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악어엄마 Dec 08. 2024

내란 후의 일상

파괴된 세상 안의 재롱잔치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빠져나가 탄핵 투표를 무산시키던 날이다. 아이 점심을 차려주고 반쪽이 텅 빈 의회장의 사진을 보자 이상하게도 몸이 아팠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무엇인가가 나를 힘들게 했다. 더 괴로웠던 건 내란의 주범들을 지지하거나 못 본 척하는 내 주변 사람들—지인들과 가족들이었다. 카톡 프사를 일본 여행 사진으로 바꾼 친구, 계엄 발표 직후 골프 여행을 떠난 가족, 그리고 정치 얘기는 금지라며 유치원 선생님께 드릴 선물과 맛있는 커피 얘기만 주고받는 단톡방. 


이들은 이 상황에서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사람들과 계속 미래에도 웃으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까. 안부를 묻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반응한다.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무언가를 회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국민들에게 총을 겨눈 후에도 정치적 셈법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 힘을 준 건 이런 '보통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는 이들은 이 위기의 순간에도 정말 무감각하다. 마치 장례식에 와서 뜬금없이 자기 차 산 걸 자랑하는 것처럼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아들의 크리스마스 연극 발표회에 갔다. 아들이 다니는 문화센터는 원래 독일 내 러시아 이민자 통합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전쟁으로 찢어진 두 민족이, 같은 무대에서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함께 웃고 있었다.


리허설 한 번 없이 연극 완성


아들은 90%가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연극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피노키오 춤을 췄다. 서커스에 팔려 손발에 끈이 묶인 피노키오가 나중에 자유를 찾는 내용이었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아이는 눈송이 역을 맡았다. 너무 조용히 대사를 하자, 독일에 온 지 3개월 된 우크라이나 난민 출신 10살 미리암이 내 아이에게 더 크게 말하라고 조용히 큐를 주었다. 연극은 나이도 수준도 다른 총 10팀이 준비한 장면을 연결했다. 리허설도 없이, 순서도 모른 채 진행된 발표회는 놀랍게도 매끄럽게 흘러갔다. 서로가 뭘 준비했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무대 위 아이들은 서로를 이어주는 실마리 하나하나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연극의 마무리로 아이와 미리암은 눈송이 춤을 함께 추었다. 한국인 엄마를 둔 독일 아이와 전쟁을 피해서 온 우크라이나 아이는 눈송이처럼 하얀 옷을 입고 손을 잡았다. 부드럽게 얽힌 손짓과 발끝이 하늘거렸다. 서로 다른 언어와 경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진심으로 웃으며 무대를 누볐다.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연극을 보고 있는 우크라이나 부모들을 보며 어떤 이들은 안간힘을 써서 이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복잡하고 분열된, 폭력적인 세상에서도. 아이들의 춤 사이로.


발표회를 지켜보면서 머릿속 한편에는 내란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이 추운 날에 퇴진 집회에 나와있는 시민들의 사진을 보았다. 나는 한국에서 아주 멀리, 러시아어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연극을 보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인들의 무심함, 채팅방에서 금기시된 정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아들의 눈송이 춤. 이 모든 게 겹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기이하고 어딘가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가야 할까. 나는 2016년 촛불 집회 때, 비행기표를 샀다.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사람들의 연대, 공중 화장실에 놓인 생리대, 찰진 드립이 가득한 아무 말 깃발들이 주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2024년의 한국.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의 연대는 여전히 가슴을 아리게 했다. 희망을 떠받치는 간절함이 너무나 무거웠다.




행사가 끝난 후, 연극을 무료로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렸다. 70이 넘은 선생님이 암 투병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소련 붕괴 후 독일로 이주해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그가, 러우 전쟁을 지켜보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도 냉전이 끝나고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 믿었던 세대다. 최근의 역사의 퇴행을 마주하며 점점 위태로움을 느낀다.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여기 독일에 있어도 될지 지금이라도 여의도에 가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야 하는지. 아이에게는 만화영화를 틀어주어 놓고 이렇게 글만 끄적거릴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백한 위기상황인 이 순간 정치적 무관심은 매우 부적절하다. 극심한 분열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희망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한 번도 같이 모여 연습도 안 한 발표회장에서 아이들이 몸짓 하나로 알아차리며 이어가는 연결처럼. 누군가가 시민들을 위해 가져고 온 핫팩과 보조 배터리와, 커피 선결제 같은 작은 실마리 말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일상을 누리는 동안 광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이들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여전히, 정치 얘기를 금지한 단톡방에서 어느 커피 머신이 제일 좋다는 대화가 한창이다. 일상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커피 머신과 어울리는 커피 레시피를 추천하고, 나는 그 모습을 무심히 지켜보는 중이다.


(대문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24%EB%85%84_%EB%8C%80%ED%95%9C%EB%AF%BC%EA%B5%AD_%EA%B3%84%EC%97%84_%EB%B0%98%EB%8C%80_%EC%8B%9C%EC%9C%84%EB%8C%80_%EA%B9%83%EB%B0%9C.jp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