 나눌 법한 대화를 상상했다. 반포 아줌마네. 시집간 딸들한테 천만 원 단위로 아직도 용돈을 준다는 그 집. 하지만 아저씨가 "요령이 좋아서" 한 번도 세무조사를 받아본적이 없다는 그 집. 그들의 의견과 현실 판단은 내가 생각하는 미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미국 심리학자는 정치 색깔이 정 반대인 친척들과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 최소 한 달은 있을 생각이었는데, 정말 고민된다. 고작 망상에 빠진 인간들 따위 때문에 가족이 해체될 위험에 빠지는 이 시대가 너무 싫다.
(대문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tteria_AZ_Burger_20200521_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